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9일(현지 시간, 서울- 김광식 기자)
오늘은 세월호 침몰사고 1000일을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자와 생존자를 위해 눈믈을 흘린 날로 기록될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먼저 유명을 달리한 304명의 영혼과 함께 생존자 ‘단원고 학생들’이 포함된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에는 수많은 학생과 교사, 또는 일반인 여행객들 과 선내 직원들이 포함된다.
장예진(20)양 등 세월호 생존 학생 9명은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올해 첫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해 단상에 올랐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이 촛불 집회에서 공개발언을 하기는 처음이다. 무대에 막 오른 순간에는 표정들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친구와 유족, 시민들을 향한 발언이 계속되는 동안 이들의 눈가는 계속 물기를 띠어 갔다.
장예진양은 “저희가 온전히 입장을 말씀드리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챙겨 주시고 생각해 주셨던 시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장양은 “저희만 살아나온 것이 유족분들께 너무 죄송하고, 죄 지은 것만 같다”며 “너희는 잘못이 없다. 힘 내야 한다”며 오히려 응원하고 걱정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는 너무 죄송했고, 지금도 너무나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친구들 페이스북에는 그리워하는 글이 잔뜩 올라온다”며 “친구들이 보고 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기도 하고, 꿈에 나와 달라고 간절히 빌며 잠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들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정부 담당자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장양은 “저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하였다. 직접 구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나 그들은 지나쳤다. ”친구들은 가만히 있으라 해서 있었다”며 참사 당시 구조체계의 총체적 부실을 지적했다. 이것은 결코 개인 의견이 아니다. 서로 논의를 하여 1000일만에 내놓은 공식적인 발언이다. 다음은 장애진양이 읽은 읽은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이다.
“구하러 온다고 해서 정말 구하러 와줄 줄 알았습니다. 헬기가 왔다기에, 해경이 왔다기에 역시 별 일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지금,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게 됐고 앞으로 평생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아마도 저희가 잘못한 게 있으면 그것은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꺼내기 힘든 이야기지만 저희는 저희만 살아나온 것이 유가족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하고 죄지은 것만 같습니다. 처음에는 유가족 분들을 뵙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고개조차 들 수 없었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며, 어떤 원망도 다 받아들일 각오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너희는 잘못이 없다며, 힘을 내야 한다며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하고 걱정하고 챙겨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는 더 죄송했고, 지금도 너무나 죄송합니다. 어찌 저희가 그 속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안부도 여쭙고 싶고 찾아뵙고도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혹시나 저를 보면 친구가 생각나 더 속상하실까봐 그러지 못하는 것도 죄송합니다. 저희도 이렇게나 친구들이 보고 싶고 힘든데 부모님들은 오죽하실까요. 3년이나 지난 지금, 아마 많은 분들이 지금쯤이면 그래도 무뎌지지 않았을까,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싶으실 겁니다. 단호히 말씀드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친구들 페이스 북에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글들이 잔뜩 올라옵니다. 답장이 오지 않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카카오 톡 메시지를 보내고, 꺼져 있을 걸 알면서도 받지 않을 걸 알면서도 괜히 전화도 해봅니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기도 하고, 꿈에 나와 달라고 간절히 빌면서 잠에 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에 나와 주지 않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친구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물 속에서 나만 살아나온 것이, 지금 친구와 같이 있어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하고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생존 학생들도 여전히 7시간에 대해 궁금해했다. 만일 그 황금같은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살아 남았을 것이며,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잃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았던 그 7시간. ‘대통령의 사생활이다. 그것까지 다 알아야 하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대통령이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나타나지 않았던 그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 받고 제대로 지시해주었더라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주었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를 낳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대로 지시하지 못했고, 따라서 제대로 보고 받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럼 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큰 사고가 생겼는데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제대로 지시하지 못했을까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부패한 현실과 부패한 정부의 모습을 보고 있다.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또 다른 암묵 속에서 그들만을 위한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현실은 속고 속이는 거짓말의 왕국으로 떠올랐다.
“지금 국가는 계속해서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합니다. 국민 모두가 더 이상 속지 않을 텐데, 국민 모두가 이제는 진실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사실 그동안 저희들은 당사자이지만 용기가 없어서, 지난날들처럼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서 숨어있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저희도 용기를 내보려 합니다. 나중에 친구들을 다시 만났을 때 너희 보기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왔다고, 우리와 너희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던 사람들 다 찾아서 책임 묻고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희와 뜻을 함께 해주시는 많은 시민 분들, 우리 가족들, 유가족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조속히 진실이 밝혀지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먼저 간 친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희들을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 우리가 나중에 너희들을 만나는 날이 올 때 우리들을 잊지 말고 18살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발언이 끝나자 자녀들을 잃은 세월호 유족들이 무대로 올라와 학생들을 품에 안고 위로했다. 학생들은 눈물 젖은 얼굴로 유족들을 마주 안았다.
그때 모든 청중들을 울린 음악이 하나 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이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 노래가 닫혀진 양심, 닫혀진 위정자의 가슴에 메아리로 울려 퍼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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