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 D. Lee, Kang Hwa, Gae-Myung University>
2)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제임슨,Fredric Jameson (born April 14, 1934)은 자신의 저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들의 중요한 특징들을 ‘혼성모방(pastiche)’과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라는 두 개념으로 압축하여 예시하면서, 이런 특징과 현상들은 1960년대 이후 두드러지게 부상되는 서구 후기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질서의 내적 진리를 표현해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예술 양식이라기보다 하나의 시기 구분의 개념으로서 이해되며, 그 기능은 새로운 유형의 사회생활과 경제질서―즉 후기 산업사회 또는 소비사회, 미디어사회 또는 스펙타클 사회, 혹은 다국적 자본주의―의 대두와 문화에 있어서의 새로운 형식적 특징들의 대두를 서로 상관시켜 주는 데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변화가 발견되는 시기는 미국에서는 대략 1940년대 말 또는 1950년대 초이며, 프랑스에서는 제5 공화국의 수립 시기인 1958년까지 소급될 수 있다. 1960년대는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이행기였는데, 이것은 새로운 국제질서― 즉 신식민주의, 녹색혁명, 컴퓨터와 전자정보의 시대 도래―가 형성되면서 그 내적 모순과 외적 저항이 동시에 표출되던 시기였다.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소비와 계획적인 폐기,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유행과 양식의 변화, 전 사회에 걸쳐 유례없는 속도로 침투되는 광고와 TV, 그리고 미디어, 도시와 농촌, 중심과 주변 사이의 낡은 긴장이 보편적인 표준화에 의해 대체되는 현상을 불러왔고, 거대한 그물망의 고속도로가 증폭되고 자동차 문화의 도래를 초래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현상들은 전성기 모더니즘 사회와는 급격한 단절을 나타내 주는 특징들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전제로 하여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관행들과 특징들을 혼성모방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런 식의 모방은 패러디라는 형식으로 모더니즘이나 그 이전의 예술 양식 속에서도 흔히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보여지는 모방 행위인 패스티쉬는 다른 스타일의 모방, 또는 다른 스타일의 양식적 차용이라는 점에서 외적으로는 이전의 패러디와 유사점을 지니지만, 그 내적 연관에 있어서는 패러디와 큰 차이를 지닌다. 패러디의 경우에는 본래의 원전(the original)에 대한 은밀한 공감이 남겨져 있다. 패러디를 이용하는 모더니스트 미학에서는 원전이 지닌 독창적인 자아와 사적인 동질성, 유일무이한 개성과 인격성에 대한 모종의 연결이 존재한다. 따라서 패러디의 경우에는 이런 독창적 양식에 대한 매너리스트적인 표절이 지니는 사적인 성격에 대한 조롱과 풍자의 효과가 남겨져 있으며, 이러한 웃음을 가능케 해주는 언어학적인 일반적․정상적 규범이 하나의 기준점으로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일반적인 정상언어와 그것의 의사 소통적 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파편화 되어 버리고 사적인 것으로 화 해버린다면, 그리고 더 이상 사적인 언어와 개성적 스타일을 풍자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정상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패러디는 불가능해진다. 다시 말해서 전성기의 자본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합리적인 개인주의적 주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심지어는 부르조아적 개인으로서의 주체라는 것 자체가 애당초 존재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후기구조주의자들에게는 현대의 예술가에게 남겨진 것은 단지 과거의 죽은 모델들의 모방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과거처럼 유일무이한 사적 세계와 그것을 표현할 개성적 양식을 더 이상 지닐 수가 없다. 양식적 혁신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남겨진 것이라고는 단지 과거의 죽은 스타일을 모방하고, 가면을 통해서 이야기하며, 상상적 미술관 속에 있는 다양한 양식들의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패스티쉬이다. 따라서 모더니즘 미학이라는 전통의 무게가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뇌 속을 악몽처럼 짓누르고 있는 이 시대에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은 과거 속에 갇히게 된다.
그 결과 시간적 연속성은 단절되고, 현재의 경험은 생생하고 압도적으로 증폭된다. 그리고 모든 의미가 상실됨에 따라 기의를 상실한 기표는 이제 하나의 이미지로 변형된다. 제임슨은 이러한 사태들을 개괄적으로 역사 감각의 소멸이라고 요약한다. 현대의 사회 체제 전체가 점차 자신의 과거를 보존할 능력을 상실하면서 영구적인 현재 속에서 살게 되며, 이전의 다른 모든 사회 구성체들이 이런 저런 방식으로 보존했던 전통은 변화 속에서 망각되는 것이다. 뉴스와 미디어의 홍수는 최근의 역사적 경험들을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과거 속으로 추방한다. 미디어의 정보적 기능이 우리의 망각을 도와주는 것이며, 우리의 역사적 기억상실을 위한 대리인과 메커니즘으로 봉사하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제임슨의 분석을 개괄적으로 재정리해 본다면 소위 후기자본주의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는 한편으로는 과거 모더니즘의 찬란한 엘리트주의의 죽은 모델들의 중압에 눌려 그것의 재탕과 모방에 급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와 역사에 대한 기억 상실 속에서 미디어와 광고로 가득 찬 상품사회의 쾌락을 소비하는 데에 몰두한다. 이것은 실재를 이미지로 변형하고, 시간을 영원한 현재의 연속으로 파편화시키는 과정으로서, 이렇게 해서 거꾸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는 후기자본주의의 상품생산과 소비의 논리를 그 자체로서 복제하고 또한 재생산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제임슨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급진적인 단절이 실제로는 내용상의 완전한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주어져 있던 특정한 일련의 요소들의 재구성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이전 시기의 체계 내에서는 부차적이었던 특징들이 이제는 지배적인 것이 되고 지배적이었던 것들이 다시금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양 시기 사이의 내용상의 변화가 아니라, 형식상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러한 형식상의 단절 이면에 내용상의 연속성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것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모두가 자본주의의 발전 및 그 운명 속에서 태동,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철학적 형식주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연속성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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