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_ 아버지
김원식
아버지는 칭찬도 화를 내며 하셨다
전교 우등상을 받던 날
궐련은 물며 아버지는 혀를 차셨다
“노름판에서 논밭뙈기 쏵 날려 불고
저것을 어찌 갤 켜, 먼 조화여 시방.”
눈보라에 빈 장독 홀로 울던 새벽,
몰래 생솔가지로 군불을 때주시며
한숨이 구만 구천 두이던 아버지는
자식 사랑도 당신 타박으로 하셨다
사립문 옆 헛청에서 나뭇짐을 부리며
시침 떼듯 진달래를 건네주던 당신께
나의 숨김은 하나만은 아닌 듯하다
구들장 틈으로 새는 연기를 참으며
자는 척, 당신의 눈물을 본 것이요
꼭 탁한 아비가 된 나를 본 것이다
아직 서슬 퍼런 지청구는 여전한데
여태 당신 속정 까지는 닮지 못했다
*** 이 시는 “그리운 지청구” 란 시집에 실려있는 시다. 이 시를 읽으며, 데칼코마니, 미술화법의 하나다. 그림이나 판화를 도자기에 입혀서 입체감을 주는 화법이다. 시인은 지청구란 하나의 도구를 이용해서 아버지에 대입 시키고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표현법을 사용했다. 지청구란 단어를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보았다. 전라도 사투리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또 한 사람의 아버지인 시인이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시다. 아버지의 지청구, (꾸지람, 또는 까닭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함: 네이버 국어사전)을 뜻하는 우리 말 표준어이다. 그와 비슷한 단어인 지천도 있다. 주로 전남 지역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인은 전북 태생이다. 구수한 사투리가 시 안에 깔려 있다. 구수한 사투리를 통해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는 이 시는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자꾸만 좁아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세대들과 후 세대들에게 깊은 사랑이 담긴 우리의 참 아버지를 전해 주고 있다. 사랑의 표현 방법도 사뭇 다른, 그러나 분명 사랑하고 있었음을 기억하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우리의 아버지는 어려운 시대를 헤엄치듯 살아왔다. “전교 우등상을 받던날” 아버지의 한 숨은 더 깊어 갔다. 자식을 사랑하고 그 자식이 성공할 수 있게 뒷 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노름판에서 논밭뙈기 쏵 날려불고 저것을 어찌 갤 켜, 먼 조화여 시방.'” 마음속으로 아버지로서 뿌듯하고 좋아서 춤이라고 추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궐련을 물며 혀를 차셨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군불을 때어 한번 때면 적어도 하룻 밤은 따뜻하게 잘 수 있는 은은한 사랑으로 자식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런 사랑이기에, 아들은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아버지를 닮고 싶지만 아버지의 “속정 까지는 닮지 못했다” 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 지청구는 서슬이 시퍼렇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이제 내리 사랑으로 자식에게 돌려 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시인 자신은 아버지의 지청구처럼 자식에게 똑같이 못하고 있는 솔직한 심정을 이 시가 보여준다. 그럴 수록 아버지의 지청구는 항상 시인의 가슴에서 새롭게 새롭게 자라나고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시인에게, 시인이 시인의 자식에게, 지청구는 대를 이어 그렇게 군불 처럼 이어져 내려가게 될 것이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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