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Myung University>

3) 프랑크푸르트학파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에서 연구와 조사를 행한 일단의 지식인들을 칭한다. 1923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부설기관으로 창설된 이 연구소는 1933년 히틀러 정권의 수립으로 인해서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겼다가 다시 1949년에 독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판이론’은 이들의 연구활동의 토대가 된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가 비판적으로 결합된 방법론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연구소가 행한 비판이론은 두 개의 핵심적인 주제로 전개된다. 하나는 대량적인 경제적 기술적 변동에 직면하여 경제적인 사회화의 기구가 약화되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문화의 물상화가 증가함으로써 인간의 노동이나 활동의 대상이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힘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자가 비판이론의 대중사회이론이라면, 후자가 이를 근거한 대중문화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비판이론에서의 초기 문화이론은 주로 미학적 이론과 예술비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1930년대 후반기에서 40년대에 접어들면서, 즉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주 멤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부터는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비판이론가들이 보기에 자본주의에서는 문화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의 저장소로서 개인의 창조성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규범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이처럼 비판이론이 자본주의의 비판을 위해서 대중문화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원리를 기본전제를 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마르크스주의와는 달리 문화현상을 단순히 토대-상부구조라는 단순한 모델에서 분석하기를 거부한다.

당시 동유럽사회는 파시즘의 급격한 대두와 서구 사회주의의 몰락이 진행되고 있었다. 동구와 서구 양쪽에서 모두 비이성적인 전체주의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는데 소련의 스탈린,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랑코 등이 바로 이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은 이들 전체주의 세력에 장악되었고 혁명의 가능성은 점차 사라져갔다. 특히 히틀러 정권을 피하여 옮겨간 미국에서 접한 대중문화 역시 이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영화산업과 오락산업의 흥성, 매스 미디어의 급속한 발전, 오로지 이윤추구를 위한 문화의 조작 등 이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 본질적 문화의 변질된 형태로 비쳐졌다.

이리하여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등은 미국에서의 이러한 체험을 토대로 하여 문화적 생산과 수용의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자율적 예술이 쇠퇴하게 되었다는 것과 이것은 대중문화를 통한 정치적 통제를 증가시키며 현상유지를 고착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럴 경우, 대중문화는 다른 어떠한 영역보다 개인의 사적 영역이 외적인 사회현상에 의해 영향을 받고 의식의 영역이 침해당하는 대중사회의 현상을 고찰하는 중요한 준거로 나타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 의해서 고안된 문화산업(Kulturindustrie)이라는 개념에서 이것이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대중문화라는 용어가 대중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문화라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기에 부적절한 용어로 보며 대신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20세기 초 유럽과 영국에서의 계급의 양극화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계급 통합이 시도된다. 이 과정에서 권력과 재산의 배분을 담당하고 있는 주역들은 소유권과 통제를 집중화시킬 수 있는 내적 힘을 갖추게 되었고, 나아가서 그들의 현상 유지를 위해서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수단을 이용한다. 이리하여 대중문화는 상대적으로 무차별화되고 이같은 문화의 무차별화로 인하여 문화생활의 전 영역은 개인의 의식을 통제하는 양식으로 바뀌게 되고 문화도 산업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가 상품화된다는 것은 바로 문화생산물이 돈을 위해서 교환될 목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예술은 상품이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상이한 경제적 영역간의 증대된 연쇄성과 문화적 독점산업의 산업적 재정적 자본에의 의존성에 의해서 그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제 문화산업의 생산품은 새로운 미학적 기준에 의하여 결정되는데 이 새로운 기준은 바로 통속성이다. 이 통속성에 근거하여 문화산업이 만들어 내는 대중문화는 [세] 가지의 부정적 기능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사물화 현상이다. 사물화란 인간들 사이의 질적인 관계가 화폐를 매개로 하는 양적인 관계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상품이 생산되어 가격이 매겨지고 시장에서 소비될 때 그 상품의 가치는 그것의 생산에 투여된 인간의 노동과는 관계없이 시장원리에 의해서 화폐로 측정되는 양적인 교환가치로 나타난다. 농민들이 일년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인 쌀 한가마니 가격과 여성들의 고급 속내의 가격이 동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장가격, 즉 교환가치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사물화가 단지 상품에서만 아니고 인간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고급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접대부의 하루저녁 팁이 같은 또래의 공장 여공의 한달 급여와 같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물화된 인간관계가 일반화되면 인간은 단지 기능적 차원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인간의 고유한 가치나 자발성, 비판의식 등은 무시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본주의는 자본을 재생산하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전체적인 사회 구성체 내에서 대중들이 객관적인 자신들의 모습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또 다른 장치가 필요한데 이것이 허위의식이다. 허위의식은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이르지 못하도록 사람들로 하여금 상품과 선한 것을 동일시하는 환상에 빠져들도록 한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여가와 소비적 삶을 동일시한다. 문화적 생산과 수용의 새로운 기술이 자율적 예술을 쇠퇴하게 하였다면, 이것은 대중문화를 통한 정치적 통제를 증가시키며 현상유지를 고착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결국 대중문화는 경제적 차원과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분리 할 수 없게 만든다.
아놀드와 리비스주의자들이 대중문화가 문화적․사회적 권위에 위협을 가한다고 우려한 반면, 비판이론가들은 반대로 대중문화가 사회의 권위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우려하였다. 아놀드와 리비스가 대중문화를 통해 ‘무정부’를 보았다면, 비판이론은 ‘순응’을 보았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산업화된 대중문화가 사물화된 의식을 조장하고 무력감과 순응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동질성으로서 영화든 라디오든 혹은 잡지든 관계없이 모든 대중문화는 이윤추구를 위해 제작된다는 점에서 그 속성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문화상품은 “규격화, 상투성, 보수성, 허위, 조작된 소비상품”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문화를 생산함으로서 노동계급의 정치성을 희석시키며,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이 투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억제한다. 문화산업이 정치적 변혁과 사회적 투쟁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브레히트와 벤야민의 견해와는 달리, 또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계급을 더욱 진보적으로 만들며 계급의식을 동반한다고 믿었던 루카치와는 달리, 이들은 문화산업을 사회통제의 강력한 도구로 이해함으로써 이것을 이데올로기적 신비화의 수단으로 그리고 지배계급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셋째로 대중사회의 원자화된 개인은 맹목적 필연성에 의한 체제에 의하여 위로부터 지배되어진다. 사람들은 점점 원자화되고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고 수동화되어 가며 이성적 공중(理性的 公衆)들은 점점 사라져 버리고 대량 생산체제의 소비자라는 지위를 감수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의 조작된 기능과 문화적 상부구조를 통한 통제로 인해서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질서 속으로 통합되어 버리고 그들의 혁명적 역할도 사라져 버리게 된다. 비판이론가들이 볼 때 대중문화의 이러한 역기능으로 인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귀결이라고 보는 대중사회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 사회로 변모해 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대중문화는 전체주의의 온상이며 현대자본주의의 물상화 현상에 대한 저항을 제거시킨 문화가 되는 것이다.

비판이론에서의 대중문화이론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왜 혁명이 실패했느냐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되었고 이것은 동시에 왜 비판이론이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역할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였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자본주의와 대중문화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이후 영국의 문화주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등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중 문화관은 지나치게 반대중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다. 물론 혁명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적 질서에 통합되어 버린 노동자 대중에 대한 절망으로부터 이러한 문화관이 형성되었음을 감안하더라도, 기존의 문화적 형식에 물들지 않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이른바 전위적 예술에 대한 이들의 호의적인 태도는 대중들의 보편적인 정서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도르노가 그렇게 찬양했던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이 창조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현대음악 특유의 그 난해함이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는 노동자대중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기에는 무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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