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바바라 클리드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태동했던 관객이론 모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은 주로 그것의 반복적이고 총체화하는 관점에 모아졌다. 이를 몇 가지로 정리해보면,
첫째, 정신분석학 이론은 지나치게 몰역사적이라는 주장이다. 클레어 존스턴은 1975년에 쓴 한 논문에서 이미 정신분석학이 정치적-문화적 이슈에 대한 진지한 개입을 흐려놓는다는 이유로 그 실질적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외디푸스 콤플렉스라든가 거세공포 같은 정신분석학의 ‘거대 내러티브(the grand narrative)’가 역사적인 문제를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존스턴은 문화적 갈등을 통해 지배문화의 약점을 드러내는 어떤 계기들처럼 늘 가변적인 사회의 ‘마이크로 내러티브(micro-narrativ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영화는 무의식 및 주체성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역사 및 사회와의 관련성 속에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신분석학이 관객중심주의 이론에 치중하고 나아가 실제 감상자가 아닌 ‘이상적인 관객(the ideal spectator)’을 상정한다고 비판한다. “사실 정신분석학적 영화이론에서 말하는 관객은 사회학자의 연구대상 내지는 시장조사에서 쓰이는 일반관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그저 ‘개념적인 공간(a conceptual space)’일 뿐이기 때문이다.” 극장에 놓여있는 무수한 의자들에 누구라도 앉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주체의 자리는 ‘텅 비어’ 있다. 그리고 아무나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곧 스크린의 감상이 상호 교환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관객 각자의 체험은 모두 동일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주체로서의 관객의 위치(자리)가 ‘영화기구’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러한 관객이론은 인종, 계급, 성차 등과 같은 여타의 요소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셋째는 정신분석학의 주된 문제는 그것이 전혀 과학이 아니라는 비판이다. 정신분석학은 믿을만한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학적으로 측정될 수 없다. 한 미국의 행태주의 심리학자는 프로이트 저작의 실제적인 난점은 그것이 단지 ‘불알(testicle)일 수 없다’는 데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검증할 수 있는(testable)’ 학문이 아니라는 뜻이다.39) 이에 대해 정신분석학은 그 본래적인 이론적 추상화 때문에 결코 증명에 의해 입증될 수 없다고 대답한다. 물론 정신분석학은 그 유용성만큼이나 결함도 많은 학문이다. 그렇다고 정신분석학을 영화에 적용하는 것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태동기의 정신분석학적 영화이론으로 퇴행할 수는 없지만 아직 적용의 여지는 많다. 왠냐하면 무의식의 심연(深淵) 만큼이나 영화의 바다도 넓고 깊다.
동시에 이상의 다양한 논의를 통해서 이제 관객은 수동적인 스크린의 호명된 주체가 아니며, 그는 권력자의 위치에서 이미지와 사운드를 이해하는 존재임이 밝혀졌다. 관객은 시나리오를 위한 그리고 시나리오의 주체로서 위치도 점할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관객들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하지만 관객이 이 캐릭터에 대해서 단일한 위치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으로서 관객은 단일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된 위치에 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관객성’은 이제 역사적으로 변동하는 집단의 문제로 파악되는 동시에 상호텍스트성과 관련되어 분석되어야 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영화텍스트를 둘러싼 모든 텍스트를 검토하고 그것이 독자로서 그리고 수취인으로서 관객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관객의 위치화 및 동일시와 관련된 위의 논의는 초기의 단일한 관객관이 보다 이질적이고 복수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서 관객이 어두운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응시하는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화적 이미지의 일방적인 전달이나 수동적인 수용이라는 전통적인 커뮤나케이션이론 대신 관객이 처해있는 특유의 상황성을 전제로 하는 관객과 영화 이미지와 상호텍스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능동적 수용자 개념이 기본적으로 고전적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이성적 주체적 존재라는 이념으로 부터 도출되었음은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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