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rorist,Hostage Situation Bring Real Horror and Chaos this Halloween

10월의 마지막 날, 할로윈 분장으로 오후 시간대는 전 미국이 축제의 공간으로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할로윈 데이는 뉴욕에서 캘리포니아에서 테러리스트로, 학부모가 학교에서 인질극을 벌인 혼란과 공포의 날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 오후 3시 5분경 뉴욕 맨하탄의 끝 부분에 위치한 자전거 도로에 홈디포에서 렌트한 트럭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무고한 시민들을 그 자리에서 6명을 그자리에서 사망하게하고, 두 명은 병원에서 사망했으며,  수십명이 부상을 입힌 테러리스트 트럭 공격이 자행되었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우즈베키스탄출신  Sayfullo Saipov (29)씨로 알려졌으며, 지난 2010년에 미국에 입국해서 Paterson, N.J. 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는 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 라는 말을 크게 외쳤다고 CBS는 전했다. 그후, 경찰이 그의 둔부를 총으로 쏴서 넘어뜨릴때까지 그의 손에는 한손에는 페인트 볼 건과 펠랫 건이 들려져 있었다고 한다.

뉴욕 시장은 “이번 사건은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리스트의 겁쟁이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두번째 사건은 캘리포니아의 리버사이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을 인질로 삼고 학부모가 선생과 언쟁을 높이며 한 동안 학교가 공포의 도가니 속이었다고 전했다. 지금 현재는 학생들은 모두 안전하게 가족의 품에 안겼으나 아직도 학부모와 선생이 대기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여전히 긴장이 감돌고 있는 할로인 데이다.

아직까지  용의자가 왜 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을 인질로 잡고 있는 지, 용의자는 누구인지 정확한 원인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사건의 여파로 인한 것인지 모르나 밤 늦게까지 할로윈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 을 외치던 아이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해와 비교할 때, 올해는 비교적 조용한 할로윈 데이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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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32<강원대, 윤금자 교수>

그림: Corih Kim

<Korea: Prof. Yoon, Geum Ja>

道家 에서는 내 마음이 외적인 것에 얽매여 ‘내 마음 안에 내 마음을’ 둘 곳이 없는 속박되어 있는 마음을 안정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인간의 문제를 해결 하려고 했다. 마음이 복잡하면 어떠한 것도 마음에 담을 수도 없고, 감흥도 없다. 눈 앞에 눈 덮인 히말라야의 멋진 광경도 그저 생명감이 없는 단순한 산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이 고요해야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고, 마음에 우주가 담긴다.

虛靜은 노장과 순자의 수양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다. 장자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無有相害之心( 서로를 해치려는 마음 따위는 지니지 않고 있었다.),  機心, 日以心鬪,滑心 이라고 했다.  장자에 의하면 보통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모습은 주관적인 판단으로 외적사물에 집착하게되고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다투는 과정속에서 마음은 근심으로 불안정하게 된다. “장자” 에서 본심, 허심, 무심, 성인지심 은 인간이 본받아야 할 道心이다.  장자는 마음 회복을 위해 心齋,坐忘 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장자는 心齋,坐忘의 수양을 통하여 도와 합일하는 경지에 이른다고 보았다.

모종삼은 “순자”虛壹而靜”은 도가에 근거해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의 인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늘 외물에 의해 쉽게 흔들리는 불안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외물에 의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안전성을 확보해야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성인은 마음이 大淸明의 상태에 도달한 사람이다. 대청명이란 마음이 외물에 가로막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도의 체득을 위한 수양방법으로 허일이정을 강조했다. 인간은 마음에 가려진 것으로 부터 벗어나야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순자에 의하면 우리들의 마음에는 삶의 체험, 기억, 지식 등 여러가지가 쌓여있다.이러한 것들은 삶의 현장에서 문제에 봉착했을때 기존의 생각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새로운 사실이나 지식을 제대로 인식하고 수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순자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虛이다.

살아가면서 쌓이게 되는 성은 蔵 은 虛를 통해 조절된다. 순자는 마음에 담겨진 기존의 기억, 생각, 지식등을 간직하면서도 현재 생활 속에서 새롭게 받아들인 것을 마음에서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이것을 ‘壹’로 설명하고 있다.

순자에 의하면 마음이 다양하게 받아들인 인식을 구별하면서도 그것을 유기적으로 통합하고 효과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순자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인식을 壹로 묶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靜’으로 설명하고 있다. 참된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된 앎에 방해가 되는 망상이나 잡념을 비우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 ‘靜’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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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 Artists of Fixed Poetry

사진 김호천 선생님

시조를 짓는 이들을 위하여

김호천 (광주 금호 고등학교 국어교사 은퇴)

요즘 시조를 짓는 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문학사 입장에서 보면 국문학의 한 장르인 시조를 현대에 부흥시키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을 것 같아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 간단한 형식이니 마음에 부담 없이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조를 선택했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날 시조가 왕성하게 발전하지 못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옛날과 다르게 생각이 많고 사물에 접해서 얻는 느낌이 많습니다.. 생각과 느낌이 1리터 라면 시조 형식은 장 종지니 다 담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또 시조 형식이 단순하다 해서 글쓰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짧은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니 압축과 상징성이 높게 표현 되어야 하니 쉽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시조를 짓는 이들이 아직도 시조의 운율이 잣수가 45자 내외라는 3장 6 구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34 34/ 34 34/35 43에 얽매어 대부분 띄어쓰기를 안 하고 있고, 글자수가 맞지 않으면 매개 모음을 넣어서 어법에서 벗어나게 쓰고 있습니다..
‘오색빛 물든단풍 마음에 담아두고’
‘바람을 붙잡으네‘
‘홀로서기, 시린맘, 넋을잃어, 길쌈매고, 밤새워, 절인오이,‘
이런 식입니다..
왜34/34/3543 이 글잣수에 맞추어 써야 하는가? 지금까지 알려진 이 잣수는 누가 처음 창안해서 이 형식에 맞추어 써야한다고 했는가? 없다, 시조의 형식에 대해서 조윤제 문학 박사, 국문학자 안확 씨 등이 시조의 형식에 대해서 논한 글을 발표했는데 34/34/35/43은 조윤제 문학 박사가 정리해놓은 것이다. 왜 정리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이 형식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모든 시조를 통계를 내어 보니 이 같은 잣수가 생겨 난 것입니다.. 조윤제박사가 이 형식을 만들거나 이 형식에 맞추어 써야 한다고도 안 했습니다..
34/34가 생긴 것은 우리 국어의 문장 구조에서 비롯 된 것입니다..우리 국어 문장은 주어+ 서술어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주어는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이 되고 서술어는 용언(동사, 형용사)이 됩니다.
.. 우리 국어에서 명사, 대명사, 수사에 해당하는 단어가 한 음절로 된 것 두 음절로 된 것 세 음절로 된 것 등이 있는데 주어가 되는 단어 중 두 음절로 된 것이 가장 많다고 하지요. 그 두 음절에 조사가 붙어서 3이 되고 용언은 어미 변화를 하기 때문에 한 음절 더 늘어나서 4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종장은 대체로 시조의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한자 성어를 쓰고 거기에 조사가 붙어 5가 된 것이지요. ‘ 안빈 낙도가 예 아니냐‘ 한자 성어의 영향으로 한글로 쓸 때도 5 자에 맞추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상 생활이나 글을 쓸 때, 말하거나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34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그러니 34의
잣수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시조의 운율은 잣수율이 아니라 음보율입니다. 음악을 비유로 말하면 악보에서 한 소절은 네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온음표 하나로 4 박의 소리를 내나, 4 분음표 4 개로 소리를 내나, 8분음표 8 개로 소리를 내나 한 소절의 길이는 같지요. 이 것을 등장성이라 합니다.
한 음절로 4 박을 소리 내나 두 음절 세음절 네 음절로 소리 내나 길이가 같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붙잡으네’ 4자로 맞추지 않고 ‘붙잡네’로 써야 하는 겁입니다. 그래야 어법에도 맞고요.
정리하자면 1. 시조의 운율은 음보율이다. 2. 시조도 반드시 어법에 맞게 써야 한다. 3. 34/34/35/43은 누가 창안하지도 않았고 이 잣수에 반드시 맞추어 써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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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Open Sergeant Park’s Case! 8. 박중사 사건 재조사를 당장 시행하라!

지난 24년을 자신의 두 다리를 잃어버린 정확한  이유도 모르는 채 살아온 박준기 중사는 최근 춘천 경찰서에서 문서가 왔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24년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건장한 육군 중사는 정상적으로 퇴근후, 친구와 만나 술을 마신후, 친구의 차를 운전하다 빙판에 차가 미끄러진 후, 응급 구조 신고를 한 후 춘천 한림대학교에 친구와 도착했고, 친구는 응급 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중에 박중사는 경찰에 신고할 당시 군인이었던 관계로 헌병에 인수 인계되어 헌병에서 김화용 중사가 이 사건을 인수하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 그 후, 멀쩡한 박중사는 의식을 잃고 춘천 한림대 병원에서 자살을 시도하여 추락한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박중사가 의식을 회복하고 돌아온 기억속에서 그는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더더욱 추락사는 없었으며, 김화용 중사와의 언쟁이 있었고, 김화용 중사가 주차장이 있는 곳이 아닌 계단으로 박중사를 인도한 후, 가슴을 쳐서 계단에서 추락하자 그 후, 병원 수위장이 사건 현장에 온 후, 사건을 목격하고, 이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의논? 한 후, 의식을 잃은 박중사를 운반해 자동차로 밟아버린 기억을 되찾았다고 한다. 박중사는 억울한 자신의 사건을 다시 재 조사해 줄 것을 수 차례 요구했고, 그러는 사이 세월은 24년이나 흘렀다.

박중사 측은 춘천 경찰서에 대해 정보공개 요구서”1994년 12월 17일 강원 춘천시 잼버리 도로에서 친구 김창래로 부터 운전을 양도받아 운전중 우측 가드레일을 충돌하는 자차사고 관련 112 신고시 녹음된 내용 공개, 춘천 경찰서에서 교통사고 조사 내용과 군 2군단 헌병대와 신병 인수인계시 작성된 인수 서류 요청” 를 신청했다 고 한다. 그런데 10월 27일 박중사는 춘천 경찰서에서 내부 결재용으로 확인된 서류를 받게되었다.

정보공개 비공개 결정 통지서(정보 부존재)를 받았는데 사유는 다음과 같다.

정보라 함은 직무상 작성 또는 취득하여 관리하고 있는 문서, 도면등을 말하며 공개라 함은 정보를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 복제물을 교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청구인께서 청구하신 자료는 춘천 경찰서에서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해당하지 않아 정보의 부존재로 비공개 결정하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존재 사유>

  • 112 신고 기록 및 녹음 기록 : 112 종합상황실 운영 및 신고처리규칙 (경찰청 예규 제 490호, 2015.2.6) 제 6장 (자료의 취합 및 보안 등) 제 23조 (자료보존기간)에 의거 112신고 접수처리 입력자료는 1년, 음성녹음파일은 3개월 보존후 자동폐기 되어 기간 경과로 부존재
  • 교통사고 조사내용: 당시 사고차량 운전자가 군인신분으로 확인되어 군 헌병대에 전화통보하여 군 수사기관에서 사건처리 한 것으로 부 존재,  사고 현장 초동조치중 군 헌병대에 연계하여 신병인수증(명확한 처리지침은 없음)을 받지 않아 부존재

제 23조 2항에는 지방경찰청장 또는 경찰서장은 문서 및 녹음자료의 보존기간을 연장할 특별한 사항에도 불구하고 보존기간을 연장하여 특별 관리할 수 있다.

제 24조(신고내용의 유출금지) 누구든지 정당한 이유없이 112 신고및 상황처리와 관련하여 타인에게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바로 “신병인수증” 에 대한 명확한 처리지침이 없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혹시 누가 신병을 인수하는 가에 따라 지침이 달라지기 때문은 아닌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처리 지침이 없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상부에서 요구하거나 또는 상급 관리 관청에서 요구하면 언제든지 신병을 인수해주면서 인수증을 받지 않고 그동안 일을 처리해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군 헌병대에 인수인계하면서 신병인수증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경찰과 군 수사 기관과의 긴밀한 공조?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이것 또한 적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저런 사유로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는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사실에 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가 단지 군대와 군인의 문제로 국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23조 2항을 따라 경찰서장이 보존기간을 연장하여 특별관리하였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즉 특별관리 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신병인수하면서 신병인수증을 주고 받지 않았다면 무엇인가 따로 보관하여 사건의 추이를 관망해야 하는 것은 경찰서장과 경찰서 직속 담당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24년전 춘천경찰서에서는 출동하여 신변 확보후, 헌병에 연락하고 바빠서 “현행범인 박중사 혼자 병원에 두고 자리를 떳다” 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의 부존재 사유 중에 “당시 사고차량 운전자가 군인신분으로 확인되어 군 헌병대에 전화통보하여 군 수사기관에서 사건처리 한 것으로 부 존재,  사고 현장 초동조치중 군 헌병대에 연계하여 신병인수증(명확한 처리지침은 없음)을 받지 않아 부존재” 라는 항목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군 헌병대에 연계” 했다는 것은 “박중사 혼자 병원에 두고 자리를 떳다” 라는 말과 상반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군 수사기관이 즉 박중사 사건과 관련하여 밀접하게 연관된  김화용 중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시시비비를 가려내야 할 것이다.

박중사는 지난 24년을 두 다리를 잃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다. 이제 그에게 다시는 두 번의 아픔과 설움을 겪지 않게 군 수사 당국과 검찰은 이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려내어 진상 규명과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피해 당사자가 이 사건을 다시 재 수사 요청하면 당국은 이에 부응하여 다시 수사해야 한다.

군인으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해 두 다리가 잘린채 의족을 끼우며 매일매일 청와대 앞에서 진실규명을 외치는  박중사의 피 맺힌 절규를 외면하지 말고 인권변호사들은 이 일에 솔선 수범하여 사건의 해결과 진상 규명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성 있게 지난 24년동안 두 다리를 잃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 많은 고개를 넘고 넘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인권 변호사들이 되기를 바래본다. 진정코 “박중사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 는 말이 이곳 미국 땅까지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고 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밝혀지게 될 것으로 믿는다.

돈이 없으면 변호사도 살 수 없는 사회, 국방부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변호사들이 꺼리는 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는 변호사가 필요한 시대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 인권 변호사 무료 변론 시스템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가 지원을 해야 그들 무료 변론 변호사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엔 거주 지역 주마다 무료 변론 프로그램이 있다.

Supreme Court Justice Ruth Bader Ginsburg remarked that “a lawyer will gain large satisfaction when he or she is not simply a fee-charging artisan, but a contributor to the public good.”(Ruth Bader Ginsburg, April 9, 2001 speech at the David A. Clarke School of Law, University of the District of Columbia. ) *이글은 하버즈 로스쿨에서 발행하는 프로보노 프로그램 안내에서 인용했음

대법원 판사 루스 배더 긴스버그씨(84)가 지난 2001년  데이비드 에이 클라크 로스쿨에서 연설한 말이다.  “변호사가 돈을 받지 않고 진정한 변호를 했을때와 공익을 위해 기여했을때 변호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대 만족을 갖는다” 라고 말을 했듯, 한국도 각 대학마다 있는 로스쿨에서 양성하는 변호사들에게 무료 변론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그들, 변호사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는 그들로 인해 긍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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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rector’s Role in the Creative Movie Artistry (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영화에 대한 비평적 논의는 영화가 예술로서 본격적인 자리매김을 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예술적 장르의 한 분야로 인정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표현양식에 관한 논의보다는 표현 내용, 즉 도덕적이거나 미학적 성격에 논의가 집중되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영화를 문학이나 연극과 같은 서술적 양식으로 이해하였다는 것과, 이러한 양식에 대한 전통적 비평기준이 구조적 분석이나 설명 보다는 미학적 혹은 도덕적 가치평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구의 지식인들이 영화의 예술성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예술품의 창작주체와 관련된 문제였다. 낭만주의 이래 서구 미학이론의 주류는 창작주체로서의 예술가들을 그 중심에 두는 것이었다. 이러한 예술가 중심의 미학이론은 예술품을 형식적인 표현 양식에서 뿐만아니라, 예술가의 천재성이 보여주는 예술적인 비젼과 표현성의 화신으로 이해하였다.

이렇게 볼 때 수많은 기능인들의 철저한 분업에 의한 결합과정이라는 영화 특유의 제작방식은 어떤 위대한 영화 창작 과정 전체를 주도하고 조절하는 한 개인의 비젼과 통일된 지성의 소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영화란 결국 결과물인 고로 완전성에 대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조립라인을 통한 합성물에 불과 하였다. 제작자가 대본과 감독과 배우들을 결정하고 이어서 촬영기사와 조명기사 그리고 편집기사, 음악 담당자, 그 외 많은 분야의 기술자들이 모여서 만들어 진다는 점에서 영화 창작에서의 진정한 주체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서명하는 작품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지는 극작가나 소설가와는 달리 누가 영화라는 결과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가? 창작 주체에 관한 이러한 오래된 논쟁은 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평론가들에 의해서 해결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작가주의 (politique des auteurs – 정확하게 번역하면 ‘작가정책’이 된다) 이론이다. 영화에서의 ‘정책’이라는 단어는 알렉산더 아스뜨뤽의 논평 “새로운 아방가르드의 탄생 : 카메라 스타일” 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아스뜨뤽은 흔히 ‘카메라 만년필 (La Camera Stylo)설로 불리워지는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카메라를 창조적인 감독이 자신의 사고와 감성을 표현하는 펜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정책이란 예술가 자신의 사상 표현 혹은 카메라로 하여금 삶의 철학, 세계관을 기술하기 위한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의미하였다. 동시에 ‘작가주의’ 이론 만큼 영화이론사에서 논쟁을 불러 일으킨 것은 없을 것이다. 혹자는 50년대 중반에 생성하여 60년대 후반이후 그 영향력이 서서히 사라져 버린 이 이론을 전 시대의 낡은 비평방식으로 취급하기도 하지만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논쟁의 결과들 –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 정신분석학, 형식주의 등 -들을 고려한다면 작가주의 이론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모습을 달리한 채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1954년 당시 프랑스의 소장 평론가였던 프랑소아 트뤼포는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 du cinema) 誌 에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 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 잡지는 처음부터 앙드레 바쟁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소위 ‘까이에 그룹’이라고 불리우는 일단의 평론가 집단, 즉 프랑소아 뜨뤼포, 자크 리베트, 장-룩 고다르, 끌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등이 주된 기고자들이다. 이들이 나중에 모두 영화 연출 쪽으로 전향하게 됨으로서 이른바 프랑스 누벨바그 (nouvelle vague) 라는 새로운 조류가 형성될 수 있었다.  트뤼포는 이 글에서 과거 추앙받던 감독들을 격하시키고 새로운 영화전통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때까지 프랑스 예술 영화의 거장으로 인정받던 르네 끌레망, 앙리 끄루조, 줄리앙 뒤비비에, 마르셀 까르네 등-젊은 평론가들은 이들이 만든 영화를 아버지의 영화 (le cinema de papa)라고 불렀다 – 을 프랑스 영화를 망친 감독들로 단죄하였는데 그 이유는 심리적 사실주의에 탐닉하여 영화를 문학적 전통의 예속물로 만들었을 뿐, 진정한 영화의 전통은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신 문학적 소재를 단지 자기 취향으로 변조하기보다 특유의 생명력과 숨결을 불어넣는 로베르 브레송, 장 꼭또, 장 르노아르 등을 추앙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트뤼포를 비롯한 젊은 평론가들이 정의하는 영화작가(auteur du cinema)란 문학작품을 소재로 하여 단순히 그럴듯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서 자신만의 개인적 특성을 부여하는 감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은 개인적인 영화의 개념, 즉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감독이 영화 뒤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는 영화의 개념을 옹호하였다. 이리하여 문학적 테마와의 상관성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이른바 ‘질의 전통’(La Tradition de La Qualie)을 거부하면서 영화특유의 표현방식이 얼마나 구사되었느냐가 영화의 진정한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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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 a Cup of Poem~~ 쑥부쟁이/홍성재

사진: 이응원 작가

쑥부쟁이

愚靑

보랏빛
혼을 살라
향기를 드리우니

그린 임
아니 오고
벌 나비 수시 오네

달 아래
흘린 눈물만
윤슬 바다 이루네.

홍성재
***시조, 쑥부쟁이를 읽으며  외로움 가득 밀려오는 쑥부쟁이의 삶을 봅니다.
잊혀진 들판의 길 모퉁이에서 흔하게 만나는 보랏빛 쑥 부쟁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가냘픈 육신을 가끔 보며 참 안타까운 마음도 들곤 했어요. 항상 목을 쭉 빼고 길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이유가 있었군요. 그리던 임을 그리워하며 기다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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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Anniversary of the Candlelight Protest: A Review

사진: 김광식 교수

<Korea : Prof. Kim, Kwangsik(정치평론가, 21세기한국연구소 소장)

10월 28일 1주년을 맞는 촛불대행진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국회앞 광장에서

오늘 필자는 4시 30분쯤 광화문 광장으로 나갔다. 나가 보니 몸에 익은 주체적인 취향의 향기가 밀려왔다. 지금은 악성 독재근성을 갖고 있는 박근혜가 구속되고, 아울러 최순실이 장기형을 받을 전망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김기춘, 조윤선, 안종범, 우병우, 김종 등 개인의 독재성을 강화하는 박근혜의 졸개들이 동시에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황제와 같은 권력의 끈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몸 안쪽에서 공동체 의식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니 우리 마음 속에서, 우리의 사고구조 속에서, 우리의 적응패턴 속에서, 공동체 의식은 줄기차에 자라나고 있었다. 새로운 전망을 예상할 수 있다.

1주년 기념행사가 시작되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다양하게 불리웠다. 몸에 딱 맞는 분위기였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작년의 구호와 올해의 구호 사이에는 차이가 많이 느껴졌다. 지금은 실천가능성의 측면에서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 공동체의 영향력 확대에 이제는 큰 자신감이 들어간다. 세월호유가족들의 4.16연대에 가수 권진원, 이상은, 전인권 등이 오늘 우리의 노래를 먼저 불렀다.

그 1년 사이에 정권이 바뀌었다. 이제 집권당이 바뀌었다. 그동안은 자유한국당에서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이 바뀐 것이다. 박근혜는 구속되었고, 내년 4월 16일까지 구속기간은 연장되었다. 지금 사람들은 이명박의 구속도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개혁의 방향성, 또는 수구의 부패성 가운데 하나를 갖고 있다. 다만 거기에서 우리는 사회대개혁의 에너지와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지금 검찰이 수사하는 사건내용만 보고도 방향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들에 취직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속에서 연대와 부패의 능력 등을 배운 사람들이다. 지금 한국의 대통령 지위는 아주 특별하다.

‘개헌’의 실질적인 내용을 지방분권 단위로 바꾸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며칠전 연설 분위기가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남 여수에서 개최된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제2국무회의를 제도화하고,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의 4대 지방 자치권을 헌법화하겠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3을 만들고 장기적으로 6:4 수준이 되도록 개선하겠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저는 지방분권 단위의 진정한 뜻은 철학적으로 ‘풀뿌리민주주의’ 정신이라고 보았다. 풀뿌리민주주의라는 것은 정신적인 우선 순위를 말한다. ‘대중’이 모이기만 하면 민주주의의 수준은 대중민주주의가 된다. 대중민주주의에서 ‘풀뿌리민주주의’가 자라는 것은 철학적 변화를 말한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일정한 양 쌓이면, 당연히 주체적인 대중으로 바뀐다. 주체적인 대중이 살아있는 한, 그때 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Participant Democracy)’ 또는 ‘숙의민주주의(Deliberate Democracy)’로 이전됨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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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alonia and Spain’s Break-up Woes

10월 27일, 스페인과 스페인의 자치행정부중의 하나였던 카탈로니아 사이에 역사적인 자주 독립을 외치는 선언이 있었다. 스페인의 자치구로서 오랜 세월동안 한 식구 두 가족의 삶을 청산하려는 끝없는 노력이 오늘로 결실을 맺는 것같은 모습으로 세계인의 눈에 그들의 강한 의지가 돋보이는 날이다. 카탈로니아, 안달루시아 산맥을 끼고 있는 리베리안 반도에 지중해안을 끼고 있는 스페인의 동북부 지방에 속해 있는 자치 행정국, 역사적으로 보면 비운의 왕비,  Catherine of Aragon(16 December 1485 – 7 January 1536), 영국의 헨리 8세의 첫번째 부인이 아라곤 출신의 공주였던 것을 생각하면 Catalonia의 역사적인 유래는 수 많은 역경을 극복한 무소불위의 로마 카톨릭의 영향권 아래에서 때로는 신음하고 때로는 자긍심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었다.

일설하고, (1975년 프랭크 독재자가 사망한 후 )1977년 이래, 카탈로니아는 스페인의 자치행정부에 속해 있는 스페인의 영향을 받는 카탈로니아 행정부를 가지고 있었다.고유 문화와 고유언어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의 자치행정국으로 바르셀로나를 중심 도시로 성장한 카탈로니아는 자주 독립을 꿈꾸며 자치 행정부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중, 카탈로니아 의회는 지난 10월 1일 국민투표를 거쳐서 독립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때 스페인 정부는 투표장에 난입해서 투표를 할 수없게 방해하거나 또는 투표하는 사람들을 연행해가는등 무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카탈로니안들에게 더 강한 연대감과 함께 불타오르는 독립에 대한 결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반대에도 무릅쓰고 카탈로니아는 독립에 70표, 반대 10표로 독립이 확정되었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Article 155 “에 기인하여 “스페인 정부하에 있는 모든 자치구가 스페인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때에는 압력을 행사하여 스페인 권리를 회복하는 데 있다”고 되어 있다며 카탈로니아 행정부의 수장인 자치국 대통령, Carles Puigdemont 를 10월 27일 날짜로 해임하고 카탈로니아 경찰을 경질, 해임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카탈로니안들은 분개, 절망하고 있으며, 수 백년동안 스페인의 독재에 항거해오며 자유를 향한 그들의 처절한 절규가 메아리치고 있다.

Carles Puigdemont (55) 씨는 전직 신문 편집장으로 저널리스트 였으나 정치계에 입문(2006)해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Girona 시장을 거친 인물로,  스페인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라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곧고 바르게 카탈로니아 정부의 독립을 위해 투쟁을 하고 있는 자치 행정국의 수장(2016-Oct.27, 2017)이었다.

누구도 카탈로니아가 어떻게 될 지 알 지 못한다. 어떤 이는 차라리 독립 시켜 주는 것이 스페인에게 득이 될 것이란 말이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스페인의 우익 정부는 헌법 155조 항으로 의회에 이 문제를 상정하여 카탈로니아의 독립선언을 무효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카탈로니아는 18세기 후반에는 세계적인 상업지구였으며, 19세기 후반에는 산업 전진 기지였고, 21세기에 들어서는 20%의 스페인의 경제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경제적 기반이 탄탄한 자치 행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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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Military and Okinawa: Votes Reflect Okinawan Frustration over Imbalance of Power and Respect (이선훈 박사의 한.미.일본을 말하다)

<Japan : Prof. Lee, Sunhoon>

오끼나와 선거결과와  미군 주둔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일련의 문제

한국의 경우 전시작전권은 미국에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 주한미군과의 관계와  전시작전권의 반환에 대해 두 나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 관리해 나가야하는 지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는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한 참고자료로서, 필자는 주일미군기지의 대부분이 위치하고 있는 오끼나와의  선거결과와 관련된 문제점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오끼나와에서는 이번의 중의원선거에서도 본토와는 상이한 민의가 선거결과로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주일미군 후텐마 (普天間) 기지의 헤노코 (辺野古) 에의 이전을 추진하는 일본의 정부여당의 자세와 관련된 문제로서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주일미군기지에 관한 과중한 부담에 대한 오끼나와 주민들의 반발이 심각한 상황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주일미군기지의 문제가 오끼나와 이외의 지역에서는 쟁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본토와는 다른 오끼나와의 민의를 어떻게 판단해야만 할 것인가?

이번 선거에서 오끼나와 4개의 소선거구의 결과를 살펴보면,

중의원선거는 정권선택선거이지만, 오끼나와에서는 미군기지문제가 커다란 쟁점의 하나였습니다. 4개의 선거구 중에서 1구부터 3구까지의 3개 선거구에서는 모두 자민당의 후보자가 패배하였고, 후텐마기지를 나고 (名護) 시의 헤노코 (辺野古) 로의 이전에 반대하는 오끼나와 현의 오나가 (翁長) 지사를 지지하는 그룹이 지원하는 야당연합의 후보자가 당선되었습니다. 한편, 4구의 경우는 중국과의 영토분쟁이 펼쳐지고 있는 센카쿠 (중국어: 댜오위다오) 열도를 포함하고 있는 지역으로 자민당의 후보자가 의석을 탈환하여 오끼나와에서도 우익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끼나와에서는 3년전, 현재의 오나가 지사가 헤노코 이전의 반대를 주장하며, 이전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당시의 지사를 제치고 당선된 이후, 중의원, 참의원 선거에서 모두 헤노코 이전에 반대하는 비자민당 계열의 후보자들이 당선되어, 헤노코 이전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자민당이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초반에 실시되었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헤노코 이전에 반대하는 오나가 지사의 추천을 받았던 후보들이 패배하며 자민당의 추천을 받은 후보들이 당선되자, 아베 정권의 스가 (菅) 관방장관은 오끼나와에서 오나가 지사를 중심으로 한 헤노코 이전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고 헤노코 이전을 추진하는 자민당의 지지가 확산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민당이 승리한 지방단체장 선거에서는 헤노코 이전 문제가 쟁점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헤노코 이전을 위한 매립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시점에서, 오끼나와의 여론은 헤노코 이전의 반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이것이 이번의 중의원선거에서 명확히 입증된 것입니다.

이번 중의원 선거기간 중에 오끼나와에서는 주일미군기지의 과중한 부담과 관련된 상징적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후텐마 기지에 배치되어 있던 대형 헬리콥터가 민간인 소유지에 긴급착륙해서 화재를 일으켰습니다. 사고는 선거공시일의 다음날일 10월 11일 오끼나와 본섬의 북부지역에서 발생했습니다. 7명의 승무원은 피난하고, 주민의 피해는 없었지만, 현장으로부터 300 미터의 거리에는 민가가 있었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대형 헬리콥터는 13년전인 2004년 8월에 후텐마 기지에 인접한 오끼나와 국제대학의 캠퍼스 안에 추락해서, 대학의 건물과 인근주택에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했었습니다.

이번의 헬리콥터 사고를 보고 받은 오나가 지사는 “이렇게 분하고 화가나는 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방위청과 외무성에 아무리 항의해도 미군에게 전달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고 했습니다. 이런 선거기간 중의 사고가 오끼나와 현의 주민의 투표행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번의 사고가 미군기지의 과중한 부담을 상징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고현장의 부근에는 미군의 북부훈련장이 있습니다. 훈련장은 작년 2016년 12월에 반이 넘는 4000 헥터를 반환하였고, 아베정권은 패전후 최대규모의 반환이며, 오끼나와의 기지문제에 관한 매우 확실한 부담경감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반환에는 특정의 조건이 붙여져 있으며, 그 조건이란 반환되지 않은 장소에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을 에워싸는 형태로 6개의 헬리콥터 발착장이 건설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끼나와의 기지반환은 후텐마 기지의 헤토코에 이전의 경우와 같이 이전장소가 오끼나와현 내에 한정되거나 군사시설이 더욱 확충되는 것과 같은 조건이 부가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오끼나와에 미군기지가 집중하는 상황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주민들에게 반환되는 기지들의 대부분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며, 그 반환조건으로 거주지의 인근지역에 헬리콥터 발착장과 같은 시설이 추가적으로 건설되어, 소음피해는 물론이고 주민의 위험성이 한층 증가될 염려마저 있어 이와 같은 형태의 기지반환은 기지부담의 경감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번의 사고가 바로 이런 주민들의 염려와 주장이 현실로 나타나고 것입니다.

이번의 사고에서는 주일미군의 사고에 대한 일본의 경찰과 정부의 대응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불시착한 것은 기지 밖의 민간인 소유지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통제하고 현지의 경찰, 소방관도 사고가 발생한 헬리콥터의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고기체는 미군이 해체하여 철거했기 때문에 경찰에 의한 현장검증은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며, 일본측에 의한 사고의 원인규명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작년 2016년 12월의 수직이착륙 수송기 V-22 오스프리가 나고시 (名護市) 의 해상에서 폭파했을 때에도 발생했었습니다.

일본정부와 해당 지자체가 사고원인의 규명과 재발방지책이 취해질 때까지 사고헬리콥터와 동일한 기종의 비행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전히 무시한 체, 사고 후 1주일만에 비행이 재개되었습니다. 미군은 사고원인과 재발방치책에 관한 어떠한 발표도 없었습니다. 오노테라 (小野寺) 방위대신은 “안전에 관한 미군측의 판단의 근거에 관해서 충분한 설명이 없는 상황에서 비행이 재개된 것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 고 언급함으로, 오나가 지사가 사고직후에 했던 발언이 그대로 재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며, 이와 같은 상황이 고착화된 것이라고도 판단해야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주권국가로서 문제의 해결능력이 전혀 없는 아베정권에 대한 오끼나와 주민의 불만은 극한을 치닫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미군과 일본정부의 관계는 오끼나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최근에는 본토에서도 연이어서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1일에는 히로시마현 (広島県) 키타히로시마쬬 (北広島町) 에서 훈련중으로 보이는 미군 전투기가 기체로부터 미사일발사시와 같은 화염을 수차례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미해병대의 전투기는 해상에서 행하는 적의 미사일공격을 회피하기 위한 훈련을 행하는 경우에, [브레어] 라고 불리는 위장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화염을 만들어내는 것을 확인했고, 미군에 대해서 이 지역에서의 훈련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에 대한 미군의 회답은 없었습니다.

지난 8월에는 오이다현 (大分県) 의 오이타공항에 오스프리가 긴급착륙하여, 11일간 공항에 체류했었습니다. 이 경우에도 미군의 설명은 일체 없었으며, 이륙할 때에도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와 같은 사고들에서 공통된 내용은 주일미군은 지자체와 주민은 물론이고 일본정부의 요청조차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군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장소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도 일본정부는 무력한 상황이며, 이는 오키나와에서도 일본본토에서도 동일한 상황입니다. 군사상의 운용의 문제와 미일합동위원회에 의한 정해진 가이드라인의 제약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일본의 주권이 무시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친미적인 일본의 군사전문가들 조차도 이러한 상황이 건전한 동맹관계인 것인가 라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도 있습니다.

현재 미일합동안보체제에서 가장 중대한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 오끼나와 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은 이러한 상황을 무시한 체, 미군기지문제는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끼나와에 부담시켜도 된다는 무책임한 의식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이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이번의 중의원선거에서 오끼나와의 주민들이 보여준 선거결과를 일본국민은 깊은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일본의 오끼나와의 문제 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상황에 있음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난 후에, 대통령 직무대행이던 황교안, 그리고 김관진과 한민구들이 정략적인 이유로 사드를 조기 배치함으로 빗어진 중국이 한국에 대해 취한 경제제재는 한국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한미군과 한미안보체제의 문제는 국가의 주권에 관한 문제인 동시에 국가의 장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수 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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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rony of Einstein, Happiness, and $1 million

“A calm and modest life brings more happiness than the pursuit of success combined with constant restlessness,” (담담하고 소박한 삶이 성공에 미쳐 불안한 삶 보다 더 행복하다. 알버트 아인스타인)

“When there’s a will, there’s a way,”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알버트 아인스타인)

아인스타인이 일본의 임페리얼 호텔에서 메모지에 쓴 두 개의 경구가 오늘 이스라엘 위너스 경매 회사에서 하나는 $1.56 million 에 팔렸고, 다른 하나는 $240,000 불에 팔렸다고 AFP는 전했다.

첫번째 경구는 처음 시작을 $2,000 에 시작해서 25번 동안 가격이 상승되어 결국 $1.56 million 에 팔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경구는 인터넷에서 $5,000-$8,000 의 가격이 형성되었으나 실제로는 $1.56million 에 팔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 한것은 첫번째 경구에서 담담하고 소박한 삶, 즉 돈으로 재지 않는 삶이 성공을 향해 달려가며 불안과 긴장의 삶보다 행복하다고 했다는 경구가 결국은 엄청난 부( total $1.8 million)를 불러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1922년 아인스타인은 일본에 초대되어 강연을 하러가서 자신이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사실과 이 사실을 알고  아인스타인을 만나기 위해 호텔에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공공 장소에서 만난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아인스타인은 그때의 심정과 느낌을 자신의 호텔방에서 호텔 메모지에 쓴 이 경구가 후일 팁 대신 큰 부를 가져온 것이다.

아인스타인은 호텔 메신저에게 두 장의 메모지를 건네 주면서, “후일 당신이 재수가 있으면 이 노트가 돈이 좀 될 것이요.” 라고 말하며 팁을 받기를 거절하는 메신저의 손에 건네 준것이 75년이 흐른 후, 아인스타인의 독일어로 쓴 두 경구가 “돈이 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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