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 Prof. Lee, Kangwha>
5) 기억과 트라우마
이제, 기억의 문제를 우리 사회의 논쟁적 주제와 관련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역사적 재현의 문제와 관련된 가장 첨예한 현안은 바로 ‘국정 교과서 문제’와 ‘위안부 문제‘이다. 이 중에서 한국사에 대한 관점과 관련된 공적 논쟁인 ’국정 교과서문제‘보다, 소수의 특수한 집단의 개인적 기억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위안부 문제‘가 ’기억을 둘러싼 담론‘의 쟁점적 특성을 훨씬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역사적 관점을 함축하고 있는 이 주제의 담론적 논쟁은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 할머니들의 기억이 왜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어야 하며,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과거가 왜 우리들 기억의 또 다른 원천이 되어야 하느냐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억과 관련하여 20세기의 전쟁과 대량학살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차용할 수 있는 용어가 ’트라우마‘이다. 그리고 이때 특히 주요한 개념이 ‘내러티브 기억(narrative memory)’과 ‘트라우마 기억(traumatic memory)’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런 구분을 처음으로 시도한 프랑스 정신과 의사 자네(Janet)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습관적 기억, 내러티브 기억, 트라우마 기억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능력에 해당되는 것이 ‘내러티브 기억’으로 인간이 경험으로부터 의미를 생성하는데 기여하는 정신활동이다.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이야기 체계에 능동적으로 편입시킴으로써 개인은 정상인의 심리를 유지하고 살 수 있다. 이와 달리 내러티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기억이 있는데 바로 트라우마 기억이다. 극도록 충격적인 체험인 트라우마 기억은 내러티브에서 이탈하여 무의식에 고착함으로써 의식의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철저히 고립된 사건으로 사회성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트라우마를 논의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홀로코스트(Holocaust)이다. 나치에 의해서 자행된 유대인과 여타 소수민들의 제노사이드(genocide)를 가르키는 홀로코스트는 오늘날 서구 세계의 자기 이해와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미국의 문화 이론가 호이센이 지적했듯이 전 세계 여타 제노사이드를 비추는 강력한 프리즘이 되었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는 특정민족이나 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은 전 지구적 차원의 트라우마를 대변하게 되었다. 혹자는 홀로코스트 경험의 참혹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전쟁으로 일관된 20세기 전체를 ‘포스트-트라우마 세기(post-trauma century)라고 자리매김하기도 하였다. 상황과 양상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 근대사의 경우에는 일본군 위안부와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그리고 5.18 민주화 운동 등이 유사한 경우일 것이다.
이런 상황과 관련된 생생하고도 충격적인 과거는 당사자가 이해하지 못한 불가항력의 광경들이다. 이 사건과 관련된 기억들은 적절한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시간의 경과가 무색한 생생한 이미지가 되어서 끊임없이 현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서 삶을 잠식해버린다. 이것을 어떤 식으로 증언해야하지만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하기에, 내러티브적 기억이 되지 못하고 무질서하게 반복되는 트라우마 기억으로서 강박관념을 드러낼 뿐이다. 이처럼 논리적 내러티브로는 온전하게 보여줄 수 없는 기억의 재현이기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과거나 현재라는 유기적 관계에 기초한 역사란 무의미하며, 진위판별이나 인과적 설명, 내러티브를 통한 합리적 재현 역시 트라우마를 상쇄할 수 없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트라우마를 포함하는 기억이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실존적 고통의 현존이며 이외의 모든 논리적 설명은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내러티브로 환원될 수 없는, 비체계적인 트라우마의 기억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뒤늦게 나타나 수시로 고통을 호소하면서 현재와 갈등을 빚는 무의미한 과거의 상처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혼돈을 통해서 역사적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표피적이고 편파적인가를 보여주면서 과거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열어주는 행위일까? 아니면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부조화를 통해서 과거의 의미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시도하는 것일까? 앞에서 지적했듯이 어떤 사건이 기억으로 사유되기 위해서는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며, 그것이 사적인 기억인 경우, 그 불명확함이 가중된다. 따라서 역사와 기억에는 망각이 뒤따르게 되고 과거의 사건들은 불투명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트라우마가 역사적 경험을 간접적으로 지시할 뿐 과거를 온전하게 재현할 수 없으며, 트라우마 기억의 당사자가 자신의 의식을 지배하는 생생한 이미지를 온전하게 풀어낼 수 없음도 인정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물화의 위험성, 즉 트라우마를 지닌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희생자 의식을 특권화 함으로써 한 사회 전체에 희생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배타적인 자기 정당화라는 오류를 보여줄 수 있음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기억의 전수이고 이때의 기억은 이른바 ‘사후적 기억(postmemory)’이기에 이것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의 격차가 개입되기 마련이며, 기억을 이루는 개개의 요소들도 충격의 정도에 따라 의미가 ‘전치’되고 그 모습도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트라우마 혹은 트라우마적 기억이 왜 한편으로는 전혀 기억할 수 없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원초적인 생생함을 유지하면서 순식간에 출몰하는지, 왜 외부로부터 가해진 충격이 온전히 체험되지 못한 채 내면적 상처로 억압 되어있다가 원래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 뒤늦게 강력하게 체험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기억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앞세운 역사적 인식 이상의 호소력과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트라우마에서 흘러나오는 절규는 당사자가 상기하기에도 너무나 고통스럽고 또 그만큼 두렵고 생경하다는 의미에서 그 만큼 더 절실하고 진실한 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소리를 내는 자아에 의한 합리적 기억의 재현이 당연히 불가능한데도, 이른바 객관적 위치에 서서 기억의 불확실함과 증언의 불일치함, 발화자의 비합리성을 이유로 발언에 대한 신뢰성 운운하는 것은 트라우마의 깊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안이한 언설일 뿐인 것이다.
이처럼 기억은 한 개인의 패배와 비극 그리고 주관적 기억에 대해서 단순한 연대기적 이해에 끝나지 않고, 올바른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만 가장 절실하고도 진실된 역사로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와 관련된 역사적 논쟁에서 필요한 것은 학문적 실증성과 객관적 입장을 앞세운 기억들의 의도적인 왜곡이나 소멸이 아니라, 이들 할머니들의 기억과 증언을 우리들의 기억과 증언으로 이전시킴으로서 함께 과거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상상하는 것이다. 즉, 일본 측의 금전적 보상에 대한 수령여부의 문제 이상으로, 과잉된 민족주의적 정서를 비난하면서 수정주의적 역사쓰기를 시도하는 일부 역사가들에 대한 비난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민족과 젠더의 권력구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보편적 질서를 불러낼 방법을 창출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때 할머니들의 기억이 이런 작업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역사적 화해 문제도 이와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다. 개인적이던, 집단적이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화해는 필요하다. 문제는 시점과 내용 그리고 방법이다. 화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과거사의 망각이 또 다른 폭력이나 트라우마의 중층적 과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과거와 기억이 합리성과 역사성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트라우마의 근원이라는 목격하기 불편한 본질적 실체에로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 지속적인 증언과 이를 상징하는 표상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소녀상’이라는 조형물은 개인적 기억을 형상화한 것을 넘어서서 기억의 사회적, 국가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기억을 수행하는 개인의 고유한 의지와 이를 수렴하는 심성으로서의 집단 의지를 어떻게 구분하고 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과제를 지속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공감과 애도에 근거한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이다. 그렇지 않고 흔히 제기되는 미래의 역사발전과 상호간의 전향적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피맺힌 과거를 잊고 화해를 시도한다면 이것은 “균질적이고 획일적인 시간에 자기를 맡기려는 시간축의 전제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일부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개념을 나치의 민족 말살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란 원래 신에게 올리는 제사라는 의미도 담고 있어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나치 학살자들이 제사장이라는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용어 대신 쇼와(Shoah)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말살과 파괴를 뜻하며 무엇보다도 타민족에 의한 유대인 말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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