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이야기 4. 산타 마리아 마끼오레 와 네셔널 국립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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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내셔널 뮤지엄과 벤티 축제 그리고…

3일동안의 여행 패키지는 다 써버렸다. 그래서 우린 그날 하루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샤핑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고 아침을 든든히 먹고 호텔을 나섰다. 호텔 에서 서 남쪽으로 몇 블럭 걸어가다 보니 산타 마리아 마끼오레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광장이 나왔다. 우린 광장에 있는 거리 시장에서 이것 저것 샀다. 산타 마리아 마끼오레, 그곳에선 미사가 열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정말 “정숙한 보행”을 하는 관광객으로 인해 우리 또한 숨죽이며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산타 마리아 마끼오레 는 동정녀 마리아를 위한 성당이다. 로마의 성당 중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물론 성녀 마리아를 기리는 성당은 로마에만해도 적어도 3 개( Santa Maria in Trastevere, Santa Maria in Aracoeli, Santa Maria sopra Minerva) 정도는 더 있다. 교황 식스투스가 (432-440) 재위시 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본당은 아직도 원래 지은 형식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몇 개의 부속 건물은 지난 1348년 지진이 발생했을때 빌딩이 훼손되어 복원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 교회안에 마련된 예수님과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헌정을 기념하는 벽화와 장식이 16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보존되어 있는 성당 건물, 그 건물안에는 홍해가 갈라지며 이집트인들이 홍해바다에 휩쓸려 내려가는 홍해사건이 벽화로 보존되어 있었다.

한때는 교황의 주거공간이었다고 전해진 산타 마리아 마끼오레, 그곳을 나오니 뒷편엔 야외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우린 그곳에서 말린 오랜지와 푸룬을 샀다. 물론 시장에 다닐때 입을 편한 바지하나 건지는 수확을 했다. 우리는 모처럼 한가롭게 이곳저곳 가게를 들러서 물건들을 보고 이틀리산 수제품 가방도 사고, 향수도, 그리고 선물도 사는등, 샤핑을 하면서 이를리에 흠뻑 젖고 싶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내셔널 국립 박물관에서 김치 박람회를 하고 있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이를리에서 한국의 김치를 선보인다는 생각에… ,그리고내셔널 국립 박물관 앞에서 이를리의 벤티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노동절 행사의 피크라고 말하며 세계에서 찾아든 관광객들에게 또 한번의 이를리인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젤라또를 먹으며 그들의 공연을 보고, 벤티 축제란 무엇이며 이 행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 지 알고싶은 기자 근성이 나를 흔들어 댔다. 그래서 부스에 직접 찾아가 누가 이 벤티 축제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느냐고 말하니, 이를리언으로 말했다. 난 영어로 말해주었으면 한다고 하니 영어를 하는 담당자를 불러 주며 설명해 주었다.

벤티 축제는 일종의 적십자사가 하고 있는 구호활동을 하는 단체로 노동절에 특별히 신성한 노동을 하여 인류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또 구호단체가 하는 일을 이 기회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일에 더 많이 동참하자는 뜻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춤을 보며 모두다 즐거워하는 오후, 햇빛은 따사롭게 로마의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사서 하나씩 먹으면서 우린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피자를 먹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와인을 마시며 서로의 눈을 마추는 사랑이 넘치는 도시, 그런 도시에서 누구든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듬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였다.

샤핑을 해서 돌아오는 길, 우린 내일 새벽 첫 열차를 타야하는데, 티켓팅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로마 터미니에서 티켓팅을 할려고 하니 기계가 잘 작동되지 않았다. 그래서 기계가 아닌 직접 구입할 수 있는 가게를 알아보니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내가 철도청 직원에게 물어보자, 그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 때 뒤에 있던 어느 멋진 이를리언 청년이 다가와서 도움을 주겠노라고 말하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해서 우린 그를 따라갔다. 지하에 있었다. 표를 파는 곳은 지하에 있었으니 당연히 우리가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 청년은 기차가 곧 오니 타러가야 한다며 달려나갔다. 우린 표를 사고 다시 위로 올라와서 플랫폼에 서 있는 청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그 청년에게 넌 참 영어를 잘 한다고 하니, 그는 겸연쩍어 하면서, 자기 여자 친구가 멕시컨이어서 그녀를 마중나가기 때문에 티켓 예매소를 안다고 말하며 처음 오는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우린 거듭 고맙다고 말하고 터미니에 있는 샤핑센터에서 마지막 샤핑을 하고 저녁 음식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다시 나가서 음식을 사 먹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리고 너무 지쳤다. 무엇보다도 일찍자고 새벽 일찍 호텔을 나와 기차를 타고 공항에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로마는 다시 가고 싶은 도시였다. 그래서 늘 여운이 남는다는 곳,  몇 번이나 로마 여행을 했다는 미국 관광객과의 대화에서 우린 많은 부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기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아직도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할 이를리 공항의 보딩 시스템이 쉽게 한 곳에서 비행기를 타는 이곳 시스템과 많이 다름을 보았다. 즉 출입국 관리국건물과 터미날이 달라서 보딩타임이 넉넉하지 않은 경우엔 필시 상당한 혼란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립박물관의 지붕에 달려있는 동상들, 그 동상들은 로마시대의 세계 재패에 대한 야망이 바다로 향해 열려져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바다로 향하는 고대 전쟁의 여신의 힘찬 채찍질이 자꾸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을 가진자는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을 향해 한 마음으로 돌진한다면 말이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로마는 시작되었고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자만해버리자  로마는 단지 고대 유적으로 남아, 많은 이들에게 다시 꿈을 꾸라고, 그것을 지키라고, 그리고 꿈은 항상 진행형이며 현재 완료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로마의 푸이미치노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지중해를 뒤로하고 대서양을 향해 힘껏 날아 올랐다.
“Take off is the best part of my journey.”라는 어느 여인의 말이 다시한번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난 이불을 내 목까지 끌어 올렸다. 잠을 자고 나면 적어도 몇 시간은 훌쩍 뛰어 넘을 테니…

*** 그동안 로마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멜로 보내주신 여러분들의 감사메일이 당근이 되어 졸필이나마 계속 쓸 수 있게 하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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