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 8< 이강화 교수>

 

Photo from Google Images (찰스 디킨스의 소설, 대이빗 코퍼필드)

<Daegu: Prof. Lee, Kangwha>

6, 영상시대에서 문학의 의미

그렇다면 이 영상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영화는 물론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과연 그 어느 소설이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측면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가?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보다 많이 팔리는 것은 오늘날 모든 작가들의 은밀한 꿈이다. 그러므로 유독 영화만을 통속적이고 상업적인 오락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단견일 것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고급문화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단순히 값싸고 저속한 여흥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영화와 문학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만 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영화를 문학텍스트의 이동이자 확장으로 보는 것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문학 연구는 시, 희곡, 소설에 한정되어 있었고, 대학에서 연극학과가 개설되면서 문학하는 사람들을 점점 더 시와 소설에만 한정시켰다. 물론 허버트 리드가 지적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문학의 영역에 영화를 비롯한 다른 서사매체를 끌어들이는 시도를 반대하며, 오늘날 문학적인 작업은 이러한 견해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이러한 편협한 장르 연구에 머무르는 것이 결코 문학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학 연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 시기에 문학 연구의 범위, 특히 현대 문학 연구의 범위는 확대되어야 한다. 이것은 시, 희곡, 소설 뿐만 아니라 신학, 철학, 교육, 과학, 역사, 전기, 저널리즘, 관습, 도덕, 항해에 대한 저작들을 문학의 대상에 포함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연구가 잘 말해준다.


   
더구나 자주 언급되는 문학의 위기 역시 매체학으로의 문학의 패러더임 전환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주변의 다양한 매체들을 문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을 이처럼 넓게 정의함으로써 특정 매체와 그 매체의 특정한 표현방식이 문학 작품, 혹은 문학의 장르와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 혹은 문학교육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문학 서적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영화를 골라주고 영화 읽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물론 책은 계속 읽혀져야 하고 활자문학은 분명 소중히 보존되어야 하지만 영상매체의 확산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문학이 당면한 과제가 된다. 따라서 문학 담당교사에게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읽게 할 것인가’ 이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구체적 과제가 놓이게 된다. 확대된 문학 텍스트로서의 영상매체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 맥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 오랫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와 함께…

To be continued~~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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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3 <이강화 교수>

In the fall of 1959, a film called Ben-Hur, based on Lew Wallace’s novel, Ben-Hur: A Tale of the Christ, widely considered the most influential Christian …(photo from Google Images)

<Daegu, Prof. Lee GangWha >

새로운 문화 텍스트로서의 영화

1.영상 텍스트와 문학 텍스트
지금 우리들은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뉴 미디어 시대에 살고있다. 여기에서 ‘뉴 미디어’란 일차적으로 멀티미디어나 컴퓨터를 지칭하지만 영화, 비디오, 광고, 패션, 팝송, 신문, 잡지 등의 다양한 대중매체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중에서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영상매체의 영향은 가히 압도적이다. 스크린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배우는 이들에게 영상매체는 곧 삶의 텍스트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서 신세대는 두터운 순수문학 소설들을 읽는 대신 그 내용을 요약한 영화를 즐겨보고, 영상적 표현을 통해서 오히려 그 문학성을 인정하고 있다. 더구나 조이스나 포크너 같은 난해한 작품이라면, 문학을 전공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더욱 읽히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영상매체가 오늘날 신세대들에게 가장 호소력있는 문화 텍스트로 부상하게 되었다면 이들에게 영상매체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내세우면서 무조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것보다는 차라리 그들에게 영상매체를 읽는 법, 다시 말해서 영화가 어떻게 당대의 사회상과 문화를 반영하고 있고, 어떻게 당대의 지배이념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 어떻게 당대의 관습에 저항하고 있는지 등을 문학과 연관해서 가르쳐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문화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상 세대와 문자 세대는 공동의 관심사를 통해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서로의 시각과 인식의 지평도 훨씬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토니 베넷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동안 영화와 텔레비전 연구의 확산은 극적이었다. 독립된 영역의 연구로서든지 아니면 다른 분야 코스의 일부로든지 간에, 영화와 텔레비전은 대부분의 고등교육기관 교과과정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모든 종류의 중, 고등학교와 전문학교에서도 점점 더 많이 교수되고 있다. 아마도 똑같이 중요한 것은, 영화와 텔레비전에 대한 연구가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서 그것을 더욱 확립된 분야 – 특히 문학 – 와 명백하게 접목시켜 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영화 혹은 영상매체는 오래 전부터 문학과를 중심으로 커리큘럼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왔다. 종합예술로서 한 나라의 문화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영화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언어로 다양한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언어공부 뿐만 아니라 문화공부의 중요한 텍스트로 활용되어왔다.  영화화된 문학작품의 경우, 장편소설을 극영화로 각색할 때 생기는 변화, 문학과 영화라는 두 매체의 미학의 차이, 감독의 작품해석의 문제 등이 영상매체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훨씬 구체적인 텍스트 이해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 이것은 문학교육이 그 범위를 넓혀 문화교육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학과에서 영화 텍스트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가 문학과는 달리 작가의 절대적 권한을 초월하는 종합예술이라는 데에도 있다. 종래의 문학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저자의 상상력과 창조력이었다. 저자의 개별적인 창조행위를 통해서 작품은 이른바 벤야민 식의 ‘아우라’를 부여받을 수 있었고 따라서 모든 평가는 궁극적으로 저자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원작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배우, 촬영기사, 음향기사, 조명기사, 분장사, 세트기사, 스턴트맨들의 공동작업이기에 예술을 탈신비화 하게 된다. 더구나 영화라는 작품의 창조는 생산행위로 이어지며, 이 생산물은 판매되고 구매되는 상품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영화가 하나의 상품적 생산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연구는 순수문학작품보다 영화에 더 직접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그 이유는 영화가 당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표출하는 텍스트로서 더 적실한 기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오늘날 문화연구는 영화를 하나의 사회적, 문화적 문헌으로 보고 그것을 해독한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같은 미디어 시대에는 문학연구를 보다 더 광범위한 문화연구로 확대시켜서, 문학작품과 더불어 각종 미디어와 영상매체도 같이 연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프레드릭 제임슨, 더글러스 켈너, 로렌스 그로스버그같은 좌파비평가들이, 그리고 영국에서는 앤토니 이스트호프같은 문화연구가들과 버밍엄 학파 소속 비평가들이 이러한 문화연구의 차원에서 활발한 영화비평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들의 영화비평은 영화의 작품성이나 미학적 측면을 주로 고려하는 직업적인 영화평론가들과는 달리, 영화를 당대의 문화와 사회를 반영하는 역사적 기록으로 파악했으며,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영화는 문학 텍스트 이상으로 일종의 문화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문학작품의 영화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 원작을 읽고 싶어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문학의 보급과 확산에 기여하기도 한다.

문학의 독자적인 역사 또한 끝났고 이제 문학은 영화처럼 매체문화의 한 구성요소로 되어버렸다. 독일의 어떤 작가도 이제 자기의 문학생산을 시청각매체를 벗어나 순수한 문학시장에서 관철시킬 수는 없다. 작가가 문학가의 역할에 가치를 두려고 할 경우, 그 역할을 고수하게 해주는 것은 오히려 매체이다. 오늘날 ‘작가’의 상은 변하였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은 자신의 텍스트를 다중매체적으로 시장에 내놓아야만 한다……이리하여 소위 잊혀진 소설들이 영화예술의 기적적인 힘을 통해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고정된 문자의 가시 울타리에서 해방되고 새롭고 찬란한 삶으로 깨어난다는 사실이 입증될 수 있다. 더구나 관객이 영상에서 본 것을 통해서 원작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는 희망에서, 그리고 그 원작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관객 안에서 생기게 되리라는 희망에서, 그 소설들이 새롭고 찬란한 삶으로 깨어난다는 사실이 증명될 수 있다.

이처럼 요하임 패히는 현재 독일어권의 성공적인 작가들은 라디오, TV, 영화, 잡지, 서적들의 멀티미디어적 현실에서 작가로서 자기자신을 재생산해낼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자신들의 작품 안에서 다루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 대표적인 작가로 페터 한트케, 귄터 그라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등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보수적인 문학자들은 상업적인 영화가 감히 신성한 문학에까지 손을 뻗는 것이 싫고, 문학작품의 영화화가 원작을 훼손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회의적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들의 심리적 동기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들의 문제는 “영화관에서 과거의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화면을 통해서 이제까지 인쇄된 서적이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더 이해하기 쉽게 무수한 사람들에게 매개시킬 수 는 기회를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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