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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 수요수필 7 <조준희 기자>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의 이야기 7

사고치던 어린시절 이야기를 뒤로하고 나의 스승, 나의 조선, 나의 아버지 (어부 편) 나의 낚시 인생에서는 당연히 빠질 수 없는 한 분이시다. 바른 생활의 사나이 제 동생보다는 이미 바르지 않은 생활의 아들이 되어버려서 더 이상 나빠질 상황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의 눈총 부담이 없는 저와 낚시 동행을 훨씬 많이 하셨다.

아버지와 낚시 정보를 입수하여 함께 낚시를 떠나 현장에 도착하면 철저하게 각자의 방법으로 낚시를 시작하는데 낚시 방법에 대한 전수가 끝난 후에는 절대로 간섭하시는 법이 없으셨다. 부자간이라 며 나의 스승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낚시꾼이 되어 버린 아들을 낚시터에서 만큼은 아버지와 동등한 조우이자 낚시꾼으로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아버지의 유물로 보유하고 있는 내가 가장 아끼는 낚싯대들은 약 30년 가량 되었다. 당시에는 가장 비쌌던 낚싯대인데 비싸고 좋은 소재의 신제품들이 많이 나온 지금도 조사들 사이에선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는다. 이 낚싯대가 당시 한 대에 약 30만 원 가량 했었는데 짜장면이 7백 원 가량 할 때이니 지금 환산하면 100만원도 훌쩍 넘는 상당히 비싼 낚싯대이다. 이 낚싯대를 구입하게된 스토리는 아버지의 길고 긴 60년의 낚시 역사 속에서 당신 스스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역사인지라 적어도 스무번은 더 들었던 기억이 난다.

1980년도 당시엔 향어라는 이스라엘 잉어가 국내에 유입되어 붕어보다는 맛도 좋고 사이즈가 큰 향어 낚시가 크게 인기를 끌어서 전문 유료 낚시터가 많이 생겼고 이때부터 유료낚시터의 전성기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향어는 물돼지라고 불릴만큼 먹성이 좋아 가두리에서 풀어 놓자마자 거의 2시간안에 잡혀 올라오기에 낚시터 사장님들은 입장한 조사들의 머리 수에 맞추어 1인당 2, 3마리 정도의 향어를 풀어 놓는다. 

나는 유료낚시터는 자연미가 없어 안 좋아하는데 아버지는 전국의 낚시터를 거의 다 섭렵하셨던지라 사실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연세도 있고 사람을 좋아하는 관계로 낚시터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과 친분도 돈독하여 유료낚시터를 많이 다니시게 되었다.

어느날, 아버님 지인과 양평에 있는 향어 낚시터로 조행을 떠나셨는데 이 낚시터에서 향어 대박을 터트리시며 “어부”로 탄생하셨다. 보통 1~2마리 잡으면 성공인데 가장 짧은 낚싯대 한 대로 수백마리를 낚아내는 상황이 벌어져서 낚시터 사장을 안절부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마침 그때 지나가던 동네 아낙이 광경을 보고 아버지께 향어를 한 두마리 얻어가게 되는데 동네 아낙은 동네 친구들에게 향어 얻어왔다고 자랑을 했던 모양이다. 동네 아낙들이 아버지의 향어와 물물교환용 부침개며 막걸리, 과일 등을 가지고 와선 계속 낚아 올리는 향어를 얻어가기 위해서 떼로 몰려 왔다고 한다. 아버지 주변으로 동네 아낙들의 응원과 함께 막걸리 잔치는 벌어졌고 끝도 없이 잡혀 올라오는 향어의 향연에 너나 없이 즐거운데 딱 한 사람 죽을 맛인 사람, 그는  바로 낚시터 사장이었다.

동네 아낙들에게 자신의 피 같은 향어를 퍼주고 있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사장은 결국 아버지께 사정을 하게된다. “사장님 더 이상 나눠 주지 마시고 제게 다시 팔아주십시요. 제가 다시 사겠습니다.” 당시 향어 한마리가 도매가격이 약 8천원 정도였고 소매가격은 1만5천원에서 2만원 가량하는 비싼 어종이었다.

어부도 아니고 잡은 향어를 돈 받고 판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신 아버지는 거절을 하시고 남은 향어 약 100마리 이상을 다시 낚시터 사장에게 돌려줬는데 낚시터 사장이 약 50만원 가량을 아버지의 주머니에 넣어 드렸다고 한다. 그 돈이 현재 내가 보유하고 있는 아버지의 낚싯대 두대, 그때 그것을 사셨다고 한다.

전설의 향어 스토리를 만든 짪은 낚싯대도 고스란히 보관하여 아들에게 물려줬다. 아들에겐 이 이야기는 아직 안 해줬는데도 어부의 손자라 어쩔 수 없는지 이 녀석은 할아버지의 짧은 낚싯대를 가장 좋아한다. 그 후로는 낚시터 사장과 친해지셔서 그 낚시터는 평생 무료로 이용하고 만약 향어가 안 잡혀서 꽝치는 날에는 낚시터 사장님이 손맛을 보시라고 배에 향어를 싣고 나가서 아버지 낚싯대의 찌 앞에 향어를 떨어트려 주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함께 갔던 아버지 동생인 삼촌의 증언으로 사실로 확인 되었으며 두대의 비싼 낚싯대가 전리품으로 인증을 받았다. 나는 아직  내 아버지처럼  어부는 못해봤다. 아버지는 그때 생선을 낚은 것이 아닌 어쩌면 세월, 내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이 시간들을 낚싯대에 건져올리셨는지도 모르겠다.

 

To be continued ~

서울 : 조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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