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14<조준희 기자>

 

사진은 조준희 기자님의 방에서

어종별 습성 (2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꺽지 : 토종 물고기 중에 부성애가 강한 고기들이 네 종류가 있는데 어름치, 가시고기, 얼룩동사리, 꺽지다. 그 중 꺽지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사는 대한민국 고유어종이다.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다. 제발 매운탕감으로만 생각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름의 유래는 의적 ‘임꺽정’이 임진강에 몸을 던진 후 바위 속에 숨어 물고기가 되었는데 꺽정이라고 불리다가 꺽정이, 꺽쩌구 등 여러가지 방언이 있으나 꺽지로 불린다는 전설이있다.

아빠 꺽지가 알 자리를 준비하고 기다리면 암컷은 자기 임무인 알을 바위에만 붙이고 자기 임무 끝났다고 나 몰라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기에서 왜 수컷에게만 아빠란 호칭을 부여했냐고 하면 암컷은 엄마란 호칭이 불릴 시간도 없이 사라지는 매정함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라 부여하지 않았다.

산란을 하여 돌이나 바위에 알이 붙으면 아빠 꺽지는 부화하고 새끼들이 클 때까지 엄청나게 바빠진다.
꺽지는 수중계의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이라 그들에게 있어서 강적은 역시, 사람이 가장 무섭다. 까칠한 전투복 탓에 덩치가 큰 쏘가리, 메기 등의 먹이 대상도 아니다.  꺽지 알의 부화기간인 2주 동안 많은 일이 벌어지는데 그중 하나가 ‘탁란’이다.

‘탁란이란?’ 꺽지의 부성애를 알고 있는 돌고기들이 꺽지나 얼룩동사리가 산란을 한 둥지에 기를 쓰고 알을 낳고 도망을 간다. 돌고기의 부화 기간은 약10~12일 정도이기에 꺽지 산란장에 산란만 하면 꺽지가 자기 알을 지켜주고 꺽지 새끼들이 부화하기 전에 돌고기 새끼들은 부화해서 먼저 산란장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알을 지켜주는 대신 먼저 부화된 새끼의 일부는 알 지키느라 사냥을 못 나간 아빠 꺽지의 밥이 되어 주기도 하는 공생의 인과관계가 아닌가 보는데 물고기 세상에서도 인과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자연의 진리인 ‘인과응보’의 법칙은 무섭기만 하다.

돌고기 쫓으랴 산란장에 찾아오는 다른 암컷 꺽지를 쫓으랴 (꺽지는 1부1처제를 지향하기 때문에 한번 방정을 한 후에는 다른 암컷은 자기가 지키는 알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쉬지 않고 계속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알에게 산소를 공급해주느라 2주간을 먹지 않고 꼬박 알 주위에서 알을 지킨다.

2주후 부화가 되면 자신의 굴 안에서 새끼들이 정상적으로 자랄 때까지 새끼들을 보호한다. 이때가 꺽지들이 가장 사나운 시기다. 자기 새끼들이 잡아먹힐까봐 신경을 바짝 쓰며 긴장하고 있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약 45일 동안의 육아기를 거치는 동안 먹이 활동을 못한 아빠 꺽지는 기력이 소진되어 일정 기간 먹이 공급의 악순환을 겪으며 기력을 회복한 녀석만 살아남게 되는데 눈물 어린 아버지의 사랑을 보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 DNA를  장착한 강계의 미들급 참피온다운 멋진 사내들이다.

IQ : 5

어름치 : 어름치는 필자왈,  천연기념물이므로 바로 놓아 주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표범 무늬의 레오파드 의상을 차려입은 녀석이 어름치다.

5, 6년 전 아들과 인제의 내린천으로 계류 낚시를 갔었는데 잡히는 족족 어름치여서 그때 어름치 실물은 신물나게 보았는데 실제로 어름치 실물을 본 사람들은 조사들 중에서도 많지 않다. 아들과 함께 어름치를 낚은 날 이후, 필자 역시 다시는 천연기념물을 볼 수 없었습니다.

IQ : 6

얼룩 동사리, 이번 여름에 인제쪽의 내린천, 방태천이나 미산계곡으로 계류 낚시를 떠나려 하는데 만나게 될지는 용왕님의 뜻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좋아하는 꺽지, 얼룩동사리, 어름치,  세 사내들은 부정이 강한 사내들, 때로는 인간보다도 나은 정도(正道)를 아는 세 사내(일부일처제? )들이라 서로 끌리는 데가 있었나 보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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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13<조준희 기자>

그동안 필자의 평생 동안의 조행 중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풀어 나갔다. 그런데 소소한 이야기까지 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이제 물고기들의 대표적인 습성을 나열해 볼까 한다. 한 마디로 정말 물고기에 무슨 매력이 있어서 수 십년간 조선이 되어 전국을 떠 돌아야 했는 지에 대해 이제 그 이야기 보따리를 풀 때가 된듯하다.

물에 산다고 다 같은 물고기가 아니듯 습성은 어종마다 다르고 같은 어종도 환경에 따라, 크기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여러분이 만약 물고기로 비유된다면, 어떤 어종에 해당되는지 한번 생각하고 찾아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어종별 습성과 지적능력? (1편)

피라미 : 한마디로 천방지축이죠. 생긴 것은 은빛 비늘을 덮어쓰고 날씬하고 빠른 몸놀림을 보이나 성질이 급하여 참을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떼로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다.
사람들도 몰려다니며 피라미 같은 습성을 갖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IQ: 3

토종붕어 : 정통 대한민국 조사들의 대상어.
초짜 어스레기와 조선을 빼고서는 붕어 외엔 전부 잡고기로 친다. 초짜 어스레긴 어종 불문 낚아서 먹으면 좋고 조선은 어격에 대한 존중으로 어종 불문, 크기 불문 평등주의로 임한다.

붕어는 토종, 일본산 떡붕어, 중국산 짜장붕어 크게 세 가지로 나뉘며 월남 붕어인 블루길은 붕어 축에도 끼지 못한다. 각 나라별 붕어는 정말 민족성하고 습성이 같다고보면 틀리지 않는다.

일본산 ‘떡붕어’는 흰색을 주로 띠며 힘도 없고 약하고 멍청하다. 찌의 움직임에 깐족거리며 아주 지저분하여 토종 조사들은 대상어에서 제외할 정도다.
IQ:5

중국산 짜장붕어는 약 20여 년 전 붕어 붐이 일어서 국내의 토종붕어 가격이 치솟자 모양이 비슷한 중국산 붕어를 수입하여 들어오게 되었는데 중국산이라 ‘짜장붕어’라 일컫는다. 입이 작고 의심도 많고 색깔은 짜장면 색깔을 띠는데 들어온 지 꽤 되어 지금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지금은 구분을 거의 하지 않는다. 덩치에 비해 눈이 작고 입이 작으며 검정색을 띠어 짜장붕어라고 불린다.
IQ : 6

토종붕어는 눈이 크고 비늘은 누런 황금빛 갑옷을 입은 듯하여 기품이 있다. 성품은 점잖고 여유가 있으며, 물 속의 선비라고 보면 된다.
그 성품 때문에 찌 올림이 아주 천천히 느리게 올라오는데 많은 조사들이 찌 올림 한번을 보고자 밤을 홀딱 새운다. 조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우리의 토종붕어다. 현재 공식적인 최대어는 57센티미터이나 비공식은 약 62센티미터 정도 되며, 붕어계의 최홍만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IQ : 12

잉어 : 붕어와 비슷한 습성이나 수염이 달려있어 중국에서는 붕어보다 더 고급 어종으로 여기지만, 우리나라 조사들에겐 낚싯대만 엉켜 버리는 귀찮은 존재다.
IQ : 5

얼룩동사리 (일명 구구리) : 육식 어종이며 바다의 우럭하고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전투복은 끝내주는 걸 입고 있다. 낚시 대상어는 아니고 매운탕 대상어다. 빠가사리, 꺽지, 쏘가리 등 매운탕의 계보를 잇는 매운탕계의 강자라고 불린다.
IQ : 1

동자개(일명 빠가사리) : 육식 어종이고 쏘가리처럼 침이 있어 찔리면 피가 나고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잡히면 빠가빠가 하는 소리를 내서 일본 사람들이 빠가사리라고 이름 붙였으나 우리말 이름 ‘동자개’라고 불러주어야 하는 사랑스러운 토종 물고기이다. 예전엔 천대를 받았으나 요즘은 매운탕용 고급 어종 대우를 받는다.
IQ : 1

꺽지 : 부성애 강한 꺽지는 제가 특별이 아끼는 물고기이다.

꺽지는 다음편에 소개할 예정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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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12<조준희 기자>

인생의 조우 내 동생(마늘밭의 추억 종결편)

싸움을 말려주신 어르신 덕분에 맞아 죽을 뻔한 상황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4~5명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숫적 열세로 필자가 시라소니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이길 수 없었다.

* 전투 팁 :아군보다 적군이 세 배 이상 많을 땐 무조건 튀어라.

동네 청년들을 야단을 친 어르신은 다시 내게 오셔서 “젊은이, 차가 빠졌으면 빼 달라고 도움을 청하지 이게 뭐여~~?”하고 밭을 쳐다보았다.

“헐!!!!!!!!!!”
싸우고 난리를 치느라 밭은 보지도 않았는데 그제야 밭을 둘러보니 마늘밭이었다.

마늘 추수를 한 후에 한 다발씩 묶어서 여기저기 모아 놓았는데 제 동생이 올라가는 길을 찾는다고 왔다 갔다 하며 타이어로 전부 짓이겨 놓은 것이다.

어두울 때라 보이지 않았던 거죠. 작물이 없어서 그냥 노는 땅인 줄 알았던 것이다. 순간 정신이 띵하며 지갑 속에 돈이 얼마 있나 살펴보니, 당시에 금요일 날 회사에 입금 못한 돈이 있어 약 150만 원 정도 있었는데 짜장면이 7~8백 원 할 때이니 꽤 많은 돈이었다.

일단 배상할 돈은 확보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으나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우리 실수로 모르고 한 짓이라고 하나 땀 흘려 열심히 농사지은 분들에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수확물을 저 꼴로 만들어 놨으니 미안한 마음과 함께 죄송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고 차라리 맞을 걸 그랬다라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무조건 어르신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어르신은 일어나라고 하는데 이런 큰일을 저질렀는데도 부드럽게 대하시며 관용을 베푸시는 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만감이 교차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싸울뻔 한 청년들은 당신의 조카며 손주며 아들이라고 소개하셨다. 마늘 추수가 끝나서 서울에서 마늘을 가지러 왔다고 말했다. 다시 그들을 마주보며 인사를 하고 바라보니 모두 착하게 보였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변상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극구 사양하였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돌아서 오는데 어르신이 불렀다.

“젊은 사람…근데 이 높은 걸 어찌 올라 갔누~~?”
하고 물으시는데 우리가 올라간 방법을 말씀드리니 막 웃으시며..” 재주들도 좋구먼” 하고 껄껄 웃으셨다.

필자도 계면쩍게 씨익 웃으며 인사를 여쭙고 낚시하던 자리로 돌아왔는데 영문도 모르는 친구와 동생은 어디 갔다가 왔냐고 막 찾았다고 도리어 제게 뭐라고 했다.(이것들을 죽일 수도 없고..)

속은 부글부글 끓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양들은 웃고 떠드는데 감정을 가라앉히며 아무 말도 안 했다. 저는 화나면 우선 화를 삭이느라 조용해진다.

동생은 아까 시킨 점심이 도착해서 먼저 먹고 제 것을 남겨 놨다고 먹으라고 하는데 반찬이 간장 마늘종, 고추장 마늘종, 마늘..마늘. 계란 후라이 하나 빼고는 모든 밑반찬이 마늘이었다.

마늘 때문에 고초를 겪고 온 마당에 마늘만 봐도 지긋지긋한데 반찬이 온통 마늘 일색이라니…
반찬 담아온 쟁반을 웃고 있는 동생의 얼굴에다 확 던져버리려다가 꾹 참고 일단 앉아서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해주니 둘이 웃고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다.

뭐 이런 것들이 있는지…

나도 무릎 꿇고 빌면서 눈물을 흘린 생각을 하니 창피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셋이 한바탕 웃고 말았다.

우리의 마늘밭 테러를 용서해주신 어르신에게 너무 미안해서 동생과 그 다음 주에 소고기를 사서 들고 다시 내려갔다.

어르신 댁을 찾아 소고기를 전달하며 다시 사죄와 감사 인사를 올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며 서울 톨게이트를 나와 속도를 내는데 뒤에서 경찰차가 사이렌을 켜고 따라왔다. 이런..

차를 세웠더니 속도위반이라고 그냥 자기들 해장국 값이나 달라고 말했다. (20여년 전 경찰은 이런 건 다반사였습니다.)

알겠다고 하고 지갑을 여니 10만 원 짜리 수표뿐이어서 만원짜리가 없었다.
동생도 없다고 했다.

수표를 보여주며 경찰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수표뿐인데 거스름돈 있으세요?”

경찰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아… 이사람들이… 빨리 가세욧!”

자기가 거스름 돈 없었으면서 왜 나한테 화를 내는건 지…

이 사건 이후로 트라우마로 인해 진천의 “초평저수지”는 다시는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후일 동생이 한국에 돌아오면 한번 가볼 예정이다.

그후, 동생은 몇 번이나 차를 빠뜨렸고 필자는 그때마다 부모님 몰래 다 해결해 준 해결사 형이되었다는 이야기로 마늘밭의 추억은 우리 형제에게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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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11<조준희 기자>

인생의 조우 내 동생 (마늘 밭의 추억 중편)

내가 차를 밭에 빠트렸다고 말하면서 눈빛에서 살기를 보이던 두 청년은 제게 갑자기 난데없이
“이런 XX끼가 있나? 니가 뭔 짓을 한 줄 알아? 이런 XX끼!” 하며 쌍욕을 냅다 쏟아부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밥 시키러 왔다가 쌍욕 한 바가지를 퍼 먹고 어이가 없는데 양쪽에서 저의 팔짱을 끼며 밭으로 가자고했다.

저는 순간적으로 불안한 느낌에 동생과 친구가 보이는지 살펴보자 저 멀리서 둘이 희희덕거리며 낚시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얄미운지…사고는 동생이 치고  봉변은 형이 당하는 시츄에이션…)

불러본다 한들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뻔한 일이었다.
여지껏 싸움이라곤 해 보지도 않은 애가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동생과 친구도 부를 수 없는 상황이고 순간적으로 두 놈을 패버리고 튈까? 말까?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괜히 두 놈을 패고 도망갔다가 동네 토박이 청년들이 다 몰려오면 꼼짝없이 더 큰일을 치를 것 같아 일단은 가서 보고 결정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두 청년들에게는 안 도망가니 팔짱을 좀 빼라고 엄포를 놓고 앞장서서라고 걸으라고 하고 밭쪽으로 걸어가는데 멀리서 사람들이 서서 웅성웅성거리고 있었다. 약간 친해진(?) 마을 청년에게 도대체 뭔일이냐고 물어보니 대답은 안 하고 그냥 따라 오라고 만 말했다.

밭으로 들어가며 함께 가던 동네 청년이 밭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 차가 빠졌었다며 나를 지목하는데 갑자기 얼굴 앞으로 뭐가 휙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살짝 피하고 보니 어떤 청년이 태권도를 배웠는지 이단 옆차기로 바로 가격이 들어왔다.

이단 옆차기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온갖 욕과 주먹이 날라오고 멱살을 잡았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더 이상 가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여섯 놈을 상대로 한판 붙어야겠다 생각하고 멱살 잡은 놈을 엎어 쳐 버리고 전투모드로 돌변했다.

사실, 절대 자랑은 아니지만,

철없던 어린 시절에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주의로 전투모드에서 져 본 적이 없는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왜 안 지느냐하면 당시엔 승부욕의 끝판왕이라 불리울 만큼 승부욕이 대단해서 이길 때까지 끝을 안 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맞기는 꽤 맞았다.

한 놈을 엎어치기를 해 놓고 전투모드로 돌변하니 동네 청년들도 순간 주춤했다. 그들이 언제 싸움다운 싸움을 해봤겠는가 ? 역시 내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공격을 하려는 일촉즉발의 순간.

“뭔 쌈박질들이여~~~?”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호통을 듣는 순간 청년들은 움찔하며 순한 양들이 되었다. 청년들을 갑자기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세워두고 제 앞으로 걸어오시는데 노인 영감님이 포스가 작렬이었다. 저는 하늘에서 나이 든 천사가 내려 오신 줄 순간 착각을 했다.

“젊은이가 밭에 빠졌던 겨?” 라고 그가 먼저 물었다.
“네… ”

“이 사람들아 말로 해야지. 사람 상하게 주먹질들을 하면 어쪄~~~”
하시며 동네 청년들을 나무라는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순간 나의 할아버지처럼 느껴져 저 청년들이 나한테 막 쌍욕하고 이단옆차기하고 주먹 날렸다고 일러바칠 뻔 했다.)

그는 이 마늘 밭의 소유주이자 동네 어른이었고 집안의 어른이었다. 전부 자손들이라 한마디로 평정을 하시며 흥분했던 동네 청년들을 순한 양들로 만들어 전투의지를 확 재워버렸다.

여기가 이 이야기의 끝은 분명 아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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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10<조준희 기자>

인생의 조우 내 동생 (마늘 밭의 추억 상편)

충청북도 진천의 “초평저수지” 는 봄에는 상류 수초 밭에서 좌대를 옮겨가며 큰 붕어들을 잡지만 모내기 철이 오면 물을 빼내기 때문에 수심이 얕아져 포인트가 상류에서 중하류로 포인트를 옮기게 된다.

잊지 못할 그날은 제 친구가 동행하기로 해서 회사의 봉고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깜깜한 새벽부터 내달려 어둑어둑하지만 여명이 밝아오는 저수지 중류 지역에 도착하게 된다.

운전은 동생이 하고, 제 친구는 조수석, 필자는 뒷자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면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도착하여 거의 다 왔나 보다하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와당탕하며 차가 기울고 어디론가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다가 깜짝 놀란 필자는 무슨 일인가 하고 창밖을 보니 차 한대만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동생이 실수를 하여 그만 밭으로 떨어져버린것이다.

문제는  도로와 밭의 높이가 1미터가량 되는데 도로로 올라가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우리는 차를 타고 밭 한 바퀴를 다 돌아보지만 길이 없었다.

날은 밝아 오는데 아무리 왔다갔다 해도 올라가는 길은 없고 답답한 노릇이었다.
저 녀석을 두드려 팬다고 차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니 하며, 속으로 참자, 참아보자고 되 뇌였다.
참을 인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고민 끝에 방법을 찾았다. 다리를 만들어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마침 주변에 마침 긴 각목들이 있었다. 긴 각목을 포개서 도로까지 연결하여 타고 올라
가기로 생각을 굳혔다.

임시 각목 다리는 설치했는데 도로의 반대편은 논 바닥이라 올라가서 그쪽으로 또 떨어지면 그땐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고 이쪽 밭보다 훨씬 낮아 차가 떨어지면 운전자의 부상을 당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 미루다가 결자해지, 결국은 떨어트린 놈이 올려놓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생이 운전석에 올라 시도를 했다.
참고로 동생은 어릴 적부터 겁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두드려 맞을 일이나 뒷감당이 안 되는 사고를 절대 치지 않았던 아이다.
동생은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있다! 성향이고, 난 오늘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내일은 없다! 라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었다.

시동을 걸고 반쯤 올라가더니 다시 주르륵 내려 오기를 수차례 하더니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다.
동생 운전하는데 수다 떨며 집중력 흐트려 놓은 두 번째 공범인 제 친구를 확 쳐다보니 눈길을 피하며 자기가 해 본다며 운전석에 올랐다.

그 친구 역시 중간쯤 올라가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다시 내려왔다.
차가 공중에 떠서 공중각목 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무섭기도 했다.
올라간들 길이 너무 좁아 잘못하면 반대쪽에 다시 빠질 상황이고, 내려오면 물론 다시 또 긴장해서 올려야 한다는 어쩌면 시지프스의 바위를 생각하게 하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결국 필자가 운전대를 잡았다. 기회는 한 번, 단 한번에 길 위에 정확히 올려놓아야 한다.
경험적으로 봐서 이런 위험한 상황은 두 번이란 있을 수 없다.
첫 번째 실패하면 두려움 때문에 계속 실패하게 되어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한 번에 도전해서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동을 걸고 작두 대신 각목을 타는데 중간쯤가니 무섭긴 무서웠다.
눈 질끈 감고 엑셀을 밟고 쭈욱 올라갔는데 올라가자마자 시야는 넓어지며 논두렁이 보였다.
순간에 핸들을 돌려 아슬아슬하게 반대로 안 떨어지고 다시 도로 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동생과 친구는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아마 그 시점이  동생이 필자를 제일 존경해 마지않는 시선을 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든다.

필자는 속으로 무지 쫄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운전대를 넘겨주며 거만하게 다시 뒷자리로 되 돌아왔다. 1시간 정도를 밭에서 헤매느라 낚시 시작은 늦었으나 우리는 낚시에 열중하였다.

점심때가 되어 사고를 친 두 원수들이 배가 고프다고 난리였고, 필자는 동네에 있는 밥집에 밥을 주문하러 갔다. 식당 앞에 도착하여 백반 세 개를 시키고 돌아서는데 어떤 청년 둘이 필자에게 물었다.

“저기, 아저씨, 자동차가 밭에 빠지셨어요?”

“그런데요. 왜 그러십니까?”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은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지겠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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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8<조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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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행기가 아닌 제가 조행을 다니며 느낀 물속 세상의 이치를 현실과 비교하며 한번 들여다 보려고 한다. 외래 어종과 토종 어종의 전쟁은 1970년대 초반 나라 경제가 배고프고 어려운 시기에 육영수여사께서 식용으로 하려고 배스와 블루길을 대량으로 양식하기위해 수입 시작되었다.

그러나 식용으로서의 가치가 없자 당시 생태계 교란이란 단어조차도 생소한 양식업자들은 가두리를 철수하고 우리나라 수계에 이 물고기들을 방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저수지 및 강계에 적응한 이들 어종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개가 주인의 성품을 닮듯이 물고기들도 살고 있는 나라의 국민성과 성품이 비슷해진다고 볼 수 있다.

미국서 들어 온 ‘배스’는 육식 어종이라 토종 어류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대단한 식욕을 가지고 있으며, 베트남이 원산지인 월남붕어 ‘블루길’은 베트콩과 같은 기질로 떼로 다니며 토종 어류의 알을 싹쓸이 하는 놈들입니다. 일단 저수지에 이 녀석들이 유입되는 순간 물속 생태계는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이 시작되면 이놈들의 무차별 싹쓸이 전법으로 3년 안에 저수지는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은 저수지처럼 초토화가 되고 만다.

그 사이 살아 남은 붕어들은 크기를 키우고 체고를 높여서 배스가 함부러 달려들지 못하게 하며 배스와 블루길의 활동시간인 낮을 피해 밤으로 먹이 활동시간도 바꾸게 된다. 즉 현장 적응을 하며 체질 개선과 힘을 키우며 반격 준비를 한다.  예를들면, 우리 나라 강이나 저수지에는 순한 붕어같은 애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저수지에는 ‘가물치’라는 황제가 살고 있으며, 강계에는 ‘쏘가리’라는 황태자가 산다. 다른 영역을 가진 수중 생태계의 최상위 실력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생태계를 무차별 교란시킨 벌로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진 외래 어종들은 그때부터 두 어종 간의 치열한 전쟁을 벌이며 상대의 치어나 알을 잡아먹으며 그들만의 리그전을 치르게 된다.

토종 붕어와 가물치는 연합군이 되어 두 어종의 전쟁을 숨어서 지켜보며 지속적인 삶을 유지한다. 배스든 블루길이든 누가 승자로 남든 “끝나기 전에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라는 일념으로 약 10년 정도의 인고의 세월 동안 힘과 덩치를 키우며 40센티 이상 자란다.

다음 해 봄부터 토종 연합군은 10년 전 외래 어종들에게 배운 무차별 싹쓰리 전법으로 승리한 어종의 치어와 알을 입속으로 다 쓸어 담으며 외래 어종과의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마지막 전쟁까지 시간이 약 10년 정도 걸리며, 맨 아래 단계인 새우 등 작은 생물들이 살아나며 다시 생태계가 복원되는 시간은 다시 10년 정도 걸린다.

어떤 저수지는 외래 어종도 적절한 개체 수 유지로 토착화되어 우리 수중 생태계의 일환이 된 경우도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년가량이나 소요된다. 우리가 삶이란 전투를 하는 동안에도 수중에서도 치열한 전투와 전쟁은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저력도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국기업들이 자본과 기술을 앞세워 IMF란 상황을 만들어 무차별 폭격을 가해 많은 기업들이 외국 자본 손에 들어가 있고 외국 수입 농축산물들 또한 싼값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 농어민들을 어렵게 만들어도 결국은 토종 물고기들처럼 참고 힘을 기르며 시간이 흘러 마지막 일전을 벌인다면 다시 진정한 글로벌 강자로서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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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 수요수필 4 <조준희 기자>

 

이제 낚시의 기본 단계를 설명해 드렸고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 낚시 방법은 천차만별인데 제 글은 낚시교본이 아니기에 별도 구분없이 이야기 속에서 그때 그때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저의 낚시 역사에는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아버지와 동생입니다. 제 동생이 저보다 2년 이상 더 오래 산다면 저 보다 더 오래 낚시를 하게 될 인간일 겁니다. 낚시광이라는 말보다는  또 한 사람의 조선 이라는 뜻입니다.

내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이자 낚시 스승이었습니다. 낚시를 평생 다니시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치를 다 깨닫으셔서 아버지께 모르는 걸 여쭈면 그 당시는 이해가 안 되었어도 지나고 나면 전부 다 맞는 정답이었습니다. 사위인 자형은 아버지의 선견지명에 늘 감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형은 아버지께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즉, 이름하여 ‘마음은 늘 콩밭에 있다’ 라는 말이 있지요.

자형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가도 낚시에 집중 안 하고 술 마실 생각만 하는 어스레기라고 인정을 안 하셨습니다. 자식들이 약속을 안 지키거나 뭔가 마음에 안 드시면 언제나 하시는 당신만의 트레이드 말씀이 있습니다. “그 따우 정신으로 뭘 하나?” 하고 핀잔을 주시는데 저의 자형께서 그 말을 제일 많이 들으셨죠.

아마 6살 때였던 것 같습니다. 첫 낚시의 기억은 남산 아래에 있던 미술학원으로 낚시를 가자고 아버지께서 데리러 오셔서 저와 동생이 따라 나섯던 것 같습니다. 제 동생과 저에게 짧은 밤색 컬러의 낚싯대를 한개씩 준비해 주셨는데 나중에 어른이 될때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물고기 잡은 기억은 없고 동생과 장난친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귀해졌지만 당시는 물가에 갈색 전투복을 입은 토종개구리들이 많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개구리 잡기가 만만치 않은 놀이였는데 낚시대를 이용하면 쉽게 잡는 법이 있습니다. 물속에 개구리가 머리만 내밀고 먹이 사냥을 하려고 눈을 꿈뻑거리고 떠 있을 때 낚시바늘에 떡밥미끼를 달아 개구리 눈앞에서 흔들어 줍니다. 마치 걸그룹들 ‘위아래’ 춤 추듯이 살짝살짝 “위아래, 위아래, 위위 아래, 위위 아래”하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남자들 대부분 TV 채널이 고정된 채 그곳으로 빠져드는 것과 똑같은 맥락입니다. 적중률 99.9% 영락없이 떡밥을 덮칩니다. 개구리한텐 미안하지만 개구리를 잡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뒷다리 구워먹으려고? 아니죠. 저의 가장 큰 즐거움의 놀이 대상인 5살짜리 동생을 기겁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였지요.

당시 동생은 개구리를 무서워해서 개구리를 잡고 개구리랑 논다는 것은 치를 떨고 상상도 하기 싫어했는데 잡힌 개구리를 동생의 낚시대에 끼워 두거나 모자 속에 넣어두면 기겁을하고 자지러지는 모습에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던 개구장이 시절이 떠오릅니다. 아마 동생은 지금도 그 기억을 가지고 있을것  같아요. 추억을 남겨 준 훌륭한 형님이지요.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동생과 저는 이렇게 아버지를 따라 낚시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 후 초등학교를 들어 간 이후에도 휴일이면 아버지와 함께 낚시회에서 운영하는 낚시 버스를 타고 수도권 일대에 있던 많은 낚시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돌이켜 보면 아버지와의 조행이 저의 어린 시절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리 배운 낚시기법과 기술은 초등학교 6학년 6월6일 현충일 때 우리반 아이들과 큰 사고를 치게 하는데 그 사고의 전말은 다음 5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물요일에는 조금은 더 스릴이 있을 것 같아요. 기대해 봅니다.

To be continued ~

서울 : 조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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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 수요수필 3<조준희 기자>

사진: 조준희 기자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때가 오면, 그때는 무엇으로 진정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로 결정을 짓게 된다.

4단계: 명인, 조력이 30년 이상되면 고수로 남아서 붕어를 쫒을 것이냐? 탐욕을 버리고 명예를 쫒을 것이냐? 에 대한 갈등을 하는데 여기서 욕심을 버린 조사들은 명인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조구는 외대일침. 즉 낚시대 하나에 바늘도 한개, 낚시줄도 가는 줄, 바늘은 미늘이 없는 무미늘 바늘. 살림망도 없고 낚는 즉시 방류하는 캣치엔 릴리스로 낚시인의 모범이 되는 단계. 자신의 쓰레기는 물론 남이 버린 쓰레기까지 담아가는 솔선 수범의 아이콘으로 조사들의 롤모델. 붕어 크기에 대한 물질적 탐욕은 버렸으나 명예욕은 남아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엄청 신경 쓰느라 갖은 똥폼은 다잡습니다. 낚시대는 비록 한 대지만 장인들이 한땀한땀 만든 수제품을 사용하며 낚시대에 이름을 새겨넣기도 합니다만 이 경지는 한국 보다는 일본의 조사들의 행태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서 개폼잡는 낚시 레벨인거죠. 붕어를 못 잡아도 자신의 낚시 실력 탓이 아니었음을 선문답식으로 표현하는데 나와 자연이 하나가 되었다는 둥 바람과 멋진 대화가 즐거웠다는 등등 변명거리를 그동안 낚시 다니며 마신 소주병 갯수만큼 많이 가지고 있으며 조력으로 고수이하의 조사들을 자신의 권위주의로 압도하며 의문과 도발 의지를 단숨에 꺽어버립니다.즉, 낚시계에도 권위주의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5단계: 조선, 붕어에 대한 집착과 조사로서의 명예도 생각하지 않는 집착을 안 하지도 또한 하지도 않는 절대 진리를 찾은 자유의 단계인데 우리나라의 시골 어르신들에게 찾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물질과 명예의 마지막 두가지 욕심을 생각 조차도 하지 않아 완전히 경계를 허문 단계인데 행태가 오묘하고 응큼해서 자신이 조선인 줄 조차도 내색도 않고 자신마저 잊습니다. 조선의 약점은 술을 너무 좋아해서 소주한잔에 김치쪼가리 안주여도 마다 않으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술이 얼큰해지면 천기누설을 토하기 시작하므로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조행길엔 꼭 소주 한두병은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조구에 대한 집착도 없고 필요할 땐 집착을 하기도 하는데 매운탕을 먹고 싶으면 피라미까지 잡아두는 어스레기 단계부터 명인의 단계를 경계 없이 넘나듭니다. 권위주의가 아닌 계급없는 평등을 실천하는 자유민주 조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분들은 낚시를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단지 찌를 바라 볼 뿐. (이 단계까지 못 가봐서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 강태공이 이 단계까지 올랐으리라 봅니다. 조선들은 조선이 아니면 절대 알아 볼 수없습니다. 조선끼리도 급수가 있다고 합니다. 고수들은 하수들의 수를 전부 읽지만 하수들은 고수들의 수를 절대 읽지 못합니다. 하수들에게 읽힌다면 고수가 아니겠지요?

우리 삶에도 조선같은 도인들이 많이 있으니 잘 살펴 보시고 발견하시면 바로 제게 신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5단계로 나누어 살펴봤는데요. 우리네 인생사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듯합니다. 낚시의 최종적 목표는 자연 속에서 중도를 찾아 중용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자연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협력하고 때론 경쟁하며 함께 존재합니다. 그들의 세상으로 들어갈 땐 겸허한 마음으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자연이 저를 거부하지 않고 자신들과 동등한 하나의 자연물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감사하고 즐거워 시간 날 때마다 물가를 찾습니다.

조행이 가장 의욕적이고 즐거운 시기는 입문부터 중수의 단계 정도 단계가 아닌가 봅니다. 인생사도 다르지 않겠지요? 다음 이야기는 조행길에 재미 있었던 추억들을 떠 올려 보겠습니다.

 

다음 물요일을 기대해봅니다.

To be continued ~

서울 : 조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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