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Million Koreans in Total Gathered to Protest Park in This Year – 김광식 교수 칼럼

사진 김광식 기자

‘송박영신’ 10차 촛불집회에 총인원 1000만명을 웃도는 국민들이 광화문으로 집결하여 박근혜 퇴진을 외친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광화문에서는 모두가 “위아 더 침피언”을 외쳤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는 70일동안 사실상 ‘챔피언’이었다. 챔피언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교훈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안 처리’, ‘김기춘 구속’, ‘우병우 구속’, ‘재벌 해체’,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는 겸허한 챔피언이다. 오늘 연인원 1천만명이 넘게 모인 날이기도 하다. 오늘 처음 광화문에 내려 보았더니, 그때 광화문에서는 자유발언대 시간으로서 전국의 운동 사례를 발표하고 있었다.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연합측에서 부회장은, 올해 1월 8일에는 전국택배노동자 연합회가 창립된다고 밝혔 많은 참석자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부산에의 온 남학생은 12월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어렵게 세운 소녀상을 동구 공무원들이 빼앗아 갔는데, 그것을 어제 찾아 왔다는 보고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장흥 노인희망회에서는 한 대표가 나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박근혜 정부가 내려와야 함을 강조해서 이야기 하기도 했다.

연극 연출가는 예술의 기능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음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풍찬노숙하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퇴진행동은 송년사를 통해 “촛불을 밝힌 시민들 덕분에 올겨울은 따뜻했다”며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다. 국회를 움직여 대통령을 탄핵하게 만들었다”고 자체평가하기도 하였다.

저녁 8시 ‘송박영신 콘서트’에서 신대철씨는 “친박단체는 ‘아름다운 강산”을 부를 자격 없다. 촛불집회 주최 측은 나를 섭외하라”고 발언해 화제가 된 록밴드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씨가 공연을 기획하였다. 신씨는 “아름다운 강산”의 원작자 신중현씨의 아들이다. 밴드 들국화 출신 가수 전인권씨도 합류했다. 그밖에 한국 음악을 하는 많은 분들이 참여한 콘서트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도 신대철씨의 동생인 신준철씨가 공연을 하였다.

오후 9시30분부터는 효자치안센터, 126맨션 앞 등 청와대, 총리공관, 헌법재판소(헌재) 인근으로 행진을 했다. 이후 11시에는 보신각에 모여 제야의 타종식에 합류를 했다. 퇴진행동은 애초 시민대표 33인을 선정해 별도의 타종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서울시 타종식 33인에 세월호 유가족, 촛불집회 쓰레기봉투 기부자 등이 포함된 점을 고려해 서울시 측에 합류하기로 결정하였다.

사진: 김광식 기자

전국 각지에서도 함께했다. 퇴진행동에 따르면 31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세종, 경기, 충북, 전남, 경남, 제주 지역에서 지역별 촛불집회를 열었다. 그 가운데 강릉에서는 ‘송박영신’ 해돋이 행사도 계획되어 있다.

촛불집회는 정국이 안정되어 정상적인 괘도를 돌때까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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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e Triangle? Cessna Carrying 6 Aboard Vanishes

(Photo from Google Images)

12월 30일(현지 시간) 시카고 트리뷴지에 따르면, 지난 29일밤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 버크 레이크프론트 에어포트를 이륙한 Superior Beverage Group 음료유통업사장, John T. Fleming 씨가 직접 비행한 세스나기종 사이테이션 525기종 (엔지 두개 장착) 비행기가 이륙한 지 30분 후에 교신이 끊어진 채 지금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밝혔다. 이 비행기에는 조종사인 Fleming 씨와 그의 아내, 두 명의 틴에이저 아들과 이웃과 이웃의 딸로 총 6명이 타고 있었다고 Joseph McHenry 수퍼리어 베버리지 부 사장과 실종된 Fleming씨의 아버지가 말했다고 전했다.

비행기는 어젯밤, 29일밤 10:50분 이륙했으며, 레이크 에리 상공 2마일 지점에서 실종된 것으로 보고 구조활동을 겸한 수색작업을 하고 있으며, 코스트가드 9지역 대장인 Capt. Michael Mullen씨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찾고 있다고 밝혔다.

비행기 추적 프로그램인 FlightAware 는 세 지점에 Pings 를 들었다고 밝혔으며, 맨 나중에 들린 “핑” 추적음은 갑자기 고도를 상실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조종사로부터 어떤 신호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 하고 있다.

그 비행기는 오전 일찍 클리블랜드로 부터 30분 가량 비행했으며, 이 비행기는 Superior Beverage 소속으로 되어 있으며, 제한된 책임보험만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비행기로 부터 ELT(Emergency Locator Transmitters)음이 들리지 않았으나, 관계자들은 “희미한 힌트”같은 것을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구조와 수색은 레이크 에리의 기상이 악화되어 눈발이 날리고 어둠이 짙게 깔려져서 난항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로얄 캐네디언 에어포스와 HC-130미국 코스트가드(해경구조대) 헬리콥터와 디트로이트에 있는 코스트가드 헬기가 날아와 수색중이다.

이 비행기는 콜럼버스 다운타운의 북서쪽에 위치한 오하이오스테이트 대학 공항을 향해 가던 중에 실종된 것이다. 20시간 이상 밤을 새워 구조하던 구조팀들은 적어도 128마일 레이크 에리를 수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기상이 최악인 상태에서 잠시 수색구조 작업을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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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ama: US Will Sanction Russia for Election Hack

CNN 화면 캡쳐

12월29일(현지 시간)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러시아가 해킹한 사실을 더는 목도할 수 없으며, 미국 대통령 선거에 영향력을 끼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했으며,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에 대해 경제적, 외교적으로 제재를 가하겠다고 공식적으로  29일 백악관은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9명의 FSB, 러시안 정부 정보부 직원들과 GRU 러시아 군대 정보부 직원들이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를 해킹해서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며,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디시에 있는 35명의 러시안 정부 관계자들과 메릴랜드와 뉴욕에 있는 러시아 관계 기관에 대해, 기관을 폐쇄하고 지금부터 72시간 내에 미국을 떠날 것을 명령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 정부에 대해 경제적.외교적인 제재 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다양한 부분에서, 비공식적으로 우리의 사정을 살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리조나 주 상원의원인 John McCain 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도 러시아에 제재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에 입을 모았다. 목요일, 멕케인 상원의원은 리투아니아 방문 중에서 이와 같이 밝혔다. 리투아니아는 전 소비에트 연맹국이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등도 이러한 미국의 제재 방침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에서 유난히 러시아 제재를 반대하는 상원의원으로는 Mitch Mc Comnell(KA-R)이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오늘 오바마 대통령의 러시아 제재 발표에 이어, “Russian are not our friends” 라고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 도날드 트럼프 당선자는 NBC 뉴욕을 통해, 이제는 러시아 문제를 덮고 앞으로 전진하자고 말해 의구심을 일으키고 있다.

도날드 트럼프 당선자의 대 러시아 정책이 어떻게 바뀌게 될 지 현재로서는 누구도 예감할 수 없으나, 지난 27일 아베 일본 수상이 하와이의 진주만에 전쟁의 상흔으로 아직도 바다위에 떠 있는 아리조나 함을 바라보며, 전적지를 방문해서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간의 Pearl Harbor Meeting 에서 두 나라간에 동맹을 더 공고히 한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문으로 아베 수상이 전쟁 희생자들에게 위로를 보냈으며, 유공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죄했다. 이러한 아베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는 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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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terte: “I killed them.”

 

(Photo from Google Images)

12월 28일(현지 시간)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얼마전 납치범을 잡아 헬리콥터에서 지상으로 던져 죽게한 후, 1달도 채 걸리지 않아 또 다른 살인을 했다고 밝혔다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이 다바오 시장으로 있을때 개인적인 감정으로 살인을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나도 이렇게 하는데 너희들도 할 수 있다고 보여주었으며, 직접 범죄인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고 직접 자신의 살인 행위를 시인했다”고 덧 붙였다.

이러한 두테르테의 살인 행위는 그가 다바오 시의 시장으로 있을 때부터 일어난 일이며, 밤에는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각종 범죄인들을 잡으면 가차없이 총을 난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또한 그가 직접 자신의 행위를 고백하며, 사회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고 필리핀 현지인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필리핀 인 R씨는 처음에는 필리핀인들도 그의 범죄와의 전쟁에 대해 적극적인 호응과 반응을 보였는데 지금은 서서히 필리핀인들도 두테르테의 안하무인격인, 공포정치를 실행하고 있는것에 대해 반대의사와 함께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 을 선포한 뒤 필리핀에서 마약범으로 인정되는 자들은 모두 잡아 사형에 처하는 등으로 인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그의 인권 유린에 대한 비난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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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 Mourns: Debbie Reynolds Passes Away A Day After Daughter Carrie Fisher’s Death

In this January 25, 2015 file photo, ctresses Debbie Reynolds and Carrie Fisher pose in the press room at the 21st annual Screen Actors Guild Awards at The Shrine Auditorium in Los Angeles, California. Jason LaVeris / FilmMagic

12월 28일(현지 시간) 브로드웨이월드에 따르면, 바로 어제 스타워드의 레아 공주 역을 맡아서 할리우드를 빛 냈던 영화배우이자 작가인 Carrie Fisher(60)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식이 먼저 어머니를 두고 떠나, 슬퍼서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던 할리우드 스타인 Dabbie Raynolds(84)가 오늘, 28일 오후, 자신의 아들집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응급실에서 소생하지 못하고 오후 1시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Raynolds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바로 어제 그녀의 딸 Carrie Fisher씨가 사망한 소식과 함께 미국인들에게 두 모녀를 잃은 슬픔을 넘어서 훌륭한 할리우드 스타들을 한 꺼번에 잃은 슬픔과 겹쳐서 아픔으로 번지고 있다. 데비 레이놀드씨는 1948년 미인대회에서 승리한 후, 워너브라더스사와 엠지엠사로 부터 스카웃을 받을 정도로 1948년 미국 영화계를 주름잡는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그녀가 캐스팅된 영화를 보면, “The Daughter of Rosie O’Grady”, “Two Weeks with Love”, “Singin’ in the Rain” 으로 아카데미 상과 골든 그로브 상의 1위에 랭크되었었으며,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의 리스트에서 100위 뮤지컬 안에 항상 들어 있었다.

뮤지컬 배우로, 영화 배우로, 코메디극으로, 그러나 인간적인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남편 Eddie Fisher 가 그녀를 버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재혼을 하는등 그녀의 삶은 가정적으로는 아픔이었다. 시트콤 드라마인 “Jill and Grace” 에서도 노련미를 보여 주어서 박수를 받았으며, 최근 2012년 코미디극인 “Only for the Money” 에서 열연하는 등, 오스카 상과 다섯번이나 되는 골든글로브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두 번의 애미상 수상, 한번의 토니 상을 휩쓸었던 다재다능한 영화배우였다.

Carrie Fisher, Debbie Raynolds 가족분들께 위로를 드린다.

Condolences to the families of Carrie Fisher, and Debbie Raynolds and all their fans.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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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망명은 허구, 미국에 의해 납치되다

(사진은 중앙일보에서 빌려옴(전쟁이 발발하자 국민을 버리고 대전으로 도망간 후, 다시 아무도 모르게 부산으로 도망간 이승만 전 대통령과  부인 프란체스카)

12월 27일(현지 시간) 뉴스로에 따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에 자유의지로 망명한 것이 아닌 미국에 의해 납치, 압송되었다고 밝혔다.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이승만 동상을 세우는데 앞장서는 한인들이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한인들은 왜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며 그를 기리는 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과연 믿을만한  진실인가? 지금처럼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사를 읽으며 과연 이 기사가 믿을 만한 기사인지 하는 생각을 하며 요모조모 따져보고, 비슷한 제목으로 구글을 해서 찾아보기도 한다. 그래서 믿을만하다고 생각되면 그때는 뉴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1960년대 초반의 한국은 과연 어떠했는가?

뉴스로에 따르면, 이승만의 출국은 “망명” 이 아니었다는 월간 조선 기자 이동욱씨의 심층 분석 기사로 한국 내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물며, 아직도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의 한인 커뮤니티는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며, 그를 위한 동상을 세우는데 열정을 다하고 있다. 김태환씨(현대사 연구가, 로스엔젤레스 거주,  남가주 한인 하버드대 동창회장)에 따르면, 미국 정부 자료와 미국의 외교관들의 회고, 회견 기록물등을 열람하면서 1960년 5월 29일 이승만 전 대통령 미국 망명설은 허구였으며, 3.15 부정선거, 4.19 혁명등과 아울러 틈만나면 북한을 침략한다는 발언으로 미국을 긴장하게 한 그를 더는 볼 수 없었던 미국 CIA 의 공작에 의한 납치였음을 밝혔다.

이승만 정부의 “반공포로 석방”, “아이크가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한국전 (6.25 사변)휴전 달성을 목전에 두고 27,000 명의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한 것은 이 박사가 휴전 협정 교섭을 중단시켜서 전쟁을 연장시키려 한다고 판단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격노하게 만들어 그는 국가안전보장위원회 회의에서 (이미 작성된 이박사 제거 작전인) 에버레디 작전(Plan Everready)을 발동하여 이 승만 대통령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5) 주변에서 만류해서 당시엔 그냥 넘어갔다. 특히 아이크가 이 박사에 대해 분노하는 이유는 반공 포로 석방 사건으로 휴전 조인이 약 5주가 연기되는 바람에 불필요한 미국인 자제들의 인명 피해(Casualties) 가 주당 약 1천 명으로 근 5천명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민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반공포로 석방은 근본적으로 불필요했다. 그 이유는 이미 그해 68(석방 10일 전)에 유엔측과 공산측에서 휴전 교섭상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포로 송환 문제를 자유 송환 방식에 합의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반공 포로 석방에 격분한 중공군은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평한 것 같이 (6), 북진 통일이 이 박사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을 본때있게 보여주려고, 713일부터 약 일주간 한국군이 담당했던 중부 전선의 금성천 돌출부(Kumsong River Salient)에 한국전 참전이후 최대 규모의 공격을 가해서 우리 장병 약 3만 명이 죽거나 다친 (공산측은 63천으로 발표) 한국전 발발이후 단일 전투(금성천 전투 또는 7.13 공세로 불리운다)로는 최대의 인명 피해(Casualties)를 당해서 (7), 이 박사의 노망기로 그 자신 조금만 젊었더라면 고 딘 디엠 신세가 될 뻔 했고 종내엔 권좌에서 축출(逐出) 될 빌미를 만들었을뿐만 아니라, 우리의 젊은 장병 3만 여명을 도살장으로 몰아넣었는데 아직도 이승만 추종자들은 영웅적 쾌거라고 읊어대고 있다.” <뉴스로 기사 발췌>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자신의 저술서 <한국 1950 전쟁과 평화>에서 이승만의 행태를 이렇게 비판했다. <중앙일보 기사 발췌>

“6월 25일 전쟁 시작 이후, 특히 6월 27일 서울 탈출 이후 부산을 거쳐 7월 9일 대구로 이동하기까지 서울-대구-대전-수원-대전, 그리고 다시 대전-이리-목포-부산-대구에 이르는 15일 동안의 이승만의 행적은 한마디로 의문투성이였다. 단순히 우왕좌왕이라고 부르기에는 국가원수로서 너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누란의 위기에서 이승만은 두 번의 통치 공백, 사실상의 통수권 유고사태를 빚었던 것이다. 처음엔 대구로 혼자 도망갔다가 대전에 도착할 때까지 열차에 머문 시간이 12시간 30분이었고, 두 번째는 훨씬 더 길어서 대전-부산 간 이동에 소요된 시간은 32시간이었다. 이 시간 동안 그는 아무런 군대통수 기능을 행사할 수 없었고, 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의 입만을 바라보던 각료들이 황망히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동안 정부로서는 아무런 정상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었다.”

위기의 순간에  국민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이리저리 도망다닌 대통령, 그는 마치 세월호 7시간동안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가는 아이들을 버려둔 채, 롯데호텔에서 성형 수술을 한 현 대통령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 국가의 수반이었다.

그 당시 허정 과도 정부와 이승만 박사 본인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미국의 공작,  “이박사 출국 3일전에 미대사가 허정 수반에게 이 박사 출국을 알렸다” 는 것을 보면 어느정도 짐작할 수있는 시나리오다. 물론 그 당시 이기붕( 이박사의 양아들)씨를 부정선거를 통해 뽑았으나 이기붕역시 “기동도 못하고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 문자 그대로 병신” 이었으며, 이 박사 역시 정신이 흐려져서 생각을 바로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이미 병약한 자로 국정을 돌 볼 수 없었던 터라, 프란체스카 여사와 박한철씨가 국정을 돌보는 상태였다고 하니 과연 지금 정부와 대조해서 보면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기사를 뉴스로에서 불러와서 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역사를 바로 알자는 이유다. 너무나 왜곡된 역사로 우린 그동안 세뇌되어 왔다. 하지만 진실은 어둠을 뚫고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기에 이 기사를 현 시국과 관련하여 올려 보았다. 기사를 읽고 판단은 읽는자의 몫이다.

관련 기사는, 아래와 같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kth&wr_id=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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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9th Candlelit Protest and Special Prosecution in South Korea

 

사진: 김광식 기자

12월 26일(현지 시간)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광화문 광장에는 60여만명이 모였다. 산타 복장을 입은 수 많은 청년 산타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참가자들에게 촛불과 선물을 증정 하기도 했다. 산타들은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탄핵을 결정해야 한다며 “박근혜 즉각 퇴진 구속 수사” 라는 피켓을 들고 행진을 했다. 전국적으로 약 80여만명이 헌법 재판소를 향해 “박근혜 즉각 퇴진, 김기춘 구속, 우병우 구속, 재벌 해체, 헌재는 즉시 박근혜 탄핵” 을 결정하라며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섰다.

가수 마야가 집회 행사에 나와서 “진달래꽃”을 열창하며, 길바닥도 차고 날씨도 추운데 이렇게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나와서 여러분들의 체온을 조금이라도 올리고 내려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해 한 겨울 길거리에 앉아 촛불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놓기도 했다. 사전 집회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씨는 “최순실씨네 일가의 재산을 모두 몰수 해야 한다”고 해서 박수를 받기도 했으며, “10조원은 국방예산의 1/4이다. 저출산 예산의 반이다. 그 돈이면 매해 태어나는 신생아 40만 명에게 분유와 기저귀를 지원해줄 수 있다. 우리가 낸 돈이 우리에게 쓰일 수 있게 하자”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날카로운 현 정국 분석으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사진: 김훈 기자

광주에서 열린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 집회는 2만여명이 금남로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 하야” 를 캐롤송”메리 하야 크리스마스”로 불렀으며, 어린이에게는 선물을, 박근혜에게는 수갑을 선물하자고 외치기도 했다. 다른때에 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금남로로 몰려들었으며, “박근혜, 김기춘 구속”의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었으며, “우병우, 황교안 처벌”,”황교안 내각 총사퇴”등의 피켓을 들고, 이명박의 자원 외교도 특검에서 조사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상훈(나팔부대장) 씨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나팔부대원, 풍물패, 싹쓸이패는 청와대 앞까지 진군하여 역사상 가장 시끄러운  데모”로 나팔을 불며 “박근혜는 당장 하야 하라, 당장 구속하라”등을 외치며 퍼포먼스와 함께 자신의 페북에 송구영신 대신에 #송박영신,  박근혜를 보내고 새롭게 새해를 맞자고 말했다.

김광식씨는 자신의 페북에, “이번 평화대팽진에는 엄청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2016년의 광화문 평화대행진에는 모든 세대가 참여하여 역사의 발전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축제를 보면서 이제는 청소년의 발언권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더욱 더 신중하고 더욱 더 존중해야함을 배운다” 고 말했다.

부산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이브 집회는 부산시 진구 중앙대로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9차 촛불집회가 열렸으며, 1만7천만여명의 시민들은 “헌재는 범죄자를 즉각 탄핵하라” “재벌 혁신” 등의 문구가 들어간 손팻말을 들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대구등지에서 몰려든 박사모 1만여명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이날 “박근혜 탄핵 기각” 을 외치며 맞불 시위를 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과 관련해서 그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과의 모종의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았는가에 대해 박영수 특검은 한겨레 기자의 질문에 대해 특검에서 다시 다룰 것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수 특검팀은 26일 오전 김기춘 전 비서실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정검사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을 알지도 못하며 만난적도 없다고 부정했으나, 김진태 전 검찰 총장은 몇 번의 전화가 걸려왔으나 특별히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며 한겨레는 밝혔다.

< 기사, 사진 제공: 김훈, 김광식, 전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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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nam Girls’ High School: Pioneers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and Culture

12월 24일 (현지 시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성지인 광주, 민주화의 횃불을 들고 시대의 어둠을 밝혔던 빛 고을에 소재한 전남여자고등학교(교장 김덕중)개교 90주년(2017년 5월 25일)이 몇 달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가장 암울한 1920년대,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일본군의 말발굽아래서 신음하던 그 때, 광주시 동구 장동 39-12번지, “건강하고 예의 바르며 예지에 찬 일할 줄 아는 새 한국의 여성” 이라는 교훈을 가진 배움의 전당이 1927년 5월 25일(4월 25일 개교 허가)탄생했다. 개교 이래, 여성 엘리트들의 산실로 전국에서도 명망있는 고등학교란 명성은 할머니대에서 손자대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에 걸 맞게 성장하고 또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학생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내 던지는 투혼도 불사하지 않았다. 광주시의 중심부 (금남로와 충장로가 지척에 있음) 에 위치해서 광주의 역사적인 사건에 산 증인이 되었고, 투사를 배출했던 학교의 지리적인 환경이 마치 한국이 반도국으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침략의 징검다리역할을 한 것과 상이한 대조를 이룬다.

광주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부터 광주 학생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빛을 발한 독립운동 (광주시내에서 빚어진 한일중학생간 충돌과 12일 광주지역 학생 대시위운동을 거쳐, 한편으로 호남지역 일대로 확산되고, 다른 한편으로 서울을 거쳐서 전국으로 확산된 항일 운동으로 1929년 11월 말에서 1930년 3월, 5월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된 학생독립운동(위키피디아 참조) 이다.
광주에서 시작해서 경성, 평양, 함경도 등지와 만주벌에 위치한 북간도까지 확산된 이 운동은 급기야 1930년 5월까지 전국적인 동맹 휴학, 학생 항일 시위로 확산되었고, 그 당시 중 학생들이 이끌었던 항일 독립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3.1 운동 10주년을 맞아 시작된 항일운동으로 1930년 5월까지 민족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낸 광주 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인 광주고등보통학교와 전남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가 선봉에 서서 학생들을 독려하고 일제에 항거하여 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다.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학생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특히 광주의 대표적인 학교,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는 늘 깨어있는 지성과 양심으로 잠자고 있던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어깨워 압제와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천명하고 교문 밖으로 나와 그동안 일제 식민지하에서 당한 편협적인 조선학생 억압정책과 우민화 정책에 항거하고, 11월 3일(음력, 10월 3일 단군이 고조선 건국한 개천절)에 있었던 메이지 유신의 상징인 메이지 천황의 생일에 일본 국가인 “가미가요”를 강요했으나 조선학생들은 따르지 않았으며, 그날 오후 하교길에서 생긴 광주발 통학 열차에서 발생한 일본인의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기옥, 이광춘)의 댕기머리를 일본 학생들이 잡아당기며 희롱한 사건은 급기야 반일감정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았다.

“역사는 기억되지 않는 한 다시 재현된다”는 엘리비젤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최근 한국은 또 다시 위기다. 국정농단이라는 엄청난 국가 재앙의 진앙지인 청와대는 국민을 상대로 여전히 “할테면 하라!”는 식으로 국민의 외침을 무시하며 외면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버젓이 일본천황이 한국땅, 서울의 중심지인 하야트 호텔에서 생일상을 차리고, 친일파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친일 경제인들은 일본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국민의 원성을 귓등으로 듣고 줄 지어 천왕을 만나러 갔다. 해방된 나라에서 여전히 활보하고 있는 친일파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 행각을 계속해오고 있다.

1929년의 역사적인 기록이 전남여자고등학교 역사관에 보존되어 있었다. 역사관은 적벽돌로 지은 단단한 2층 건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비(감자바위라 칭함)의 시린 어깨를 포근히 감싸주고 있던 히말라야시다(전남여고 교목)의 너른 팔이 마치 역사관을 가리키며 꼭 한번쯤 들어가서 잊혀져서는 안될 역사를 다시한번 되돌아보라는 권고처럼 느껴졌다.

전남여자고등학교는 수많은 여성 인재들을 양성해왔으며, 지금도 현재 진행형임을 학교 체육관과 음악실, 대강당과 노란색 개나리(교화)가 어둠의 겨울을 희망의 봄으로 인도하는 의미로, 노란 색이 학교를 상징하는 교정에서, 선생님 한 분이 교정에 가득 채워진 형형색색의 국화 화분(선생님 한 분이 국화를 키우고 관리하고 계셨음)을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있었다. 마치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들의 자질에 맞게 그들의 꿈의 그릇을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스승처럼… 체육관에서 열심히 펜싱 연습을 하고 있던 펜싱부 학생들과 학교 운동장을 달리던 학생들, 작은 정자와 구름다리, 학생들에게 사색의 공간을 마련해서 교실에서 공부에 씨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잠시나마 쉼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한 김덕중 교장 선생님, 교장실에서 교정의 구석구석으로 국화향은 세월을 건너 흐르고 있었다. 기자는 교장 선생님의 발자욱을 따라 옛 선조들이 조국을 위해 흘렸을 눈물과 피와 땀 방울의 흔적을 찾아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과 같은 눈높이로 대화하는 김덕중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의 친구로 언제든지 찾아가서 고민을 토로해도 될 듯한 편안함을 가진 분으로 학생들에게 언제든지 마음을 열고 대화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같으며 아버지같은 의미로 존재하고 계셨다.

학교에 방문한 외부인인 기자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연미 교감선생님의 자상한 배려와 절도있는 예의는 굳이 전남여자고등학교가 어떤 학교였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학교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었다. 스승을 보면 제자를 알 수 있듯, 이연미 교감을 통해서 세월이 변해도 여성의 미덕과 예절과 지성의 면모는 바뀌지 않았음을 보았으며, 그 옛날 수 많은 학생들이 여성으로서 예절을 배워 예.지.덕을 키우는 공간이었던 생활관은 학교 건너편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2016년 세밑, 한국은 위기다. 그러나 성숙된 국민의식은 이 위기를 새로운 전진을 위한 기회로 극복해 낼 것을 믿는다. 아주 오랫동안 숙성된 자유, 민주의식은 “국가의 주인은 국민”임을 다시한번 천명하며, 주인으로서 국가를 관리, 감독하여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 해 나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왔으며, 광주 학생독립 운동의 발상지인 광주에서, 그 모체가 된 전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장(김덕중), 교감 (이연미), 교사, 학생이 일치 단결하여 인재를 양성해왔던 전통과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음을 보면서 더 확신이 생겼다.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잘못된 관행과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재 정비해서 관리.감독할 때에 역사는 순행을 하게 된다. 잃어버린 7시간의 실체와 세월호의 진상을 낱낱이 살피고, 300여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며, 이제까지 잘못된 국가 시스템의 희생양들의 원혼들을 달래주어야 하며, 전대미문의 국정농단에 의해 잃어버린 국민주권을  성숙한 국민의식으로  이 국난을 잘 해결해 나가야 한다. 국민의 촛불이 단순한 촛불이 아닌 정의를 구현하며, 진실을 밝히는 횃불이 되어 세계인이 주목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순항하게 할 것으로 믿는다.

그것은 광화문에 모인 많은 초.중.고. 대학생들의 살아있는 주인 의식과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모체가 된 전남여자고등학교의 선.후배가 가정의 어머니로, 투사로 민주주의의 회복(한 예로 광주민주화항쟁)을 가져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증명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러한 기본과 근본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 민주주의의 회복과 가치 이념을 세계에 널리 남기는데에 부족함이 없을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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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nk of America Student Leaders Program Application Deadline – Jan.27. 2017

(사진과 해당 프로그램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으나, 리더쉽이라는 개념에서 이탤리언 학생들의 지역 봉사, 조직 봉사에 대해 직접 찍은 사진으로 활용하였음)

12월 23일(현지 시간) KCCD(Hyepin Im) 에 따르면, 뱅크오브 아메리카의 2017년 학생 지도자 프로그램 지원서를 오는 1월 27일까지 받는다고 알려왔다. 대상자는 고등학교 주니어와 시니어를 대상으로 실시하며, 학생들이 여름 인턴쉽을 통해 은행에서 선정한 비 영리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을 직접 접하며, 지도자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8주동안 은행에서 일정액의 급여를 지급한다. 2017년 7월 중 일주일 동안 워싱턴에서 있을 서밋에서 해당 참여 조직과 학생들은 어떻게 학생과 지역사회, 비즈네스, 관련기관과의 일의 연계성을 통해 그들의 지도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관심있는 사람은 아래, Millie Yamaki 씨의 연락 메일 주소로 직접 문의 할 수 있다.

“The Bank of America Charitable Foundation is accepting applications for its 2017 Student Leaders® program until January 27th.  If you haven’t done so already, we would like your help spreading the word.

Since its inception in 2005, the Bank of America Student Leaders Program has recognized more than 2,200 exemplary high school juniors and seniors who have a passion for improving their communities.  The program helps students gain a greater understanding of how nonprofits create impact in the community and helps develop them as the next generation of community leaders through two components:

·         A summer eight-week paid internship with a nonprofit organization selected by the bank. This internship is designed to provide opportunities for the students to develop and apply leadership skills through hands-on work experience, while raising their awareness of community issues addressed by their Host Organization.

·         The week-long, all-expense paid Student Leaders Summit in Washington, D.C. in July 2017. Conducted in partnership with the Close Up Foundation, the Summit introduces students to aspects of civic, social and business leadership and provides them with knowledge and skills they will use throughout their life to create positive community change.

In order to spread the word about the opportunity to your members, partners, and affiliates, please distribute the email below and the attached flyer. If you would like to receive hard copy of the poster, please let me know and I will send it to you.

We appreciate your help spreading the word about the Bank of America Student Leaders Program. Students can apply for the program by going to www.bankofamerica.com/studentleaders. Please note the application deadline is January 27, 2017 (no exceptions).

For more information on the Bank of America Charitable Foundation, please visit www.bankofamerica.com/foundation or feel free to contact @ millie.yamaki@bankofameri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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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ots are Taking Jobs Away, Not China


Credit to Roboter schweißen am Mittwoch (07.03.2012) im VW-Werk in Wolfsburg die Karosserien vom Tiguan Modell. Am Montag (12.03.2012) werden im Rahmen der Jahrespressekonferenz die Geschäftszahlen des Konzerns bekannt gegeben. Foto: Jochen Lübke dpa/lni +++(c) dpa – Bildfunk+++

12월 22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그동안 트럼프 당선자의 주장(미국 국민들의 직업을 빼앗아 가는 것은 중국에 공장을 세워서 중국에 일감을 몰아준 것과 이민자들이 미국 국민들의 직업을 뺏아 갔다고 선거 유세에서 말했다)과는 다르게 미국민의 일감을 빼앗아 가는 것은 기술 개발로 인한 로봇트가 인간의 직업을 대체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MIT 대학의 경제학자들의 리서치(Daron Acemoglu, David Autor)에 의하면,  지난 2000년 경부터 중국으로 적어도 2.4백만개의 직업을 잃었다고 밝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유시장 체제가 일감을 빼앗아 가지만 궁극적으로 대부분 인간들이 그동안 해 왔던 일들을 이제는 로봇트가 대신하고 있다고 말하며, 대부분의 일들이 이제는 소수의 사람만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에서 인간은 기계만 감독하는 일을 하게 된것이다.   Mr. Autor 씨는 지난 1월 발표한  자신의 연구 논문에서 밝혔다.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는 “Some of it is globalization, but a lot of it is we require many fewer workers to do the same amount of work, Workers are basically supervisors of machines” 이라고 밝혔다.

Greg Hayes, (Chief Executive of United Technologies)씨는 공장을 멕시코로 옮겨가는 대신 인디애나 주에 $16 million 을 들여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운송공장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CNBC 에 “결국에는 아주 소수의 인원만 필요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자동화 시스템을 선호하는 기업주들은, 자동화 시스템은 일단, 한번 돈을 투자하면 기계가 망가질때까지 쓸 수 있으며, 망가지면 다시 수선하거나 재생해서 사용하고, 인간과는 달리 인종, 성차별, 연령 차별등의 고용법과 무관하며, 노조나, 임금을 올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에 처음에 많은 돈을 들여 투자를 하면 최소한의 고용인원으로 기계를 필요한 만큼 가동시킬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며, 결국은 이러한 것들로 인해 점점 인간들은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고 덧 붙였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철강회사는 지난 50년동안 75%의 고용인원의 감소를 보였으나 똑 같은 양의 생산을 해 왔다고 덧 붙였다. 모 레스토랑에서는 카운터 대신 컴퓨터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고 주문후, 손님이 기다리는 곳에 음식이 콘베이너에 실려 배달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조지아 주에 살고 있는 Johnson씨는 지역 신문사에서 프린트 기계에 종이를 넣어주는 일을 그녀의 첫 직장으로 삼고 수 십년동안 그 일을 해 왔으나, 결국 그 일을 이제는 기계가 대신하게 된 후, 직장을 잃고 장애자혜택을 받고 겨우 살아가고 있다고 뉴욕 타임즈에 말했으며, 굿윌에서 컴퓨터 클래스를 택하고 다른 직장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더 젊고 유능한 세대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어 다른 묘안이 없다고 덧 붙였다.

도덜드 대통령 당선자는 존슨 씨처럼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게 선거 유세시 공약으로 말했다. 중국에 있는 미국 기업을 다시 본국으로 불러 올 것이며, 멕시코에 있는 미국 기업 또한 본국에 유치 시킬때 더 많은 직업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언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결국은 기계나 컴퓨터가 대신할 수 없는 직업을 구해야 하는 것인데 거의 모든 직업들이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는 생산직, 유통직 공장은 여전히 인간과 기계사이에서 사활을 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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