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날에서 둘째날로
티씨 아내 베시는 시카고에서 태어난 스웨덴 출신의 어머니와 그리스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소설가였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 그리스로 왔던 베시, 아버지의 나라에가서 그리스어를 배우기 위해서 왔다던 그곳, 아버지의 고향에서 할머니의 고향친구의 손자인 티씨와 만나게 되어 40년이 넘게 함께 하고 있다고 넌지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필자와 필자의 남편의 만남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슬그머니 질문해 왔다.
점심겸 저녁은 바다가 바로 발 아래인 해변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금방 잡아 올린 생선으로 요리를 해서 상에 올려졌다.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전어같은 생선, 멸치보다 약간 큰 생선을 통째로 튀겨서 레몬 즙을 위에 살살 뿌려 내 놓은 생선 튀김, 손바닥 만한 크기의 병어같은 생선을 구워서 역시 레몬과 함께 내 놓았다. 비행기에서 먹은 기내식으로 배가 크게 고프진 않았지만 유럽인들은 하루에 두끼라는 생각에 일단 먹어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맑고 신선한 바닷 바람, 가끔 식탁보를 뒤집을 정도로 강하게 불었으나 그때마다 식당 주인이 와서 다시 클립으로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가면서 빈 그릇을 가져가고 새로운 음식을 계속 가져왔다. 몇 접시가 왔다 갔는 지 기억이 안될 정도로 푸른 바다를 계속 삼키고 있었다.
베시는 나에게 무슨 음식이 먹고 싶냐고 물었다. 난 그리스의 음식으로 달리 생각나는 것은 없고 무사카, 그릭 샐러드, 스피니치 등은 미국에서 먹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그러면 네 나라 음식은 어떻냐고 물었다. 그래서 난 그리스에서 한국 음식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곳에 혹시 중국인들은 얼마나 거주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중국인은 이곳에서 거주하지 않고 가끔 아테네에서 본 일이 있다고 말하며, 어쩌면 파트라 시에 있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티씨는 자신은 한국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매운 것을 좋아해서 가끔 시카고 살때, 플로리다에 살면서도 한국 레스토랑에서 한국 음식을 즐긴다고 말했다. 음식을 좋아하는 것으로 치면 한국 사람이요. 겉은 분명 그리스 사람인 그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레스토랑에서 집 까지는 약 30미터, 베시가 안내해 준 방에 우리 짐을 내려놓고 파트라시로 향했다. 파트라시에서 제일 크다는 수퍼마켓에서 오이를 사고 생 빨간 고추도 사고, 오징어도 사고, 쌀도 사고 여러가지 식품들을 샀다. 그 후, 티씨는 해가 뉘엿뉘엿한 파트라 시의 울퉁불퉁한 골목길로 우리를 인도했다. 파트라 시는 역사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도시였다. 수 많은 외침을 당하면서도 그리스를 지켜온, 단 한번도 그리스 어를 잃어본 적이 없는 도시, 지진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무너졌어도 여전히 그 오래된 건물 뼈대위에 다시 새로운 옷을 입히듯 도시의 끈을 이어가는 곳, 밤이면 모두 나와 광장에서 정치에서 세상살이로 밤을 새우는 사람들, 청년들은 바다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골목 계단에서 속닥거리며 깔깔 거리고 웃는 소리에 아무리 그리스 경제가 좋지 않다고 해도 이들은 여전히 밖으로 나와 젊음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티씨는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을 처음 발군하자고 할 때 아가멤논, 아킬레스, 아더시등이 모였던 곳이 바로 파트라 시였다고 말했다. BC 3000년 부터 이어진, 트로이시대에서 헬레니즘의 전성기, 메시니안, 로마 점령기, 비잔틴 문화, 오토만 점령기, 그리스 독립전쟁, 세계 2차 대전을 비롯한 역사적인 흔적들을 도심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즉 King George I Square 를 비롯하여, Ipsila Alonia Square, Trion symmachon Square with the old hotel Metropolis in the background, Psilalonia Square, Patras Castle, built during the Byzantine era, Monument for the Greek War of Independence (1821–1830), Roman Odeon 등이 밤을 밝히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별들 아래서, 꽃 시계탑 아래서 여전히 미래를 향한 시간으로 쉬지않고 돌아가고 있었으며, 파트라시의 항구의 불빛은 이방인들의 눈안에서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다시 티씨의 별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간단한 샤워를 한 뒤,너무 지쳐 침대에 눕자마자 잠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새벽이 되고 아침이 된 것을 느낀 것은 다름아닌 어디선가 들리는 “꼬끼오!” 소리와 아침 일찍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을 팔러 다니는 생선장수 트럭이 외치는 ‘생선 사세요!’ 소리였다.
아침에 간단히 한국 요리를 했다. 밥을 하고, 오이 김치를 담고, 양파와 감자 볶음을 하고 아침 상을 준비했다. 베시가 일어나 깜짝 놀라며, 냄새가 참 좋다고 말했다. 티씨는 눈이 동그랗게 더 커지며, 입가엔 미소가 가득 올라가 있었다.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티씨는 어떻게 하면 밥을 이렇게 맛있게 지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자기들은 밥이 먹고 싶어서 밥을 지어도 밥이 아닌 ‘푸딩’이 되어 버린다고 말하며 비법을 물었다. 필자 남편은 자세하게 밥을 짓는 법을 알려주었고, 필자는 오이 김치와 감자와 양파 볶음을 설명해 주었다. 티씨와 베시가 호기심 가득 담은 눈망울로 음식을 접시에 가져다가 열심히 먹었다.

이틀째 되는 날의 여정은 일단 그리스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기로 했다. 오전 중에 베시는 수영을 하러 간다며 나에게 같이 갈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선탠 크림을 발랐다. 참 재미있는 것은 집앞 바다가 마치 수영장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다로 계단이 놓여진 나라,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바로 바다인 나라, 물의 맑기가 너무 맑아 마치 물고기 처럼 같이 수영을 하고도 물고기가 내 살갗을 스치는 느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스노클링 가글을 쓸 필요가 없는 나라인 그곳에서 한 시간이 넘게 수영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두 남자가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도 따라나섰다. 이번엔 배를 타고 건너편 섬으로 간다고 했다. 티씨의 자동차를 태운 쾌속정을 타고 건너편 육지를 향해 떠났다. 약 20분 만에 도착한 곳은 그 옛날 수 많은 침략을 당하면서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 요새를 구축한 곳이 건너편에도, 그리고 반대편에도 나란히 있었다. 요새 안에는 성이 건축되어 있었다.

나프락토스란 도시는 소읍으로 바닷가를 끼고 있으며, 티씨에 의하면 티씨의 어머니의 고향 앞바다였다. 티씨 어머니는 산위에 있는 집, 성으로 우람하게 버티고 있는 그곳에서 바닷가 장터로 물건을 사러 올때는 나귀를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덧붙이며 베시는 아주 자랑스럽게 자신의 시어머니는 참 멋진 여인이었다고 말하며, 특히 발이 큰 여자를 며느리로 골랐었다고 말했는데 바로 자신이 발이 크다고 말할때 필자가 그녀의 발을 보니 역시 그녀나 필자나 사이즈 면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이유는 오크 통에 와인을 담을 때 오크 통에 들어가서 포도를 발로 밟아 으깨야 하는데 발이 큰 사람일 수록 더 깊은 맛을 내는데 도움을 준다며 너스레를 떨자 운전을 하던 티씨의 얼굴이 해 맑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바닷가에 있는 커피샵에서 카푸치노로 간단히 요기(대부분의 커피샵에서는 커피와 빵이 함께 나온다)를 한 후, 다시 차를 돌려 그 도시에서 가장 손님이 많다는 맛집으로 향했다. 대를 이어 레스토랑을 하는 맛집, 90세의 연로한 나이에도 여전히 식당에서 캡틴으로 모든 요리를 지휘한다는 그리스 할머니, 그녀의 며느리, 그리고 그녀의 손주와 손주 며느리가 함께 하는 음식은 바다에서 금방 건져 올린 조기, 돔, 전어 같은 생선으로 계속 상위에 올려지고 있었다. 화잇 와인과 함께 점심겸 저녁을 먹고 두 남자는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다시 올개닉 수영장이라 일컫는 바다로 향했다. 베시와 나도 수영복을 입고 잠시 물에서 놀다보니 두 남자가 어느새 타올을 깔고 모래 사장위에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필자와 베시는 수 백년동안 바다를 지키고 그리스를 지켜온 성곽 구석구석을 돌며, 그림과 소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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