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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 Norton Anthology of Poetry Third Edition (1983)
John Donne (1572-1631)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웰시 가의 후손으로 그의 어머니는 존 헤이우드의 딸이며, 토마스 모어의 조카 딸이다. 가정적으로 문인의 배경을 가진 그는 시를 좋아하고 탐험을 즐기는 종교인이기도 했다. 1601년 그는 비밀리에 그가 고용되어 있던 그 당시의 영국왕의 경호실장? 정도 되는 가문의 딸인 앤 모어와 결혼을 한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고 가난한 삶을 영위한 그는 결국은 아이들을 낳으면서 다시 직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교회에서 그는 성직자의 삶을 살게 된다.
후일 그는 카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을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 영국에서 금기였던 관계로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King James 의 명령으로 오직 교회에서만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사제로서 그의 일생을 바치며 살았던 그는 전 영국에서 손꼽히는 명 설교를 했다고 한다. 1621년이 되어서야 결국 그는 Dean of St. Paul 에 취임한다.
** 이 시는 그가 죽은 후,아마도 그의 후손들이나 가족들이 그의 시를 발견한 때가 기준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든다. 그의 죽음도 참 아이러니 하다. 그 자신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앉아 있다가 실족한 후 며칠 지나서 영면에 이른것이다.
이 시는 사랑을 노래한 시다. 그런데 그가 형이상학적인 시인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만큼 우린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의 저변에 흐르는 것을 느낌을 이해하고 시대적 상황과 시가 품고 있는 행을 따라서 이해를 하면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우리 누구도 완벽히 이 시를 정확히 규정 지을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이 시는 사랑을 노래한 시다. 육체적인 사랑을 나눈후, 정신적인 사랑으로 더 확대되는 시인과 그 대상을 통해 시인의 사랑에 대한 관점은 어느 누구의 한 사람만의 바램으로만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짐을 보면서 너무 유리같은 사랑을 하고 있지 않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디지만 질 그릇처럼 오래 동안 사랑의 열기를 품고 지켜 나가는 아름다운 세계의 완성,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해서 실어 보았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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