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of Intellectualism vs Awareness through Na & Yang’s Interactions

<이학 박사: 이선훈>

지성인과 지식인의 차이점의 정의를 기본으로 한 양승태와 나경원의 행태에 관한 정리

필자는 위의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지성인과 지식인이 최초의 문장에서 정리되고 정의되어야만 하는 것이 원칙이며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필자가 지성인과 지식인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해준 것이 이번에 양승태가 검찰출두과정에서 보여준 권위주의적 행태, 그리고 이에 대한 나경원의 유체이탈적인 어법을 이용한 책임회피와 자신들이 범해왔던 범죄적 행위를 적법절차에 따라 고발하고 징벌하려는 사람들에게 전가하려는 악질적인 행위였다는 점에서 지성인과 지식인에 관한 정의를 뒤로 했습니다.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선진사회에서 대법관, 대법원장은 지성인의 표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입니다. 물론, 한 명의 정치인에 불과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인 나경원이 대법관과 대법원장과 같은 정도의 지성인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더욱이, 나경원이 대표하고 있는 정당은 기본적으로는 독재를 지지찬양하며, 지금도 이명박근혜의 9년간의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심지어는 5.18광주민주항쟁과 박근혜의 탄핵마저도 부정하며, 자신들이 저질러 왔던 극단적인 정략적인 행위와 동일시하여 가치를 폄하하기 위해 국민을 기만하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대법관, 대법원장의 선임에 있어서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국회의 표결의 과정을 거치고 있어, 그 선임과정은 매우 정치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대법관과 대법원장에 선임된 자들이 선임된 것 자체만으로 그들이 지성인이라고 평가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법조인과 정치인들이라는 지식인들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탄생된 대표적인 지식인에 불과한 것이라고 정의해야만 할 것입니다. 법조인과 정치인이라는 지식인의 집단 중에서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지성인이 존재하며, 그들의 지지로 선임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도 있지만, 필자의 기억 속에서는 그런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아마도 지금까지의 최선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후보자들 중에서 지성인들이 상대적으로 조금 높은 평가를 내린 결과로서 선임된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선임된 대법관과 대법원장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그들이 대법관과 대법원장으로 선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지성인일 것이라고 평가하며 기대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이런 평가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권위주의에 입각한 편견과 선입견에 불과한 것입니다. 대법관과 대법원장은 물론이고, 어떤 선출직 또는 비선출직 공무원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도 그들이 지성인이냐는 평가는 그 직위에 선임된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직위에서 국민, 특히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약자들에 의해서 지성인으로 평가될 수 있는 행위를 하였는가로 가늠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필자는 최근에 루소의 저서들을 40년만에 다시 읽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삼 인민의 대부분인 약자들이 권력과 부를 가진자들의 거짓과 기만에 가득 찬 비논리성과 논리비약, 더 나아가서 유체이탈 (자신은 책임이 없는 타인의 일인 양 치부하는 것) 적인 발언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루소를 비롯한 당시의 사회계몽주의자들의 고뇌에 찬 모습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 내용들은 과거나 현재나 지성인이 가지는 그리고 가져야 하는 항구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지성인은 스스로의 모습에서 숨겨왔던 불편부당한 모습을 떠올리며 비참해지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더욱 중요한 일은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인간들도 최종적으로는 약자들에게 정의로움을 인정 받아 그것이 사회의 정의실현에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지요. 그러기에 지성인들은 누구보다도 처절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더욱 친절하고 더욱 진지하며 더욱 쉽게 설명하고 또 인내심을 갖고 듣고 또 고민하고 또 더욱 쉽게 설명하는 것을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들이 지성인들이 대부분이 약자들로 구성된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돌려 드리는 진정한 의무가 되는 것이겠지요.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가 지성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손하며 건방진 것이라고 최소한 스스로는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씀 드린 지성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충분히 인식할 것을 다짐하고 실행에 옮기기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라면 지성인이라고 스스로를 불러도 되겠지요. 자기반성과 함께 책임과 의무가 선행하는 자신에 대한 평가는 그 무엇 보다 가치 있는 것입니다.

지성인이란사물이나 사상을 정의함에 있어서 지식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이성에 기본을 두고서 논리적인 전개를 통해서 합리성과 객관성을 완성해가고자 노력하는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정의해 봅니다. 따라서 지성인은 어떤 순간에만 적용 가능한 어법 또는 트릭을 사용하지 않아야만 하며, 일관성과 항구성을 끊임없이 추구해 가야만 할 것입니다.

반면에, 지식인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입지를 튼튼히 만들어 가는 인간의 형태를 총칭하고 싶습니다. 물론 지식인은 지식이라는 도구를 풍부히 기억하고,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성인이 될 확률은 매우 높지만, 풍부한 지식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활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여, 기회주의적이며, 자기변명을 위하여 일관성 없는 어법과 트릭을 만들어 내는 권위를 이용한 사기꾼이 될 확률 또한 매우 높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양승태와 그에 부역한 대법관들, 그리고 나경원은 결코 지성인으로 평가될 수는 없으며, 그들은 양승태가 자신에 대한 변명의 수단으로 이용한, ‘오해’, ‘편견’, ‘선입견만을 가진 가장 퇴폐한 지식인의 전형인권위를 이용한 사기꾼이라고 단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이미 밝혀진 물적 증거들을 부인하며, 그 증거들이 모두 우매한 국민들이 잘못 이해하여 발생한오해라고 정의하고, 그러한오해를 발생시킨 것은 자신들과 정략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의편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편견이 대중에게선입견을 심어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변명을 하는 것은 당장에는 자신에게 부역했거나, 사법부의 권위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법부의 판사들을 선동하기 위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의 이런 발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들의 저지른 행위들을 정당한 것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국민들의 여론을 비이성적인오해’, ‘편견’, ‘선입견의 산물로서, 판단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로서 비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의 발언의 내용은 얼마 전 교육부 고위공직자가 표현한국민은 개, 돼지 같은 존재라고 말한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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