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6 <조준희 기자>

Photo from Google Images

금잉어 소년들 (하편)

친구들을 불법의 길로 인도 후 인과응보를 받은 배신자 친구녀석의 발목이 거의 나아갈 무렵 우리는 미리 세워 두웠던 낚시터로의 조행을 결행하고자 다시 모의를 하게되었다. 장소는 수원 용주사 근처 작은 방죽으로 정하게 되는데 무리 중의 한 친구 아버지가 유료 낚시터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신 양어장이었다. 지금은 유료낚시터가 상당히 많아졌지만 40년 전에 누가 돈을 내고 낚시를 할 까요? 그 당시만해도 널려 있는 것이 무료 낚시터였다. 친구아버님이 유료낚시터의 선구자이시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D-day는 6월6일 현충일, 새벽 5시에 친구들과 노량진 전철역에서 만나서 수원역까지 전철로 이동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용주사 쪽으로 가기로 모든 계획을 수립하고 현충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멤버가 비원 금잉어파 5명이었는데 비밀이 새어나가 소문이 나면서 아이들이 하나 둘 지원을 하는데 거절을 못하는 제 성격상 승락을 해주다 보니 12명이나 되어 버렸다. 그 중엔 안 붙여주면 선생님께 말 한다고 협박하는 놈까지 있어서… 어디에든 이런 놈들은 꼭 있게 마련이다. 당시 우리반 남자아이들이 25명이었으니 절반이 현충일 작전에 가담하게 된 셈이다. 드디어 현충일이 되어 새벽에 1명의 낙오도 없이 노량진 역에 전부 집결하여 수원행 1호선 전철에 몸을 싣고 목적지로 향했다.

약2시간에 걸쳐 낚시터에 도착하니 친구 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곧이어 우리 일행은 즐거운 낚시를 하게되어 있었다. 유료 낚시터이므로, 고기가 쉽게 잡히는 것은 따논 당상이었다. 또한 비단잉어를 기르는 별도 양어장에서 비단 잉어를 잡아서 가져 가라고 하니 아이들은 잡아다가 연못에 기른다고 정신줄을 놓고 낚시를 하는데 어느덧 시간은 흘러 저녁 때가 되었다.

사실 당시 아이들과의 조행에 흥분하여 낚시가는 계획만 세웠지 돌아오는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늦어도 7시까지는 집에 도착하는 계획을 세워 놓았어야 했는데 그냥 노는 것에 정신이 팔린채 세부 계획을 세우지 못한 내 실수였다. 부랴부랴 아이들과 철수를 준비하는데 집에 연못이 있는 애들은 잡은 금잉어들을 가져 가야한다고 친구아버님께 산소포장을 부탁했다.

산소포장이란 큰 비닐에 물과 금잉어를 담아 산소를 주입하여 마무리를 하는데 6~7시간은 잉어가 죽지 않는다고 했다. 산소포장을 한다고 시간을 지체하다보니 7시가 훌쩍 넘었는데 집으로 가는동안 배 고프다며 친구아버님께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다보니 9시도 넘어 캄캄한 밤이 되어 버렸다. 당시에는 통행금지도 있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우리는 산소포장된 비단잉어를 챙겨서 자랑스럽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11시가 좀 넘었던 것 같은데 집에 돌아오니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8시 9시가 되어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된 부모님들이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단체로 없어진 것을 그때서야 아시게 되어 경찰서에 신고를 하였고, 사라진 아이들 집이며 학교가 몇시간 동안 완전 발칵 뒤집어졌던 것이다. 다음날 선생님께 야단 맞을 각오를 단단이하고 학교에 갔으나 예상을 뒤엎은 각오 이상의 응징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상황의 주범인 저는 당시에 학급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우리반 5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단에 불려나가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신 담임선생님의 귀싸대기 세례를 받아야만 했으며, 한번도 맞아 본 경험없는 선생님의 싸대기 세례는 저의 볼을 초토화시키며 결국 반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픈 것보다 제가 좋아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이런 수모를 당하는게 너무 창피하고 스타일이 완전 구겨진 제 모습에 견딜 수가 없는 뜨거운 분루는 벌겋게 부어오르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바닥에 뚝뚝 흘러 내리고 있었다. 저의 금잉어 소년파는 이날 이후 미래를 기약하며 해체를 선언하고 여름방학이 올 때까지 방과 후 반성문과 함께 교실 청소로 그 혹독한 댓가를 치르게 되었다.

“뿌린대로 거둔다” 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결국  저의 뺨은 고생을 했지만 6학년 전체에 소문이 나며 저의 인기는 졸업할 때까지 대적할 자 없이 하늘을 찔럿다는거 아니겠습니까?

 

To be continued ~

서울 : 조준희 기자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Confirm that you are not a bot - select a man with raised h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