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from Google Images)
靑谷 김호천
A B C 글자를 써주는데,
가운데 놈 B가 손짓해 눈길을 끄는데
활을 당기는, 악 다문 입, 숨차하는 노인
흥이 너무 무거워서 썰렁하고,
발로 차서 엎어 놓으니,
푸른 산, 아스라한 속에 시냇물소리,
뭇 새들 재잘거리는 소리 맑게 울려
바람결에 묻어 오는 것 같고.
별빛 내리고 달 뜬 주단綢緞 덮고
시름 잊고 싶은, 황홀한 세상일 것이지만,
가슴 울렁이는 묘미가 없다.
슬며시 또 보니, 아, 황홀 하구나.
햇볕 뜨거운 여름날 바닷가 모래밭
엎드린 구릿빛 부드러운 곡선들,
곡선, 곡선, 곡선 들의 합창.
물 먹은 엉덩이 들의 행진.
옳거니,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입술에 침 마르는 설렘이 있으니, 좋구나.
고개를 기울여 또 보니 봉화 라도 피어 오를 듯
마주보는 두 구릉 사이
달콤한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른다.
** 이 시는 청곡 김호천 시인의 시다. ABC 글자의 생김새를 따라 사유하는 시인의 상상을 통한 시적 관조가 참 돋보인다. B 와 여름, 모래밭 위에 엎드린 “곡선” 들을 보며 끌어 당기는 카메라 줌, 생각속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과 흡사하다. 흥미로운 대유법, 이 시에는 그러한 소스들이 가득 들어 있다. 마치 “달콤한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른다” 는 시인의 고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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