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ing And Questioning of Historical Consciousness 부끄러움 또는 질문하는 역사의식 1 <은우근 교수>

<Gwangju : Prof. Woogeun Eun>

은우근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그의 논문, “부끄러움 또는 질문하는 역사의식” 에서, 아이러니칼하게도 결과적으로는 민중의 역사의식의 성장을 가져온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는 역사적인 사실 앞에서, 민중과 천주교 사제들은  왜 부끄러워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묻고 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그 자체는 “역사와 신 앞에 선 인간의 자기의식이었으며 하나의 집단적 깨달음이었다.” 고 밝힌다. 코리일보는 은우근 교수의 논문, “부끄러움 또는 질문하는 역사의식” 을 몇 차례로 나누어 신문에 게재하려고 한다. 이 논문을 통하여, 그 당시의 아픔과 부끄러움, 그리고 역사 의식을 함께 나누며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5월민중항쟁은 1980년대 분단 체제의 한국을 장악한 신군부 집단과 맨주먹 호남 민중의 처절한 대결이었다. 이 대결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연적인 것이었다. 5월 민중은 군부 독재와 정직하게 맞설 수밖에 없는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한봉 (1947-2007)은 1980년 5월 이전 호남 민중과 신군부 사이의 정면 대결의 불가피성을 예감했다. 그는 호남의 여러 곳을 방문하여 민중과 나눈 대화를 통해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직접 확인했다. 그는 대부분의 민주화 운동 참여자들과 정치권 인사들 (여기에서 김대중은 예외다. 신군부가 개입할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군부의 권력이양을 통한 민주화의 가능성을 낙관할 때 권력욕에 사로잡힌 신군부와 강한 민주화 열망을 가진 호남 민중 사이에 피의 대결을 경계(“기념은 계승이고 계승은 교육으로 해야지” 라고 말하며, )했다.

마침내 민주화에 대한 강한 희망을 가진 민중을 향해 신군부의 정치적 욕망의 폭력적 대리인이었던 공수부대의 폭력이 행사되었다. 5월 민중은 신군부와의 이 대결에서 끝까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군의 무력 행사가 정당화되는 계엄 상황에서, 목숨을 건 민중의 항쟁은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국가 폭력을 상대화시켰으며, 그 잔인한 본질을 폭로했다. 이 점에서 5월 민중항쟁은 김성용 신부[는 그의 신앙 간증인 “사막의 체험” 에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바쳐야 하는 ‘제사’였으며, 민중의 희생은 그 제단에 바쳐졌다.  5월민중이 흘린 피가 없었다면 6월 항쟁 시기에 군부가 나섰을 가능성이 컸다는 견해들은 이러한 시각을 반영한다. (서중석 저, “6월항쟁” 에 따르면, 당시 군부는 전두환 일파를 중심으로 한 ‘하나회’가 핵심요직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5월 민중항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흘린 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쿠데타를 시도할 수 없었다. ) 5월 민중항쟁은 이른바 87년 체제라는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진전을 예비했다.

광주 .전남 카톨릭교회 (이하 교회) 는 종교와 사회를 막론하고 5월민중 항쟁에 가장 깊게 연루된 민간기구이다. 교회는 1980년대의 격변기에 5월 민중항쟁과 관련한 다양한 실천에 참여했다. 죽음의 공포가 지배한 시기에 교회는 5월 민중항쟁의 ‘목격자’와 ‘중재자’ 그리고 ‘증언자’이자 ‘진실의 파수꾼’ 이고자 했다.

필자는 부끄러움, 공동체, 역사의식을 키워드로 5월 민중항쟁이라는 역사의 부름에 교회가 어떻게 응답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필자는 부끄러움이 역사적 주체의 성숙과 교양화의 계기로 작용했음을 주장하고, 역사의식으로서 부끄러움이 오늘날 지니는 의미를 성찰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1980년 5.18과 그 이후 민중의 실천과 교회의 활동을 부끄러움과 연관된 정서의 형성. 발전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재구성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실천을 사제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술할 것이다. 여기에서 ‘사제가 곧 교회의 실체인가?’, ‘5.18 당시 민중과 교회의 입장이 항상 일치했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어쩌면 중세 이후, 아주 오래된 신학적 논쟁(이탈리아의 중세학자. 기호학자, 문학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의 주제 가운데 하나는 교회 또는 보편적인 것의 실체에 관한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중세철학에서의 보편논쟁을 의미한다고 본다)과도 연관된 질문이기도 한다. 또 당시 대주교 및 사제들과 평신도, 그리고 교회 신도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입장이 각각 어떤 국면에서 어떤 이유에 따라 어떻게 같거나 달랐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5.18 당시 교회의 실천과 관련하여 사제와 평신도의 입장을 별도로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기에서 다루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의 정서를 5월 민중 절대 다수로부터 사제와 평신도를 포함한 교회의 최고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본고의 전개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이 연구를 위해 김수한 추기경과 윤공희 대주교를 비롯한 여러 사제 및 교회의 실천에 함께 한 일부 5.18 관련자들의 최신 구술 채록 자료 (“저항과 명상” 을 비롯한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5.18기념재단 편) 교회 여러 기관의 성명서와 강론을 포함한 교회의 공식 기록을 활용했다. 이 자료는 5월 민중항쟁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도전에 당면한 교회의 고위 성직자를 포함한 여러 사제들과 평신도 및 5월 민중의 진솔한 고백과 그들의 생생하고 솔직한 정서적 반응을 담고있어 아주 소중했다.

 

다음 시간에는 “왜 부끄러움인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To be continued~

Coree ILBO copyright © 2013-2017, All rights reserved.
This material may not be published, broadcast, rewritten or redistributed in whole or part with out the express written permission.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Confirm that you are not a bot - select a man with raised h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