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 Prof, Kim, Kwangsik>
언론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체제
민주주의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Ἀγορά” 아고라 로 불리우는 말에서 유래되며, 합법적인 일반 ‘시민’들이 ‘정치를 논하는 장소’로서의 광장 또는 언론도 가능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관계로 장이 서는 곳, 즉 시장, “시민과 광장”을 의미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공정한 시장경제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더 튼튼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체제는 보통 일반 사람들을 의미하는 시민들에 의해서 발전되고 유지된다. 즉, ‘인간은 차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평등한 존재’라는 생각을 할 때, 민주주의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전파될 때, 민주주의의 쌍두 마차는 ‘평등과 공존을 위한 자유’ 라는 이름으로 힘차게 달릴 수 있다. 마치 지금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들이 모여 커다란 횃불이 되듯이 말이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는 많은 언론들이 모여든다. 그 가운데는 JTBC와 경향신문, CBS와 한겨레신문을 포함하여 일반 신문사들과 방송사들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물론 지금과 같은 시대에도 극우행동을 전파하는 극우 신문과 방송사등도 많이 몰려든다.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거기에는 시위대중과 비슷한 성격의 언론들이 많이 모여든다. 이 가운데 일제 강점기시대 때부터 살아남아, 지금도 보수신문으로 국민들의 가정교사 역할을 자임하는 그런 언론들도 있다. 오염언론의 역할은 정확한 사실 보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론)사업을 위해서 전력질주하고 있다.
소위 오염언론이라 칭할 수 있는 극우 언론의 사설과 논설, 칼럼 등을 읽어보면 그들은 한없이 대중을 가르치려고만 한다. 그들은 정부의 언론정책에 앞장 서서 나아간다. 왜 그런가 하면 정부와 협조를 할 때, 거기에는 엄청난 자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극우 보수언론은 그 ‘봉건성’이 정당과 정부와 궤도를 같이 한다. 보수언론이 앞에서 북을 쳐주고 한국의 인권을 무시하는데 앞장을 선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한국의 ‘관료적 권위주의 정부’와 함께 지금의 한국을 이끌어 온 것이다.
이때 재벌들은 성장해 왔지만, 그러나 민주주의는 장송곡을 울렸던 것이다.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가 봉건성을 띠는 이유는 확실하다. ‘봉건성’은 광범위한 토지 소유와 함께 신분제에 의한 강요된 인간관계가 되풀이 된다. 한국의 토지소유는 심각하게 불평등하다. 인간관계도 거의 신분제에 가까울만큼 기울어져 있다. 오죽하면 교육부 정책심의관이 ‘개 돼지만도 못한 일반 대중의 삶’을 비웃었을까?
언론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자세히 보자. (언론)회사는 언론사주라는 사람의 일가가 이끌어 간다. 언론사주들은 대부분 일반 사회 대기업의 주주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기자 한사람 한사람의 기사 논조까지 전부 알고 있다. 그 밑에 평 기자들 사이의 인간관계는 기묘하다. ‘선배’ 또는 ‘후배’라는 용어를 많이 쓰긴 하지만, 기자들의 역할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주필, 논설위원, 편집국장, 부장, 차장, 평 기자, 인턴 등 일반회사와 같은 서열 위주의 차별화가 되어 있다.
정부에는 언론관계 예산이 확보되어 있다. 이 예산과 언론소비자에 대한 판매자금, 그 밖에 많은 사업 등을 통해 언론사를 이끌어가는 기본자금은 그런대로 마련한다. 물론 언론사가 망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 과당경쟁 때문이다.
지금 정부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화 한 통화를 하면, 언론사의 논조도 바로 바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유권자들이 많이 보는 언론사를 책정하는 그 순간부터 치열한 리얼리즘이 작동한다.
이때 그런 언론의 정당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업체의 기자들과 논설위원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우선 제대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 촛불’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는, 하나는 국민이 부르는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적 언론이 국민들을 따라 부르는 노래가 될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 체제는 한 사건이 두 번 되풀이 된다고 보면 된다. 하나는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건을 서술한 언론을 통한 Reflection 을 통해서이다. 결국 언론보도가 공정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민주주의는 기대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퇴보할 뿐이며, 오직 민주주의는 상상 속에서만 자랄 뿐이다. 즉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배양, 육성시킬 수 있는 플랫폼이 된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시절에 우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지금 한국, 미국,세계의 모든 비 민주적인 민주를 지향하는 정부아래서 사는 국민들은 말이다.
저널리즘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인 요즘, 최전선에서 진실과 허구가 판을 치는 전쟁터에서 진실의 끈 하나 놓치지않기 위해 열심히 싸우며, 뛰고 있는 진정한 언론들이 살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결코 허망하게 쓰러지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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