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문화 산책~~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 <이강화 교수>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나, 이 사진을 보면서 우린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화도 화면을 통해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2월 5일 ( 현지 시간)  최근 사회적인 이슈를 부각시키는 영화의 출현은 영화란 장르 매체를 통해 독자들이 막연히 알고 있었던 사회, 역사적인 사실이나 이벤트를 문화와 접목 시키므로서 부정적이었던 과거와 현재의 암울한 상태를 독자의 사회 참여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과  물질 지상주의와 병든 사회에서 살아내야 하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치유할 계기와 희망을 준다. 위안부 문제와 독재정부하에서 신음하고 고통받았던 우리보다 앞선 세대들의 삶을 비판, 이해하는데 영화문화는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문화를 읽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영화의 참 모습을 읽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먼저 문화를 읽는다고 말하는데, 조금은 생소한 문화 읽기에 대해 알아보자.

1. 대중문화로서의 영화  

1. 문화 읽기란 무엇인가

문화읽기란 흔히 문화연구라고 불리우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문화라는 매체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정치적, 경제적 연결고리를 밝혀낼 수 있는 상징구도의 독해적 분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화에 대한 이러한 분석이 어떻게 가능한가?  앞장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문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의가 가능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문화는 자연적 상태를 벗어난 인간의 존재 방식이기에 물질이 아니라 의식이며 이러한 의식이 표상화된 의미와 상징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새로운 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류를 오랫동안 지배하였던 근대적 물리적, 역학적 사고 방식은 앞으로 의미와 상징성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적 사유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러한 시대의 징후를 읽기 위해 텍스트로 문화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물론 단지 시대의 징후를 읽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읽음으로써 문화를 비판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문화라는 단어가 이른바 고급문화에 한정되어 사용되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구분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이러한 벽 허물기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더구나 문화읽기를 통해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찰은 물론이거니와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려면, 다시 말해서 한 시대의 권력구조와 지배형태의 본질적 모습을 읽어내려면 추상적인 순수문화보다는 대중문화가 훨씬 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대중문화 자체를 더 이상 ‘주변부 문화’, ‘하부문화’의 하나로 이해하기를 거부한다는 인식론적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생산되고 향유되고 그냥 소비되어 버리는 대중문화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적극적이고도 실천적으로 바꾸어보자는 것이며, 이러한 접근방식은 바로 대중문화를 통해서 후기산업사회에서의 은폐된 실체와 그 실체 내에서 자본과 권력이 결합된 지배구조를,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문화양식을 ‘상품’으로 균등화시키는 힘의 실체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사실 대중문화는 이 시대 문화의 중심일 뿐 아니라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대중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대중문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통념을 버려야 하며, 과거의 선입견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대학의 강의실에서 대중가요와 연속극 드라마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영상매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학제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대중문화야 말로 가장 정확하게 일상의 삶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읽기란 대중문화의 다양한 장르를 통해서 이 같은 삶의 형태를 관찰하고, 비판함으로써 현대사회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창의적인 독해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읽기란 바로 창의적인 인간을 위한 총체적 삶 읽기라 하겠다.

문화읽기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해 가는 우리들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는 진지한 자세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이다. 영국의 문화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리처드 호가트의 문화에 대한 정의는 이런 의미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호가트에 의하면, 문화란 어느 특정한 사회의 총체적인 삶의 방식, 신념, 태도 그리고 특징을 의미하며, 이러한 것들은 그 사회의 모든 구조, 의식, 몸짓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정의된 예술형태로 표출된다. 따라서 문화읽기를 통하여 시대의 징후를 읽고 대중이 추구하려는 가치를 읽어낼 수 있다면, 문화읽기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데도 유용하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다양한 현상과 징후를 읽어냄으로써 미래에 대한 준비도 좀더 확실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읽기는 단순히 주변에 있는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의 새로운 문화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읽기’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언어로 된 기호체계에 적용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런데 기호학이라는 학문은 그림, 사진, TV화면과 같은 비언어적 기호체계까지도 언어적 기호체계로 환원시키면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가령 특정 상품판매를 위한 팜플렛에 여배우가 매우 선정적 옷차림으로 서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고 하자. 그 사진의 일차적인 의미는 그 여배우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진은 단순히 누구누구라는 여배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사진에서 우리는 그 옷차림이 상징하는 의미를 읽어 낼 수도 있고 나아가서는 이러한 의미가 유포시키는 이데올로기를 발견해낼 수도 있다. 즉 표지사진인 기표는 1차적 기의를 함축하며 이 1차적 기의는 또 다른 기표로서 2 차적 기의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읽기’는 기호학적 접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비언어 체계까지도 언어 체계인 기표와 기의로 분석하고 그 기표에서 함축적인 기의들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는 영상매체 중의 하나가 텔레비젼인데 거기에 나오는 광고는 우리의 무위식을 지배하면서 기호에 대한 물신숭배를 충동한다. 소비활동을 위한 의욕을 기호 작용을 통해서 강력하게 촉진시키고 조장하는 것이 바로 광고이다. 그러므로 광고영상도 하나의 언어로서 ‘읽기’의 대상이 된다. 텔레비전 화면의 기표 속에 감추어진 기의들을 읽어내려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는 비단 텔레비전 뿐만 아니라 영화, 잡지, 신문, 심지어는 만화 등 모든 대중매체에도 동일하게 요구된다. 이러한 다양한 매체를 대상으로 하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읽어내고 거기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토론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볼 때 이들 매체 가운데서 지난 세기말에 탄생하였고 금세기에 놀라운 진보를 보여준 영화는 현대사회 독해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텍스트로서의 받아들여지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는 처음부터 예술성이나 미학적 측면과는 상관없이 그 장르 특유의 대중적 속성으로 인하여 현대사회의 독해를 위한 텍스트로서 풍부한 상징과 의미를, 즉 기의와 기표를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대중매체로서의 영화

이렇게 볼 때 지난 세기말에 탄생하였고 금세기에 가장 놀라운 진보를 보여준 영화가 이러한 텍스트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양식으로 평가받게 됨은 지극히 당연하다. 왜냐하면 영상매체는 다른 어떠한 매체보다도 독해를 위한 텍스트로서의 풍부한 상징과 코드를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1895년 12월 28일 파리 그랑카페의 인디안 살롱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그들이 제작한 ‘기차가 역에 도착하는 것’을 담은 몇초 짜리 시네마토그라프를 유료관객에게 상연한 이래 일세기의 역사를 가진 영화는 소수의 뛰어난 작가들에 의한 표현기술의 진보와 몇몇 선각자들의 예언적 고찰등에 힘입어 금세기 초인 20년대에 이르러 이미 이른바 제 7의 예술로서의 독자적인 표현양식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정과 관계없이 사실 이 새로운 매체는 그 예술성의 부재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처음부터 영화는 전통적 의미로서의 도덕적 그리고 미학적 기준에 전혀 부합되지 못했고, 예술장르로서의 영화에 대한 불신은 다수의 양식있는 지식인들로 하여금 이 매체의 최소한의 존재의미까지도 의심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같은 이차원의 표현양식인 회화에 비해서, 같은 서술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나 연극에 비해서, 영화는 훨씬 열등한 표현양식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예술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일차적 목적이 아니라 부차적 산물에 불과하며, 영화는 오직 그 오락적 기능에 충실할 때 그 존재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영화의 이러한 특성은 그 역사적 기원을 살펴봄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금세기에 들어서서 급속하게 진행된 산업화과정은 다수의 노동자들을 도시로 이주시켰고, 이들 노동자들에게 영화는 다른 어떠한 예술장르나 대중매체보다도 친근한 매체가 되었다. 이것은 긴 역사를 통해서 이미 그 양식이나 내용 모두가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어느 정도의 문화적 배경이나 지적 이해도를 요구하는 전통적인 예술양식과는 달리, 이제 갓 출발한 이 ‘오락물’의 감상에는 어떠한 부담도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초기에는 노동자계층이 대도시 관객의 다수를 차지하였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인 교육계층으로 통합된 시민계급과 노동자계층이 이 새로운 대중매체의 수용자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주로 보드빌 하우스에서 여러 가지 쇼가 진행되는 중간에 눈요기감으로 상영되었던 영화의 내용은 주로 이들 계층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연극이나 오페라의 복사물이나 영화기술을 이용한 트릭으로 가득찬 기괴한 오락물 등이었다. 영화가 이런 상황에서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대중매체로서의 영화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근본적으로 규정하였다.

우선 영화는 도시화, 산업화 그리고 이 시대부터 보편화된 대중매체의 보급과 더불어 대중사회의 등장을 상징한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영화는 증가하는 도시인구, 특히 노동자 계층을 위한 이상적인 오락매체였다. 따라서 초기에는 노동자들의 주거지역에 영화관이 우선으로 들어섰으며, 저소득의 노동자들은 값싼 영화를 쉽게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구대륙으로부터 대량 유입된 이민들에게 영어의 완벽한 이해를 필요하지 않은 초기의 무성영화는 그들이 속한 새로운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친근한 텍스트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었을 때 영화는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동질성을 고무하는 매체로서 기능하였고, 이러한 매체를 통한 사회적 결합은 바로 삶의 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변형시켰다.

그러므로 영화는 가능한 광범위한 소비자들에 의해서 수용될 수 있는 보편적 소재와 내용을 제공하도록 요구받는다. 따라서 주로 친숙한 소재와 일체감을 가질 수 있는 등장인물, 그리고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라는 도식적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만일 영화가 당시의 관습에서 너무 벗어난다면 관객들은 그 영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너무 어렵거나 인기없는 주제를 다루는 경우에도 관객들은 외면할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가 친숙하고 오래된 플롯에다가 가장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예술적 장르로서의 영화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는 학문적 대상으로서 영화에 대한 연구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60, 7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독특한 연구방법에 의해서 특정대상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특별한 목적과 결합될 때 학문의 정체성이 가능한데, 오랫동안 오락적 매체로서만 이해된 영화의 경우에는 자체의 고유한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기존하는 방법과 새로운 방법의 결합을 통해서만 영화라는 대상에의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그 메시지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학문적(multidisciplinary)인 그리고 상호학문적(interdisciplinary)인 관점 – 구조주의 기호학,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등 – 이 요구되었다. 접근방법의 이러한 다양성, 즉 상이한 영역에서의 이러한 비체계적인 접근은 필연적으로 충돌과 갈등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영화가 그 학문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처럼 영화를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한 양상으로만 이해하려고 할 경우, 영화의 고유성과 그 호소력은 미학적 측면보다는, 대량으로 생산, 유통되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측면에서만 계속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이러한 고정된 관점은 오히려 영상매체의 대중성, 혹은 통속성을 순기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이미 출발 당시부터 대중적 흥행물이었고 오락물이었다는 영화의 본질적 규정들은, 70년대 이후 영화매체에 대한 관심이 영화 그 자체의 예술성보다는 후기 산업사회의 다양한 징후의 분석을 위한 코드라는 점에 집중 되었을때, 가치평가를 떠난 사실분석의 근거로 제시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를 대량소비사회에서의 생산, 유통, 소비라는 생산양식 속에서 재생산된 상품의 하나로, 동시에 다른 어떠한 장르보다도 시대적 징후를 풍부하게 함의하고 있는 매체로 이해하였을때 – 물론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혹은 정보기호학적 접근은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대중문화 전체에 해당되는 방법이지만, – 후기산업사회에서의 자본주의 실체와 그 구조를 밝히려 할 때 영상매체가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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