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감상 >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 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2004년 ‘현대시학’, 문태준(文泰俊); 1970년- >
시에 대한 감상은 사람마다 다 같을 수가 없다. 자신의 느낌에 맞게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어느 유명 시인이나 평론가가 해설, 감상해 놓은 것이 붕어빵 굽는 판이 되어 다르게 해석, 감상할 여지를 잃게 할 수가 있다. 좋은 예가 학교 교육에서 문학작품을 어느 유명 시인이나 평론가가 해석, 감상해 놓으면 학생들이나 독자들은 오직 그들의 해석, 감상에만 따른다. 자신의 느낌을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원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 감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시라 생각한다.
자작시를 해설해 놓은 것도 있다. 그것은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고 인생관이 다른 사람들이 왜 작자의 생각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는 여러 해설과 감상의 글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적어 볼 뿐이다.
시의 제목 ‘가재미’는 사투리를 그대로 쓴 것 같다. 사투리를 쓴 것부터가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일로 전체 시의 정서와 닿아 있다.
가자미는 심해에서 사는 동물로 어린 고기일 때는 좌우 대칭으로 눈이 양쪽으로 있다가 자라면서 왼쪽 눈이 오른쪽 눈 곁으로 쏠리게 된다. 왼쪽 몸은 바닥을 향하다가 색이 본래의 색을 버리고 하얗게 되고, 오른쪽 몸은 어두운 주위 환경에 적응하여 검은색을 띠게 된다. 가자미의 이 생태가 이 시에 적절하게 적용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에서 가자미의 눈은 ‘암 투병 중인 그녀’요, 시적 화자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그녀’는 가자미의 왼쪽 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자미의 오른쪽 눈인 ‘나’에게 와서 살아 준 ‘그녀’다. 본래 왼쪽의 검은 본성을 접고 하얗게 변하면서 오른쪽 ‘나’에게로 와 준 것이다.
런 ‘그녀‘가 가재미처럼’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이다. 다른 한쪽 눈인 ‘나’가 애처로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 애초 상황 설정이 병원으로 되면서 슬픔의 정서를 이끌어내고, 그것도 그냥 병원 침대에 누워서가 아니라,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라고 구체적으로 밝혀 놓음으로써 추상에서 구체적 상황으로 전환 되면서 한층 실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형식 면에서도 대조의 기교를 잘 살리고 있다고 본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를 통해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녀’의 슬픔과 젊었던 시절의 아름다운 날들을 되돌아보아야만 하는 ‘나’의 아픈 마음이 대조 되어 애처로움을 더한다. 이제 머지 않아 죽음의 세계로 떠나 보내야 하는 ‘그녀’.
‘나’는 ‘그녀’와 함께 펼쳤던 지난날의 추억을 되새긴다. ‘그녀’와 함께 오솔길 걸으며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던 일, 호화로운 음식이 아닌 가락국수 삶던 일, 흙 담조차 없었던 가난을 떠올린다.
이러한 되새김이 한층 이 시의 슬픔의 정서와 한의 정서를 짙게 드러나게 하고 있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 쉬는 ‘그녀’ 숨소리가 가슴을 도려내게 한다. ‘나’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없다. 가자미처럼 ‘그녀’ 곁에 나란히 눕는 일밖에는.
시의 구성도 연을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현실 상황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삼분 법을 취하고 있다. 시어 사용도 어렵게 표현하지 않고 일상 쓰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약간 변화를 주어서 시적 표현으로 바꾸었다. 이런 점은 시작하는 사람들은 본받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이승을 볼 수 없다고 하지 않고,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로 표현하고 있다. 사물을 보되 남 다르게 보고 독특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익혀야 하리라고 본다.
나는 이 시의 소재가 무엇이고, 주제가 무엇이고 따지기에 앞서 그냥 읽고, 이 시가 나에게 나름의 어떤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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