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rates and Mencius : Similar Thinkers of Different Times and Places

 

< Audrey Kim’s Comparison between West Philosophy and East Philosophy)

흔히 많은 이들이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차이점에 관심을 많이 두며 둘은 융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철학을 어떻게 설명했으며 어떻게 풀어갔는가를 보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환경, 언어, 그 당시의 언어, 표현법 등 그들이 배웠던 것들 조차 달랐으나 그들이 사물, 또는 세상을 보는 눈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은 어떤 점에서 많이 비슷한가 또는 같은가 : 어떤  전제를 보고 그 전제가 옳은 것인가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제를 바탕으로 한 주장, 또는 사상이 올바른 가를 보는 것이다. 전제가 옳다면 주장하는 사상은 옳을 것이며, 전제가 틀리다면 사상도 당연히 틀리다.

사실 전제와 그에 대해 맞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논리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많은 이들이 생각보다 이해와 응용에서 아주 어려워 한다. 아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만약 [가] = [나], [나] = [다] 라면, [가]는 [다]와 같다. 또는 [가]는 [다]이다.

보통 여기서 끝이 나는데 사실 여기에는 적어도 하나의 답이 더 있다.

“만약 [가] = [나], [나] =/= [다] 라면, [가]는 [다] 가 같지 않다.”

즉 같은 것이 아니니 같이 비교할 수 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을 한다.

즉 연역적인 논리법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인데, 소크라테스도 맹자도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또 제대로 응용을 했기에 둘 다 언변이 좋았고, 그 들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으며, 또 반대 파들의 그릇된 논의의 약점, 또는 위선적인 “논리”를 깨 부수는데 제대로 쓰였던 것이라 생각이 된다.

소크라테스의 문답 교수법은, 어떤 전제를 보고 그것에 대해 답을 해가며 하나씩 깨우쳐 주는 방법이 있다. 보통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 적어도 한 번쯤은 격는, 많은 학생들 다수가 치를 떠는 방식인데 그것도 사실은 위의 방식을 적용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가 최민호의 책, “맹자”를 보면 맹자가 농가 (지도자와 국민 모두 농자를 짓고 자신의 옷을 직접 만들어 살며 자급자족을 해야 한다는 사상)에 대해 어떻게 반박을 하는 지 볼 수 있다.

일단 위의 방식을 쓰면 이렇게 풀 수 있다.

전제: 사회의 모든 갈등은 남보다 더 소유하기 위해 착취하고 빼앗는 것에 대해 생겨났다 (즉 평등하지 않아서 이다).
주장: 지도자를 포함한 모든 백성을 직접 농사를 짓고 옷을 짜 입어야 한다 (그럼 모두 평등해지고 행복할 것이다).

일단 위의 전제와 주장에는 어떠한 예외를 제기 하지 않는다는 것도 명심을 해야 한다.

그러기에, 전제가 옳다면 주장, 즉 사상도 옳아야 한다. 그러나, 맹자는 이렇게 풀어간다.

문: 그렇다면 농가의 창설자는 반드시 농사를 하는 가?
답: 그렇다.
문: 농가의 창설자는 반드시 천을 직접 짜서 옷을 해 입는가?
답: 아니다. 갈옷을 입는다.
문: 농가의 창설자는 관을 쓰는가?
답: 그렇다.
문: 그 관은 자신이 직접 짜서 쓰는가?
답: 아니다. 손수 농사 지은 곡식과 바꿔 쓴다.
문: 왜 그는 직접 짜지 않는가?
답: 농사에 방해가 된다.
문: 그럼 그는 솥과 시루로 취사를 하고 쇠로 만든 쟁기로 농사를 짓는가?
답: 그렇다.
문: 그 자신이 직접 그것들을 만드는 가?
답: 아니다. 그것도 곡식과 바꾸었다.

사실 맹자가 옷을 스스로 지어 입는 가 에서 부터 전제와 주장이 어긋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막상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막상 그 사상을 내 놓은 자부터 그렇지 않고 있으며, 또 그 사상의 무모함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이렇게 추론을 했다 (간단하게):
1.도공과 대장장이의 쟁기와 기물을 곡식과 바꾸어 쓰는 일은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들의 농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2.또, 그렇기에 농민들도 괴롭히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농사를 한 것을 누구와 바꾸어야 하며, 이것은 자급자족을 막기 때문에)
3.그렇다면 왜 농가의 창설자는 자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하지 않고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인가? 또 왜 그는 귀찮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가? (농사를 방해하는 것은 농가가 원하는 평등을 막는다. 농가에 의하면 오직 농사와 그에 이뤄지는 자급자족만이 평등을 이룰수 있기때문에; 이것도 농가의 전제)

여기에서 농가의 주제자가 하는 답은 이것이다: “그거야 여러 장인들의 일이야 원래 농사를 지으면서 같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맹자의 마지막 반격은 이렇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지도자의 일만큼은 농사를 지으며 같이 병행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답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라는 결과가 나온다. 왜냐?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결국 [가]와 [다]는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 교수법도 똑같은 방식이다.

 

<후편이 있어요~~~>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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