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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ing And Questioning of Historical Consciousness 부끄러움 또는 질문하는 역사의식 7<은우근 교수>

사진: 윤태호 기자

<Gwangju : Prof. Woogeun Eun>

8)”광주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월 민중의 장엄한 싸움은 일단 패배했으나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와 함께 싸우다 우리를 대신해 죽은 열사들에 대한 하나된 부끄러움과 죄책감 그리고 부채 의식으로, 또 함께 투쟁했던 긍지 안에서 이미 싸움은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18 구속자 가족들이 1981년 가장 먼저 외쳤다. “광주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 이 나라에 진정한 양심과 정의가 살아 있는 양심의 공화국이 세워지지 않는 한 양심과 정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제도와 권력의 폭압 밑에서 공공연하게 살해당하고 있는 한 광주 사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982년 5.18을 맞아 천주교 광주 대교구 사제단은 “광주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더 나아가 함세웅 신부는 1985년 5.18 추도 미사에서 “광주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 시작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2. 부끄러움 또는 질문

5월민중과 사제들에게 나타난 부끄러움은 단순하고 일시적인 느낌(feeling)이 아니었다. 감정과 이성의 전통적 이분법에 따를 때 감정은 도덕적 판단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니만 감정, 정서는 이성의 표현이다. 도덕 판단에서 감정 이입이 매우 중요하다. 감정 이입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판단 능력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능력, 곧 “감정이입적 이해력”(empathic understanding) 이다. 이 점에서 부끄러움은 하나의 도덕 의식을 반영한다. 감정이입적 이해력은 타자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으로서 공동체적 연대, 사랑의 능력과 직결된다.

80년 5월 19일, 카톨릭 센터 6층 집무실에서 윤공회 대주교가 느낀 가책은 미친 폭력의 만행에 대한 공포와 무력한 자신에 대한 역사 앞에서의 부끄러움이었다. 사제로서는 신 앞에서의 부끄러움이기도 했다. 자의식으로서 이 부끄러움은 자신에 대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신과 역사가 던지는 질문이었다.

5월민중과 사제들은 국가 폭력의 잔인성을 날것으로 목격하며,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사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어떻게 행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었다. 그 질문은 삶 전체로, 때로는 박관현(1953-1982), 김의기(1959-1980), 김태훈(1959-1981), 신영일(1959-1988) 등에서 보듯이 생명을 바쳐 응답할 것을 요구했다.

5월민주항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5월 26일 광주를 ‘탈출’하는 김성용 신부 역시 같은 질문을 안고 있었다. “이 순간 이 장소를 뜨면 도망하는 것이 아닌가.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비겁한 신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교회라고 비판받을지도 모른다” 라고. 그는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여러 사제들에게 5월민중항쟁의 진상을 전하며 같은 질문을 늘 간직했다. 여러 차례의 사제단 성명서와 강론 등에 나타나듯이 투옥되거나 연행되지 않은 다른 많은 사제도 이 질문을 항상 품고 있었다. 이 [카]톨릭 사제들에게 역사 앞의 부끄러움과 신 앞의 부끄러움은 분리되지 않았다.

이 부끄러움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은 “그 날… 거리에 있지 못하고 광주에서 빠져나가, 나 혼자만 살고자 했다는 사실을 학생들의 부름을 받은 총학생회장으로서 심히 부끄럽게 생각하며, … 죽어간 영령들에게, 또 죄없이 끌려가 고문을 겪은 선배, 동료,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총학생회장으로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 “항쟁의 거리를 빠져나간 부끄러움을 간직한 제가”, “구천으로 떠나가 아직도 너무 원통해 두 눈을 감지 못하고 있을 내 동포, 내 형제들의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 라고 부끄러움을 거듭해서 토로하고 있다.

같은 시기 전남대 총학생회 총무부장이었던 양강섭은 ” 내 친구들이 공수부대의 잔악한 만행에 쓰러져 가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살겠다고 도망치는 모습에 심한 혐오감이 생겨서 견딜 수가 없었다. … 고통스러움과 죄책감…” 속에 있었다고 고백한다.(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5월 민중항쟁사료전집” 풀빛 1990, P529)

80년 가을 필자는 광주지역에서 예비군 훈련에 참여했다. 첫날 자기 소개 시간에 한 예비군이 30여명의 소대원들 모두에게 대뜸 큰소리로 “비겁한 사람들! 살아있으니까 만나네요” 라고 말했다. 그는 공수부대 하사관 출신으로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죄책감은 이처럼 5.18이후 사제들과 민주화운동가 그리고 평범한 민중 사이에 공유되었다. 이처럼 자발적인 반성적 의식으로서 부끄러움이 집단적으로 출현했으며, 그것이 지식인 또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뿐 아니라 기층 민중에게 일반화되었고 장기적으로 유지되었다. 5월 민중의 정서로서 부끄러움은 다음의 몇 가지 점에서 의미 있는 자기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우연적인 것이 아니고 5월민중항쟁에서 국가 폭략의 폭압적인 행사를 겪으면서 특정 시기에 집단 정서로 형성되었다.

둘째,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10여년 이상 장기간 지속되었다.

셋째, 억압에 대한 저항과 좌절, 고립이라는 민중의 집단적 체험 과정에서 부채의식, 죄책감 같은 연관된 정서로, 한편 자부심과 긍지 같은 일견 모순된 정서로 표현되었다.

신진욱은 테일러(Charles Taylor) 의 연구를 토대로 도덕 감정이 “강한 도덕적 가치판단” 곧 고도의 도덕적 의식의 산물이고,  “성찰성”, “심층성”, “사회적 배태성” 이라는 세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요약한다.

성찰성은 반성능력과, 심층성은 개인 및 집단의 정체성과, 사회적 배태성은 사회. 문화적 자산과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5월 민중이 함께 지녔던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바로 이런 종류의 것이다.

부끄러움은 심리적으로는 우리의 자아를 반성하는 의식으로서 하나의 자기의식 (Self-consciousness), 자기에 대한 의식이다. 자기를 객관화, 대상화 시킨, 자기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의식이다. 자기를 반성하는 의식은 곧 자신의 현재 삶의 정당성에 대한 자기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 자체는 외부의 권력으로부터 강요된 것이 아니므로 자발적인 것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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