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변화성
시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문화는 결코 정체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문화의 축적적인 성격과 연속적인 성격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의 문화가 100년, 200년 또는 1,000년 전의 문화와 같다고 말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오늘의 문화가 어제의 문화와는 다르다거나, 우리는 매일 상이한 문화와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고대 로마문명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도, 하루만에 망한 것도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가 하루만에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을 넓혀서 장기간에 걸친 문화과정을 보면 문화는 점진적인 변화 또는 변모를 거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화 변동은 왜 일어나는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항시 새로운 해결방법을 시도한다. 어떤 사람에 의해 발견된 새로운 지식이 사회생활에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 이것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서 학습되고 전체사회에 확산된다. 이런 식으로 혁신(innovation)은 그 사회 문화의 한 부분으로 수용되고 굳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런 혁신들은 문화의 다른 부분들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연쇄적인 변동을 유발하게 되어 전체로서의 문화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또한 문화변동은 한 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 즉, 문화간의 접촉으로 전파되어 들어온 문화요소가 기존의 문화요소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변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문화의 변동이 내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든, 외래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든 변동은 문화의 기본적인 속성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모든 인간사회가 끊임없이 변동을 경험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안정을 유지하려는 경향도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만 하겠다. 변동은 항시 어느 정도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체로 변동을 추구하거나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즉, 사람들은 그들의 관습적인 행동유형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모든 사회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단기적으로 보면 문화는 변하기 어려운 성질을 가지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변하게 된다. 문화가 변화한다고 했을 때, 여러 문화요소 중에서 그 문화를 움직이는 결정적인 동인이 무엇인지, 나아가서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는 궁극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를 가치체계에서 구하고 어떤 사람은 기술에서 구한다. 이러한 논의는 모두 넓은 의미로는 문화변화론에 통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5) 윤리성
많은 문화인류학자들은 문화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보편 타당한 기준이 없다고 한다. 문화의 구분하고 비교하는 방법이 임의적인 것처럼, 특정 문화에 대한 평가의 기준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문화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대해서도 역시 회의적이다. 그러나 가치중립을 표방하는 과학으로서의 인류학적 관점을 벗어나면, 문화와 윤리의 관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곧 자명해진다. 이것은 문화와 도덕 혹은 예술과 도덕의 상관성에 관한 문제가 1차 세계 대전 후 문화위기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다시 부각되었고 이때 문화윤리학도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 문화윤리학의 이념적 토대는 사람은 그가 이룩한 문화에 대해 반성과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러한 판단의 일차적인 근거가 문화의 윤리성에 있다는 것이다. 윤리를 인간의 삶을 보전하고 촉진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규범적 가치라고 한다면 이 근본원리를 문화라 불리우는 인간의 구체적 삶에서 구현시켜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계몽주의자로서의 칸트는 자연 속에 주어진 소질과 가능성을 완벽하게 개발, 발전시키는 것이 문화, 즉 인간교육의 목적으로 보았다. 따라서 칸트는 문화를 자연의 체계 속에서, 즉 자연 속에 내재된 ‘유기적 힘’에 의존해서는 불가능함을 강조한다. 인간 존재의 고유한 의미와 인간의 문화는 자연질서 속에서 설명될 수 없고, 오히려 자연을 떠나, 자연을 노동 대상으로 삼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므로 문화는 인간이 만든 작품이고, 인간은 문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존재이다. 이때의 인간은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류로서의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의 문화는 한 개인에 그치지 않고 세대에서 세대로 인류 공동체의 공동 노력을 통해 축적될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칸트는 문화를 인간의 ‘반사회적 사회성’과 연관시킨다. ‘반사회적 사회성’이란 끊임없이 사회를 파괴하고 자신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와 같은 성향으로 인해 타인과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하기 때문에, 오히려 타인과 함께 사회를 이루고 살려는 인간의 특유한 이중적 성향을 일컫는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에게 이러한 성향에 근거한 타인과의 끊임없는 경쟁심과 투쟁, 자신의 명예욕과 지배욕, 소유욕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다면 문화의 진보, 곧 “조야함으로부터 본래 인간의 사회적 가치에서 성립하는 문화에로의 최초의 진보”가 불가능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 속의 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이기심과 적대심, 명예욕, 소유욕, 지배욕이 문화 발전과 사회 발전, 나아가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에덴동산(자연의 모태)에서의 인간의 ‘타락’을 칸트는 자유의 상태로의 진보, 곧 자연에서 문화로 이행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종교적 관점에서는 분명히 악이었지만 칸트가 보기에는 자연적 질서가 아닌 이성의 질서에 의해 시민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인류가 필연적으로 내디뎌야 했던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욕구의 산물로서의 시민사회 자체만으로는 문화적 이상이 완전히 실현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문화는 단지 ‘문명화’ 혹은 ‘문화화’에 그치지 않고 ‘도덕화(Moralisierung)’를 겨냥해야 한다. 칸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예술과 학문을 통해 고도로 문화화되었으며, 각종 사회적 예의 범절에 관한 한 과도할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문명화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성숙해 있다고 간주하기에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문화는 본질적으로 도덕성의 이념을 담고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선한 심성에 기초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단지 헛된 가상 일 뿐이며 겉만 화려한 비참함일 뿐이라는 것”이다.
문화신학자로서 슈바이처 역시 윤리성이 결여된 현대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슈바이처에 의하면 “인간의 창조능력의 발휘와 지식의 증대가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고, 그것들은 다만 문화활동에 부수되는 비본질적인 요건에 불과”하다. 문화 창조활동이 진정한 윤리적인 태도 위에 근거할 때에야 제대로 온전한 결과를 거둘 수 있다. 윤리적인 근거를 상실하면 아무리 훌륭한 창조력과 지력을 가지고서도 결국 문화 속에 위기를 배태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의 발전은 개개인이 전체의 진보를 목적으로 삼는 이성적 이상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가지고 현실과 관계하면서 그 이상이 그 사회상태에 가장 효과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형태를 취하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슈바이처는 현대의 비윤리적인 문화의 모습을 한마디로 ‘문화의 몰락’으로 보았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이러한 윤리적 반성을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화와 예술의 탈가치화를 더욱 촉진시켰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윤리적 규범이나 특정 이데올로기가 과도하게 문화나 예술분야를 규제하고 간섭하는 것은 예술이나 문화의 고유한 창의성이나 순수성을 침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창작물에 대한 당국의 검열이나 이익단체의 집단적인 캠페인 등이 그것이다. 또 기존의 경직된 윤리나 가치관에 대한 진지한 회의로부터 새로운 창조적인 가치관과 이를 토대로 하는 새로운 사회의 창조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 창조자로서의 인간의 가치를 도덕적인 반성에 있고, 특히 현대문화의 몰락이 근본적으로 윤리적 반성의 결여로부터 비롯되었다면 윤리성은 문화의 본질 요소이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기술이 진보하고 생활이 윤택해져도 도덕적 타락에 의해서 진정한 문화가 퇴보하고 몰락해 간다면 인간 역시 비인간화되고 사물화되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주체로서 인간은 문화에 대해서 윤리적인 이성적 이상을 품고, 좀더 주체적이고도 자유로운 목적의식을 가지고 문화를 창조하고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코리일보/COREEDAILYCoree ILBO copyright © 2013-2018.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