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13<조준희 기자>

그동안 필자의 평생 동안의 조행 중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풀어 나갔다. 그런데 소소한 이야기까지 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이제 물고기들의 대표적인 습성을 나열해 볼까 한다. 한 마디로 정말 물고기에 무슨 매력이 있어서 수 십년간 조선이 되어 전국을 떠 돌아야 했는 지에 대해 이제 그 이야기 보따리를 풀 때가 된듯하다.

물에 산다고 다 같은 물고기가 아니듯 습성은 어종마다 다르고 같은 어종도 환경에 따라, 크기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여러분이 만약 물고기로 비유된다면, 어떤 어종에 해당되는지 한번 생각하고 찾아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어종별 습성과 지적능력? (1편)

피라미 : 한마디로 천방지축이죠. 생긴 것은 은빛 비늘을 덮어쓰고 날씬하고 빠른 몸놀림을 보이나 성질이 급하여 참을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떼로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다.
사람들도 몰려다니며 피라미 같은 습성을 갖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IQ: 3

토종붕어 : 정통 대한민국 조사들의 대상어.
초짜 어스레기와 조선을 빼고서는 붕어 외엔 전부 잡고기로 친다. 초짜 어스레긴 어종 불문 낚아서 먹으면 좋고 조선은 어격에 대한 존중으로 어종 불문, 크기 불문 평등주의로 임한다.

붕어는 토종, 일본산 떡붕어, 중국산 짜장붕어 크게 세 가지로 나뉘며 월남 붕어인 블루길은 붕어 축에도 끼지 못한다. 각 나라별 붕어는 정말 민족성하고 습성이 같다고보면 틀리지 않는다.

일본산 ‘떡붕어’는 흰색을 주로 띠며 힘도 없고 약하고 멍청하다. 찌의 움직임에 깐족거리며 아주 지저분하여 토종 조사들은 대상어에서 제외할 정도다.
IQ:5

중국산 짜장붕어는 약 20여 년 전 붕어 붐이 일어서 국내의 토종붕어 가격이 치솟자 모양이 비슷한 중국산 붕어를 수입하여 들어오게 되었는데 중국산이라 ‘짜장붕어’라 일컫는다. 입이 작고 의심도 많고 색깔은 짜장면 색깔을 띠는데 들어온 지 꽤 되어 지금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지금은 구분을 거의 하지 않는다. 덩치에 비해 눈이 작고 입이 작으며 검정색을 띠어 짜장붕어라고 불린다.
IQ : 6

토종붕어는 눈이 크고 비늘은 누런 황금빛 갑옷을 입은 듯하여 기품이 있다. 성품은 점잖고 여유가 있으며, 물 속의 선비라고 보면 된다.
그 성품 때문에 찌 올림이 아주 천천히 느리게 올라오는데 많은 조사들이 찌 올림 한번을 보고자 밤을 홀딱 새운다. 조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우리의 토종붕어다. 현재 공식적인 최대어는 57센티미터이나 비공식은 약 62센티미터 정도 되며, 붕어계의 최홍만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IQ : 12

잉어 : 붕어와 비슷한 습성이나 수염이 달려있어 중국에서는 붕어보다 더 고급 어종으로 여기지만, 우리나라 조사들에겐 낚싯대만 엉켜 버리는 귀찮은 존재다.
IQ : 5

얼룩동사리 (일명 구구리) : 육식 어종이며 바다의 우럭하고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전투복은 끝내주는 걸 입고 있다. 낚시 대상어는 아니고 매운탕 대상어다. 빠가사리, 꺽지, 쏘가리 등 매운탕의 계보를 잇는 매운탕계의 강자라고 불린다.
IQ : 1

동자개(일명 빠가사리) : 육식 어종이고 쏘가리처럼 침이 있어 찔리면 피가 나고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잡히면 빠가빠가 하는 소리를 내서 일본 사람들이 빠가사리라고 이름 붙였으나 우리말 이름 ‘동자개’라고 불러주어야 하는 사랑스러운 토종 물고기이다. 예전엔 천대를 받았으나 요즘은 매운탕용 고급 어종 대우를 받는다.
IQ : 1

꺽지 : 부성애 강한 꺽지는 제가 특별이 아끼는 물고기이다.

꺽지는 다음편에 소개할 예정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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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10<조준희 기자>

인생의 조우 내 동생 (마늘 밭의 추억 상편)

충청북도 진천의 “초평저수지” 는 봄에는 상류 수초 밭에서 좌대를 옮겨가며 큰 붕어들을 잡지만 모내기 철이 오면 물을 빼내기 때문에 수심이 얕아져 포인트가 상류에서 중하류로 포인트를 옮기게 된다.

잊지 못할 그날은 제 친구가 동행하기로 해서 회사의 봉고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깜깜한 새벽부터 내달려 어둑어둑하지만 여명이 밝아오는 저수지 중류 지역에 도착하게 된다.

운전은 동생이 하고, 제 친구는 조수석, 필자는 뒷자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면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도착하여 거의 다 왔나 보다하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와당탕하며 차가 기울고 어디론가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다가 깜짝 놀란 필자는 무슨 일인가 하고 창밖을 보니 차 한대만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동생이 실수를 하여 그만 밭으로 떨어져버린것이다.

문제는  도로와 밭의 높이가 1미터가량 되는데 도로로 올라가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우리는 차를 타고 밭 한 바퀴를 다 돌아보지만 길이 없었다.

날은 밝아 오는데 아무리 왔다갔다 해도 올라가는 길은 없고 답답한 노릇이었다.
저 녀석을 두드려 팬다고 차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니 하며, 속으로 참자, 참아보자고 되 뇌였다.
참을 인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고민 끝에 방법을 찾았다. 다리를 만들어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마침 주변에 마침 긴 각목들이 있었다. 긴 각목을 포개서 도로까지 연결하여 타고 올라
가기로 생각을 굳혔다.

임시 각목 다리는 설치했는데 도로의 반대편은 논 바닥이라 올라가서 그쪽으로 또 떨어지면 그땐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고 이쪽 밭보다 훨씬 낮아 차가 떨어지면 운전자의 부상을 당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 미루다가 결자해지, 결국은 떨어트린 놈이 올려놓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생이 운전석에 올라 시도를 했다.
참고로 동생은 어릴 적부터 겁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두드려 맞을 일이나 뒷감당이 안 되는 사고를 절대 치지 않았던 아이다.
동생은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있다! 성향이고, 난 오늘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내일은 없다! 라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었다.

시동을 걸고 반쯤 올라가더니 다시 주르륵 내려 오기를 수차례 하더니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다.
동생 운전하는데 수다 떨며 집중력 흐트려 놓은 두 번째 공범인 제 친구를 확 쳐다보니 눈길을 피하며 자기가 해 본다며 운전석에 올랐다.

그 친구 역시 중간쯤 올라가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다시 내려왔다.
차가 공중에 떠서 공중각목 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무섭기도 했다.
올라간들 길이 너무 좁아 잘못하면 반대쪽에 다시 빠질 상황이고, 내려오면 물론 다시 또 긴장해서 올려야 한다는 어쩌면 시지프스의 바위를 생각하게 하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결국 필자가 운전대를 잡았다. 기회는 한 번, 단 한번에 길 위에 정확히 올려놓아야 한다.
경험적으로 봐서 이런 위험한 상황은 두 번이란 있을 수 없다.
첫 번째 실패하면 두려움 때문에 계속 실패하게 되어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한 번에 도전해서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동을 걸고 작두 대신 각목을 타는데 중간쯤가니 무섭긴 무서웠다.
눈 질끈 감고 엑셀을 밟고 쭈욱 올라갔는데 올라가자마자 시야는 넓어지며 논두렁이 보였다.
순간에 핸들을 돌려 아슬아슬하게 반대로 안 떨어지고 다시 도로 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동생과 친구는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아마 그 시점이  동생이 필자를 제일 존경해 마지않는 시선을 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든다.

필자는 속으로 무지 쫄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운전대를 넘겨주며 거만하게 다시 뒷자리로 되 돌아왔다. 1시간 정도를 밭에서 헤매느라 낚시 시작은 늦었으나 우리는 낚시에 열중하였다.

점심때가 되어 사고를 친 두 원수들이 배가 고프다고 난리였고, 필자는 동네에 있는 밥집에 밥을 주문하러 갔다. 식당 앞에 도착하여 백반 세 개를 시키고 돌아서는데 어떤 청년 둘이 필자에게 물었다.

“저기, 아저씨, 자동차가 밭에 빠지셨어요?”

“그런데요. 왜 그러십니까?”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은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지겠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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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8<조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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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행기가 아닌 제가 조행을 다니며 느낀 물속 세상의 이치를 현실과 비교하며 한번 들여다 보려고 한다. 외래 어종과 토종 어종의 전쟁은 1970년대 초반 나라 경제가 배고프고 어려운 시기에 육영수여사께서 식용으로 하려고 배스와 블루길을 대량으로 양식하기위해 수입 시작되었다.

그러나 식용으로서의 가치가 없자 당시 생태계 교란이란 단어조차도 생소한 양식업자들은 가두리를 철수하고 우리나라 수계에 이 물고기들을 방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저수지 및 강계에 적응한 이들 어종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개가 주인의 성품을 닮듯이 물고기들도 살고 있는 나라의 국민성과 성품이 비슷해진다고 볼 수 있다.

미국서 들어 온 ‘배스’는 육식 어종이라 토종 어류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대단한 식욕을 가지고 있으며, 베트남이 원산지인 월남붕어 ‘블루길’은 베트콩과 같은 기질로 떼로 다니며 토종 어류의 알을 싹쓸이 하는 놈들입니다. 일단 저수지에 이 녀석들이 유입되는 순간 물속 생태계는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이 시작되면 이놈들의 무차별 싹쓸이 전법으로 3년 안에 저수지는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은 저수지처럼 초토화가 되고 만다.

그 사이 살아 남은 붕어들은 크기를 키우고 체고를 높여서 배스가 함부러 달려들지 못하게 하며 배스와 블루길의 활동시간인 낮을 피해 밤으로 먹이 활동시간도 바꾸게 된다. 즉 현장 적응을 하며 체질 개선과 힘을 키우며 반격 준비를 한다.  예를들면, 우리 나라 강이나 저수지에는 순한 붕어같은 애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저수지에는 ‘가물치’라는 황제가 살고 있으며, 강계에는 ‘쏘가리’라는 황태자가 산다. 다른 영역을 가진 수중 생태계의 최상위 실력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생태계를 무차별 교란시킨 벌로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진 외래 어종들은 그때부터 두 어종 간의 치열한 전쟁을 벌이며 상대의 치어나 알을 잡아먹으며 그들만의 리그전을 치르게 된다.

토종 붕어와 가물치는 연합군이 되어 두 어종의 전쟁을 숨어서 지켜보며 지속적인 삶을 유지한다. 배스든 블루길이든 누가 승자로 남든 “끝나기 전에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라는 일념으로 약 10년 정도의 인고의 세월 동안 힘과 덩치를 키우며 40센티 이상 자란다.

다음 해 봄부터 토종 연합군은 10년 전 외래 어종들에게 배운 무차별 싹쓰리 전법으로 승리한 어종의 치어와 알을 입속으로 다 쓸어 담으며 외래 어종과의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마지막 전쟁까지 시간이 약 10년 정도 걸리며, 맨 아래 단계인 새우 등 작은 생물들이 살아나며 다시 생태계가 복원되는 시간은 다시 10년 정도 걸린다.

어떤 저수지는 외래 어종도 적절한 개체 수 유지로 토착화되어 우리 수중 생태계의 일환이 된 경우도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년가량이나 소요된다. 우리가 삶이란 전투를 하는 동안에도 수중에서도 치열한 전투와 전쟁은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저력도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국기업들이 자본과 기술을 앞세워 IMF란 상황을 만들어 무차별 폭격을 가해 많은 기업들이 외국 자본 손에 들어가 있고 외국 수입 농축산물들 또한 싼값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 농어민들을 어렵게 만들어도 결국은 토종 물고기들처럼 참고 힘을 기르며 시간이 흘러 마지막 일전을 벌인다면 다시 진정한 글로벌 강자로서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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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 수요수필 7 <조준희 기자>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의 이야기 7

사고치던 어린시절 이야기를 뒤로하고 나의 스승, 나의 조선, 나의 아버지 (어부 편) 나의 낚시 인생에서는 당연히 빠질 수 없는 한 분이시다. 바른 생활의 사나이 제 동생보다는 이미 바르지 않은 생활의 아들이 되어버려서 더 이상 나빠질 상황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의 눈총 부담이 없는 저와 낚시 동행을 훨씬 많이 하셨다.

아버지와 낚시 정보를 입수하여 함께 낚시를 떠나 현장에 도착하면 철저하게 각자의 방법으로 낚시를 시작하는데 낚시 방법에 대한 전수가 끝난 후에는 절대로 간섭하시는 법이 없으셨다. 부자간이라 며 나의 스승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낚시꾼이 되어 버린 아들을 낚시터에서 만큼은 아버지와 동등한 조우이자 낚시꾼으로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아버지의 유물로 보유하고 있는 내가 가장 아끼는 낚싯대들은 약 30년 가량 되었다. 당시에는 가장 비쌌던 낚싯대인데 비싸고 좋은 소재의 신제품들이 많이 나온 지금도 조사들 사이에선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는다. 이 낚싯대가 당시 한 대에 약 30만 원 가량 했었는데 짜장면이 7백 원 가량 할 때이니 지금 환산하면 100만원도 훌쩍 넘는 상당히 비싼 낚싯대이다. 이 낚싯대를 구입하게된 스토리는 아버지의 길고 긴 60년의 낚시 역사 속에서 당신 스스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역사인지라 적어도 스무번은 더 들었던 기억이 난다.

1980년도 당시엔 향어라는 이스라엘 잉어가 국내에 유입되어 붕어보다는 맛도 좋고 사이즈가 큰 향어 낚시가 크게 인기를 끌어서 전문 유료 낚시터가 많이 생겼고 이때부터 유료낚시터의 전성기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향어는 물돼지라고 불릴만큼 먹성이 좋아 가두리에서 풀어 놓자마자 거의 2시간안에 잡혀 올라오기에 낚시터 사장님들은 입장한 조사들의 머리 수에 맞추어 1인당 2, 3마리 정도의 향어를 풀어 놓는다. 

나는 유료낚시터는 자연미가 없어 안 좋아하는데 아버지는 전국의 낚시터를 거의 다 섭렵하셨던지라 사실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연세도 있고 사람을 좋아하는 관계로 낚시터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과 친분도 돈독하여 유료낚시터를 많이 다니시게 되었다.

어느날, 아버님 지인과 양평에 있는 향어 낚시터로 조행을 떠나셨는데 이 낚시터에서 향어 대박을 터트리시며 “어부”로 탄생하셨다. 보통 1~2마리 잡으면 성공인데 가장 짧은 낚싯대 한 대로 수백마리를 낚아내는 상황이 벌어져서 낚시터 사장을 안절부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마침 그때 지나가던 동네 아낙이 광경을 보고 아버지께 향어를 한 두마리 얻어가게 되는데 동네 아낙은 동네 친구들에게 향어 얻어왔다고 자랑을 했던 모양이다. 동네 아낙들이 아버지의 향어와 물물교환용 부침개며 막걸리, 과일 등을 가지고 와선 계속 낚아 올리는 향어를 얻어가기 위해서 떼로 몰려 왔다고 한다. 아버지 주변으로 동네 아낙들의 응원과 함께 막걸리 잔치는 벌어졌고 끝도 없이 잡혀 올라오는 향어의 향연에 너나 없이 즐거운데 딱 한 사람 죽을 맛인 사람, 그는  바로 낚시터 사장이었다.

동네 아낙들에게 자신의 피 같은 향어를 퍼주고 있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사장은 결국 아버지께 사정을 하게된다. “사장님 더 이상 나눠 주지 마시고 제게 다시 팔아주십시요. 제가 다시 사겠습니다.” 당시 향어 한마리가 도매가격이 약 8천원 정도였고 소매가격은 1만5천원에서 2만원 가량하는 비싼 어종이었다.

어부도 아니고 잡은 향어를 돈 받고 판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신 아버지는 거절을 하시고 남은 향어 약 100마리 이상을 다시 낚시터 사장에게 돌려줬는데 낚시터 사장이 약 50만원 가량을 아버지의 주머니에 넣어 드렸다고 한다. 그 돈이 현재 내가 보유하고 있는 아버지의 낚싯대 두대, 그때 그것을 사셨다고 한다.

전설의 향어 스토리를 만든 짪은 낚싯대도 고스란히 보관하여 아들에게 물려줬다. 아들에겐 이 이야기는 아직 안 해줬는데도 어부의 손자라 어쩔 수 없는지 이 녀석은 할아버지의 짧은 낚싯대를 가장 좋아한다. 그 후로는 낚시터 사장과 친해지셔서 그 낚시터는 평생 무료로 이용하고 만약 향어가 안 잡혀서 꽝치는 날에는 낚시터 사장님이 손맛을 보시라고 배에 향어를 싣고 나가서 아버지 낚싯대의 찌 앞에 향어를 떨어트려 주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함께 갔던 아버지 동생인 삼촌의 증언으로 사실로 확인 되었으며 두대의 비싼 낚싯대가 전리품으로 인증을 받았다. 나는 아직  내 아버지처럼  어부는 못해봤다. 아버지는 그때 생선을 낚은 것이 아닌 어쩌면 세월, 내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이 시간들을 낚싯대에 건져올리셨는지도 모르겠다.

 

To be continued ~

서울 : 조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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