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usation and Freedom, Holistic View 4<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Women Washing Clothes by a Stream by Daniel Ridgway Knight, 1898

<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여성의 몸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여성의 몸을 역사와 사회라는 시공간 속에서 자발적으로 그 존재방식을 보여주는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하였다. 즉 여성의 몸은 이제 더 이상 남성의 시각과 욕구에 의해서 재단되는 욕망적 대상이 아니고 재생산과 재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생명적 존재로서의 여성으로 하여금 생태적이고 평화적인 그리고 보다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투쟁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여성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페미니즘 운동을 비롯한 여러 실천적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되었다.

그런데 문화나 예술의 경우, 이러한 실천과 운동은 흔히 고급문화라 불리우는 전통적인 예술영역에서 보다 일상생활에서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중문화에서 좀 더 구체화되었다. 이것은 고전문화에 비해서 시대 반영적 성격이 강한, 다시 말해서 당대적인(contemporary) 이슈에 보다 민감한 대중문화의 속성상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대중 매체에서 구현된 변화된 이미지는 대체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순종적이고 예속적인 모성애로부터 전투적 모성애에로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신체에 대한 여성들의 주체적인 결정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확연히 구분된다기 보다는 서로 밀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아홉 달 동안 자신의 몸 안에 있다가 – 이 부분이 남성들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모성애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 분리해 나간 또 다른 자신이 자식이기에 자신의 분신인 자식의 몸과 영혼에 대항 어머니의 정서와 태도는 아버지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다. 아버지의 경우, 자식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그리고 탄생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신체와 구분되는 객관적인 대상으로 존재하게 되고 이러한 객관적 관계는 사회적 질서가 아버지의 이름(姓과 家門)으로 자식의 존재 의미를 확인한다는 측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혹은 가부장적 질서)는 ‘그의 이름’으로 원초적인 감정 대신, 자신의 사회적 지위, 가문과 혈통에 부합되는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객관적인 위치를 자식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이러한 사회적 조건은 부차적이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한 생명체의 생산 혹은 출산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은 잉태과정을 어머니는 생명 자체의 존재성과 숭고함의 출발로 받아들이기에 다른 객관적인 조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사회적 질서가 요구하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수직적 관계와, 자신의 분신으로서의 결합된 어머니의 자식 간의 수평적 관계는 애초부터 갈등적 관계를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린다 해밀턴 주연의 <터미네이터>와 시고니 위버 주연의 <에이리언>시리즈가 이러한 주제를 잘 말해준다. 특히 <에이리언>시리즈가 앞에서 말한 갈등과 역설을 잘 보여주는데 여기에서 괴물을 몸에 잉태할 수 밖에 없음에도 그 괴물을 또 소멸시켜야 하는 리플리은 여성 신체의 역설적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리하여 극단적인 남성적 질서를 상징하는 우주 감옥에서 죄수(남성)들의 생존을 위해서 리플리가 괴물을 잉태한 채 용광로로 뛰어드는 3편의 마지막 장면은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질문 – 도대체 누구가 여성의 몸의 주인이가? 남성들은 무슨 권리로 여성의 몸을 담보로 자신들의 안위를 추구하는가? – 을 가능하게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여성의 신체에 대한 주체적인 결정권은 사회적 차원에서 전통적 의미로서의 결혼의 거부 혹은 낙태의 권리 등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중요한 주제는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시선의 주체를 남성에게 두지 말자는 것이다. 남성들의 시선에 의한 존재 의미와 미의 규정은 여성의 삶 자체를 끊임없는 예속적 상황에 머무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이런 관점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영상물이 마돈나 주연의 <진실 그리고 대담>이다.

마돈나 그룹의 세계 순회공연을 담은 다큐멘타리인 이 영화에서도 마돈나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모성적 이미지로 치장한다. 단원들은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그녀 역시도 그들을 ‘내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자식처럼 대해주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그룹 특유의 친화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곧 마돈나는 성의 해방을 위한 전사로 변신한다. 그리고 영화 중간에 자주 노출되는 기존 가치들과의 계속되는 갈등과 마찰 – 그녀의 공연에 대한 지역 언론의 부정적 묘사와 교황청과의 지속적인 갈등 – 은 그녀에게 있어서 이러한 해방을 위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투쟁성은 그녀로 하여금 실크 햇과 가죽끈으로 만들어진 검은 의상을 입고 긴 채찍을 들고 무대 위에 나타나게 한다. 반면에 남성 무용수들은 그들의 부드러운 몸매와 유연한 몸놀림, 그들 가슴에 매단 과장된 브래지어를 통해서 그녀의 남성적 이미지를 강조해 준다.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에 무용수와 함께 경건하게 기도하던 그녀와 무리들이 갑자기 전치된 성역할과 함께 보여주는 무대 위에서의 외설적인 행위를 충격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이처럼 이질적이고도 혼란스러운 상황의 병치와 그녀의 양면적 이미지는 여성의 몸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구조를 깨트리려는 마돈나의 의도적인 설정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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