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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Trip to Yongwol and Namyangju ; King Danjong of Choson and his Exile

차용국(“한양문인회” 회원, “내일로 가는 시인들의 나라” 멤버)

사랑만은 남으리

– 영월 ~남양주 기행

영월에 도착하자 해가 산 꼭지에 걸려 있다. 산속 마을은 노을을 만들지 않는다. 하지를 지난 해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산을 넘어가기 때문이다. 산봉우리가 사방팔방으로 지키는 오지 마을에서는 짙은 어둠 속에서 별들과 이야기를 한다. 솔솔 부는 바람이 전하여 주는 전설 같은 옛이야기.

몇 년 전부터 영월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이런저런 바쁜 일과 일정이 가로막곤 했는데, 마침 이번에 문학기행이란 좋은 기회를 놓치면 어찌 그 후회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내게 영월 기행은 그만큼 의미가 크고 이유가 충분하다. 오래도록 옥 쥐고 있던 빚을 갚는 의식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시작은 남양주 ‘사릉길’에서였다. 나는 당시 평내호평역에서 백봉에 올랐다. 일찍 산행을 시작했기에 점심때가 되기 전에 금곡역으로 내려왔다. 경춘선을 타러 가는 중에 사릉이란 안내표지가 보였다. 사릉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사릉을 찾았다. 사릉은 조선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을 그리워하며, 영월을 바라보며 죽을 때까지 슬퍼했다 하여 능 호를 사릉이라 했다. 능 주위에 우람한 소나무들이 그 사연을 들어주고 기록하여  바람에 전해 주었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전설과 신화가 되고 전해지는 것이니까. 순간 나는 정순왕후가 되어 시조를 지었다.

어리고 여리신 님 영월에 계시기에
동망봉 올라가면 행여나 보이실까
오르고 또 올라 보는 그리움의 세월아

강물이 막아서고 산맥이 버텨서니
하늘에 구름인들 제대로 넘어갈까
사무친 그리운 사연 전할 길이 없구나

못다 한 사랑 꽃은 죽어서 핀다 하니
산새여 노래하라 바람아 전하여라
세상사 야속타 한들 사랑만은 남으리

(졸작, 사릉길, 전문)

기억도 희미한 아주 오래전에 태백산을 등산하고 영월을 거쳐 여행했었다. 그때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역사 교과서 정도의 간략한 정보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왕후로부터 시를 받고 나니 영월을 다녀와야 할 것만 같았다. 무언가 답례는 해야 할 것 같기에.

영월을 적시며 흐르는 동강이 섬을 하나 만들었다. 청령포다. 단숨에 헤엄쳐 건널 수 있을 것만 같은 좁은 강폭 사이를 배가 수없이 오락가락한다. 이 배가 청령포로 가는 유일한 운송수단이다. 배에서 내리면 거대한 소나무숲을 만난다. 유배된 단종이 앉았다는 수령 600년된 관음송은 지금도 여전히 푸르기만 하다. 세종의 총애와 집현전 학자들의 교육을 받으며, 여덟 살에 세손에, 열 살에 세자로 책봉된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왕이 된지 2년 만에 승하하자 열두 살에 왕이 되었다. 치열한 권력투쟁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정적 황보인과 김종서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삼촌 수양대군(세조)은 단종을 이곳으로 유배했다. 강과 벼랑으로 담을 친 천혜의 감옥이었다. 단종은 이곳에서 두 달을 보냈다.

장릉에 왔다.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는데, 이 장릉도 마찬가지다. 강원도에 있는 유일한 왕릉이다. 물론 단종의 릉이다. 결국 단종은 사약을 받고 죽었다. 열일곱 살 어린 나이였다. 세조에게는 커가는 단종의 존재가 위협이었을 것이다. 냉혹한 권력의 생리는 이처럼 잔인한 것이던가? 12월의 눈보라 속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 엄홍도라는 관리가 서슬퍼런 감시를 피해 몰래 시신을 수습해 이 릉에 묻었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삶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리움이다. 영월과 남양주에서. 이제 사릉에서…

청령포 돌고 돌아 떠나는 하얀 새야
양주골 내 님에게 내 마음 전해다오
혼백이 진토되어도 그리움은 남는구나

(졸작, 청령포에서, 전문)

운길산역에서 내려 진중리 마을 고샅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 보면, 푸른 하늘로 두둥실 떠다니는  뭉개구름 사이를 비집고 햇볕이 쏟아진다. 한때의 권력을 거침없이  휘둘렀던 땡볕의 오만함을 비웃듯 살랑살랑 바람도 불어와 나뭇잎과 흥겹게 춤을 추기도 한다. 풍요로운 들을 지나 느릿느릿 운길산 중턱에 자리잡고 연꽃처럼 피어있는 수종사를 찾아가는 길은 아름답다.

수종사란 사찰명은 부스럼 치료를 위해 머물던 조선 세조가 밤새 범종 소리를 듣었던 곳을 찾아가보니, 그 소리가 18나한을 모셔놓은 토굴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였다고 한다. 수종사라 불리게 된 연유이다. 수령 600여 년 된 은행나무도 이때 심었다고 전해진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산 너머 사릉을 생각했다. 냉혹한 지존도 어쩔 수 없는 심약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생의 말련에 돌아보는 기막힌 지난 삶의 회한과 참회는 어떠할까?

구름도 쉬어가는 운길산 산사에서
수심은 깊고 깊어 잠들지 못하는데
종소리 애절하구나 흔들리는 문풍지

온 밤을 지척이며 들었던 그 소리가
똑똑똑 떨어지는 물소리 너였구나
평생에 지은 큰 죄를 어찌 씻고 살거나

(졸작, 수종사에서, 전문)

남한강과 북한강이 정답게 만난 두물머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삼정헌에서  정갈한 차 향이 은은하게 피어난다. 이곳은 풍경이 빼어나서 스님들의 사랑방으로, 산행자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삼정헌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는 그림처럼 펼쳐진 평화롭고 세상과 자연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져 있다. 이 아름다운 산하를 바라보며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세상에 대해 티끌만한 욕심도 내려 놓기를, 그래서 자연속에서 잠시 쉼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호흡이 있는 날까지…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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