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ing And Questioning of Historical Consciousness 부끄러움 또는 질문하는 역사의식 10<은우근 교수>

사진: 구글에서

<Gwangju : Prof. Woogeun Eun>

4. ‘생명공동체’의 깨달음

신군부 독재 세력은 민족사의 질곡을 강요해온 분단 체제를 규정하는 폭력의 직접적 담지자 였다. 5월 민중의 시위는 애초의 민주화 요구로부터 국가 폭력 자체와의 대결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공동체는 5월 민중항쟁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적인 요소이다.

5월민중항쟁 당시 가장 처참한 상황에서 가장 많이 외친구호는’죽여라! 모두 같이 죽자!’ 였다. 5월민중은 피와 밥을 함께 나누었다. 피와 밥은 성경적 의미에서 생명의 상징이다. 민중은 헌혈에 기꺼이 참여했고, 골목마다 자진하여 김밥과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 전했으며 함께 나누었다. 많은 택시 기사들이 공수부대의 공격으로 자신의 전 재산, 곧 ‘밥줄’인 택시가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동을 걸고 대기하다가 도망치는 시위대를 도왔다. 많은 5월 민중이 총격에 쓰러진 생면 부지의 타인을 구하려다 재차 가해진 총격에 쓰러지기도 했다. 당시 광주 기독병원 간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여고생 박금희 양은 농성동 집 부근에서 헌혈 가두방송을 듣고 수 킬로미터 떨어진 양림동 기독병원까지 가서 헌혈하고 귀가하다 잠복중인 공수부대의 총격에 절명했다.  “몸이 약해서 보기에 그 헌혈허시면 안되겠다고 그러면 막 화를 낸 거예요. 내가 … 죽어도 이럴 때 내가 피 한 방울도 안 주면 내가 시민이 아니지 않냐.  … 어떤 사람들은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는 정말 죽어도 좋다. 그러니까 피를 더 많이 빼라. … 그때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슬펐고, 또 가장 인간으로서 감동적인 순간들을 너무 많이 체험을 한 거죠.”  이 밖에도 생명을 걸고 타자의 목숨을 구하려고 노력한  많은 사례가 있다.

이처럼 5월민중은 피와 밥뿐만 아니라 실제로 생명을 나누었다. 자신의 전 존재를 위협하고 인간성을 송두리째 부인 당한 모욕과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명을 건 위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이 절대적 사랑의  순간에 자기와 타자는 구분되지 않았다. 5월 민중이 이룩한 생명공동체안에서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긍정은 동시에 타자에 대한 사랑과 통일 되었다. 이 위대한 사랑의 실천은 특별한 사람들이 이룬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의 시민들이 그 실천에 참여했고 공동체의 환희와 신비를 체험했다.

한국의 대중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당시에도 일시적으로 공동체의 일체감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일체감을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일체감은 자기도취 속에서 자기 상실을 경험하는 일시적인 흥분 상태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성이 없으며, 자칫하면 파괴적 난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 이것은 지배 구조에게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국가주의적 동원 기제로 이용될 여지도 있다.

1980년 5월 민중의 공동체적 일체감은 완전히 다른 종류였다. 공수부대의 잔인한 폭력이 인간성을 부정했지만 5월민중은 무지막지한 폭력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로 말미암은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순수한 공동체를 함께 체험했다. 민중은 자신을 공동체의 일부로 재 정의 했다.

5월 민중의 공동체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자기 인정과 타자에 대한 인정을 위한 투쟁과 사랑을 통해 이룩한 것이었다.  이 공동체의 깨달음과 실천을 인권 개념으로 설명하기에는 구체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불충분하다. 도시 전체의 민중이 동시에 역사이지 않을 뿐 아니라 불 충분하다. 도시 전체의 민중이 도이에 역사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본 경험, 실천은 앞으로  몇 세기 동안에도 갖기 힘들 것이다. 이것이 5월민중의 정체성과 자부심의 근원이다. 이 점이 여타 민주화 운동과 5.18의 가장 중요한 차이다.

필자는 이 공동체를 ‘생명공동체’로 명명한다.

이것은 불가해한 체험이었다. 김준태 시인은 5월 민중항쟁의 투쟁과 공동체에서의 환희의 체험과 그 체험속에서 발견한 희망을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고 썼다. 황지우 시인은  이 체험을 ” 시인의 접(接)신(神)”이라고 규탄했다. 시인은 신에 접속(access) 했다. 그러나 김 시인만 하느님을 본 것이 아니었다. 5월 민중이 함께 접신했다. 이것이 5월민중항쟁의 비의다. 5월민중은 죽음을 무릅쓴 비장한 실천 속에서 하나됨의 신비한 환희를 체험했다. 이 체험은 곧 하나의 깨달음으로서 인간을 변화시켰다. 이 변화된 인간이 역사를 밀고 갔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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