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4<강원대, 윤금자 교수>

(Photo from Google Images)

<Korea: Prof. Yoon, Geum Ja>

현실적인 치유 방법은 그들의 비호감적인 성품을 탓하지 말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의 인품, 시간, 정신을 지킬 수 있다. 이해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원함, 처해진 상황, 난제 등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며, 그 결과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나고 괴팍한 성품뿐만 아니라 우리자신의 성품도 둥글고 자연스러운 성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모두가 하나가 되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성인은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정성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 성인은 겉보기에 불량해 보이고 부족함이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분명 본연의 맑고 선한 자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품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그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연성과 좋은 재능을 잘 가꿀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선하지 못한 사람의 품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가를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으로 삼을 수 있게 한다.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노자 27장)

수용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여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우리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을 점차 이해하게 되면서 그 사람을 마음으로 수용하게 된다. 수용이란 형식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정성이 깃든 인간관계이다. 우리에게 심한 상처를 주었던 사람은 생각 만해도 불쾌한 감정이 치솟아 견디기 힘들어 그를 마음에서 밀어내기에 급급한데, 어떻게 그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정신(혼)과 육체(백)가 하나로 합해져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정기를 모아 유순해지는데, 어린아이의 상태처럼 될 수 있는가? 잡념을 깨끗이 씻어내고 깊이 관조하는데 흠이 없을 수 있는가?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위자연으로 할 수 있는가? 감각기관과 외부세계가 접촉하는데, 고요함을 지킬 수 있는가? 모든 방면에 통달하면서 계략을 쓰지 않을 수 있는가?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재영백포일  능무이호   전기치유  능영아호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척제현람  능무자호   애민치국  능무위호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천문개합  능위자호  명백사달  능무지호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생지축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불재  시위현덕 (노자 10장)
이 문장은 개인의 수양과 인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포일’은 수양을 통해 나 자신의 혼과 백의 합일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과의 합일을 이루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분별하지 않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합일하는데 장애가 되는 대립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노자는 어린아이처럼 지모와 탐욕이 없고 깨끗한 현람의 상태에서 주변의 사람이나 생명체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 주위에 분명 호감이 가지 않고 볼수록 싫은 사람이 있다. 사람이 보기 싫을 때는 이유가 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의 특유의 단점이 있을 때 그를 마음으로 수용할 수 없다. 로저스의 말처럼 “수용은 이해와 관련되지 않으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싫어할 때는 그 사람의 특유한 단점만이 싫어하는 이유가 되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분명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싫어하고 수용하지 못한다. 우리들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식이나 환경에서 익숙해진 습관 등은 우리들의 고집과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잣대로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 ,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노자 28장)
노자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과 같이 대립적인 이분법으로 나누는 그릇됨을 지적했고, 있음(有)과 없음(無)이 서로 생겨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포함하고, 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듯이 모든 것은 서로 상관적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이치, 자연의 이치는 대립이 아니라 상호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배타적으로 대할 때 나와 너는 모두 소외될 수밖에 없다.『노자』제4장의 ‘和光同塵’은 서로 상생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빛과 먼지, 즉 인품이 좋은 사람이나 인품이 천박한 사람이나 알고 보면 본연의 자연성은 다 같기 때문에 서로를 수용하고 포용하는 ‘포일’은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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