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 9< 이강화 교수>

Photo from Google Images : Hotel Rwanda (2004) 는 1994년 르완다에서 발생한 대 학살 사건을 토대로 한 역사 영화다. 주인공, 폴로세사바기나는 호텔 데스 밀레 콜린스 지배인으로 그 당시 소위 아프리칸 쉰들러 리스트라 불리는 난민들을 호텔에서 숨겨주므로서 수 천명의 생명을 구하는 휴먼 영화다.

<Daegu: Prof. Lee, Kangwha>

3.새로운 역사 텍스트로서의 영화

  1. 인문학으로서의 역사

오늘날 인문학은 전반적으로 매우 심각한 실존적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위기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분석 가능한 데, 우선, 학문조차도 사용가치 대신 교환가치에 의해 지배받는, 다시 말해서 실용성과 시장원리에 의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신자유주의가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이른바 W.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문자적 기록과 관념적 사유 만을 고수하려는 인문학의 전통적 연구 방식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역사학의 경우, 사마천과 헤로도투스 이래로 오직 문자라는 기호를 통해 과거를 재현하고 서술하였다. 따라서 문자 역사만이 진정한 역사라는 고정관념은 지금까지도 뿌리깊게 각인돼 있다. 그러나 책을 지식정보의 가장 중요한 매체로 끌어 올렸던 ’구텐베르크 혁명‘은 마침내 종말을 고하게되었고, 이제 새로운 세대들은 책이 아닌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종이 위에 글을 쓰는 대신 화면을 보고, 펜 대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디지털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탈문자 시대‘는 문자의 존립을 위협하면서 역사학을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역사학(혹은 인문학 전체)은 문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표현방식을 모색해야 할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역사학의 위기는 있어도 역사의 위기는 없다”라는 표현이 잘 말해주듯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선호되는 담화적 소재가 바로 역사 이야기이다.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민영방송까지 포함해서 가장 높은 시청율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역사드라마이며 근래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계속 갱신하는 것도 모두 지나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영화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위기에 처한 오늘의 역사학은 다른 어떠한 대중 매체보다도 영화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역사학이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면, 대중적인 역사는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대학의 역사학은 위기를 맞이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결코 극복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전통적인 문자적 방식을 고수하면서 대중을 위한 역사 대신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논문이나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따라서 영상물에 대한 이들의 평가 역시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다. 이와 같은 고정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역사가들이 아직도 ‘기술 복제 시대’ 이전에나 가능한 원본의 ‘아우라’에 의해서 유지되었던 역사학의 ‘예배적 가치’가 견지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이래 역사가들은 역사를 인간의 지성에 의거하는 합리적 설명양식으로 이해하였고 이것은 이전의 신화적이고 신학적인 세계관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주체적으로 세계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근대적 인식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인간의 다른 지적 영역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탐구 역시 신의 섭리나 의도를 전제하지 않은 이성에 의한 객관적인 탐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역사학은 역사적 과거에 대한 ‘재현’을 금과옥조로 삼았다. 이때 재현이란 과거라는 원본과 역사라는 복제 사이의 닮음의 관계를 지칭한다.

비단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역사물에 대한 대중적 선호는 전 세계적이다. 근래 헐리우드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대작 서사물의 제작은 일종의 붐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가져온 집단적인 회고적 의식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그 이전 시대를 배경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시대극, 즉 역사극으로 보고 이후 시대를 현대극으로 보며,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대체로 구한말을 기점으로 이전의 역사극과 현대극을 구분하지만, 지나간 시대의 소재로 삼아 극적 내용을 진행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현재 이전의 모든 시대극은 역사극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왕의 남자> 뿐만 아니라,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친구>까지도 역사극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지적되었듯이 과거 사실의 재해석과 재구성의 결과물이라는 역사 텍스트의 한계성은 역사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과거 특정 사건을 정확하게 모방하거나 복제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여기에서 역사에서의 원본의 의미를 다시 고찰하게 한다. 과거 실재의 부정은 역사학의 존재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어떤 경우에서든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미 확인하였다. 즉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과거 사실의 실재는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사실상 역사가는 현재라는 시점에서 과거 자체는 어떤 방식으로도 알 수 없으며, 역사적 텍스트 그 자체도 과거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해석된 구성물에 불과하기에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실재적 과거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과거라는 원본은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는 점에서는 존재론적으로 실재하였음이 틀림없지만, 그것을 현재의 역사가는 인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식론적으로는 실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역사가가 과거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역사학은 인식론적인 차원에서는 과거의 부재를 전제하면서 이를 또 다시 역사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오랫동안 과거라는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모사라는 이분법에 기초해 있었던 역사학은 과거라는 원본이 경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들의 인식 너머에 있는 실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원본의 변형까지도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일차 사료와 이차 사료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이제 역사란 과거라는 원본이 없는 복제와 같은 것이다.

 

To be continued~~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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