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풍나무
물방울의 옷을 입고
잎잎에 숨겨진 빛의 길을 걷고 있다
수천 수만의 발목을 잡는 물방울들이
색깔 옷을 입고 잠복하고 있다
물든 다는 것은
한 색깔과 한 색깔이 뒤섞여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일까
몸 안 허기들이
숨벅숨벅 숨을 들이켠다
물방울의 방마다 잠복해 있던
벼랑 끝 헌화로의 꽃으로 건네지는
레아*의 처연한 달빛과,
심해에서 소리없이 스며드는
소금의 쓰라린 빛깔까지 건너오고 있다
물든 다는 것,
당신의 색깔로 온전히 붉게 물든다는 것은
내가 지워졌다는 것일까요
당신이 나로 스며졌다는 것일까요
*** 이 시는 서경숙 시인의 시집 “햇빛의 수인번호”( 시학 시인선 060) 에 나온 시다.
*레아는 성경에서 나오는 야곱의 아내, 레이첼의 언니이기도 하다. 야곱은 레이첼의 언니, 즉 첫번째 부인이며, 야곱은 두 번째 여인인 레이첼을 더 사랑한다.
가을을 음미할 수 있는 시다. 창가에 앉아 국화 차 한 잔 마시며 시를 읽으며, 정원에 있는 나무의 낙엽이 바람에 뒹구는 늦 가을, 겨울의 초입에 이 시를 읽으면 참 좋겠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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