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dlelight Protest Continues as People Seek Truth behind Sewol and Park’s Incarceration <김광식 교수의 현장 르포>

사진 : 전상훈 나팔부대장

<Seoul : Prof. Kim Kwangsik>
3월 25일, 세월호 인양이후, 첫번째  촛불평화대행진 (22회차)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한 집회였다. 박근혜 파면 이후 두 번째 정기집회였고,  세월호 인양이 이루어진후 첫 번째 정기집회였기 때문이다. 지난 집회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박근혜를 구속!” 하라고 외쳤다.
제1부, 비정규직노동자회에서 조직국장직을 맡고 있는 여성이 등장하여 이제 회원들이 1600만명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비정규직노동자나 촛불시민이나 같은 숫자가 된것이다. “지금 비정규직노동자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상태에서 노동을 하고 있으며,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라고 강조했다.
이어 백남기 농민의 딸인 백도라지씨가 나와서 “이제 아버님께서 돌아가신지 500일이 다 되어간다”고 말하며, ” 당시의 위정자인 박근혜와 경찰청장인 강선명씨가 지금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4월 8일에는 사드 철폐운동을 벌이는 성주-김천 중학교 학생들인 가수들이 “샤드는 가라, 평화여 오라”라는 제목으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고, 다음엔 그 가운데 한 중학생이 나와서 “촛불 여러분”을 성주-김천 롯데골프장 앞으로 초청한다고 말했다.
제2부, ‘세월호 촛불’에서 의혹 투성이인 세월호에 대해 “인양에는 3년이 걸렸지만, 이것을 마음 먹으니까 3일이면 인양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배의 선체에는 미수습자의 시신뿐만이 아니라, 온갖 증거물품들이 나뒹굴고 있으며, 아울러 그런 뭄품들을 옮긴 출구들도 발견되었다. 국회에서 28일 선체조사위원회가 구성된다면 가장 먼저 조사해야 할 것들이다.”라고 덧붙였다.
남지현 희생자의 언니인 남서현씨가 먼저 발언을 했다. “이 지상에서 지현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수학여행 출발 하루 전날 이었으며, 그때 동생은 조그만 가방에다 무엇을 넣을까를 많이 생각했다. 그것을 모두 정한 후 잘 싸서 가방에 넣었다”고 말하며, “그런데 그것을 그후에는 한번 보지도 못했다.선체가 올라온다고 하니, 저는 지금 그것을 볼 수 있을까 슬픔 속에서도 기대도 가져 봅니다.” 라며 울먹였다.

세월호 가족협의회 인양회장은 “두렵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하겠습니다. 사고 당일 아이들을 데려오려고 서둘러 나섰던 그 길로 다시 갑니다. 세월호 참사 3년만에 선체 인양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전남 진도 앞 차가운 봄바다 속으로 304명의 희생자와 함께 세월호가 가라앉은지 정확히 1073일이 지난 후에야 시도되는 선체 인양입니다. 세월호 속에는 현재 9명의 미수습자와 함께 참사 원인을 확인할 수 있는 실마리가 적지않게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지금 미수습자 가족들은 제발 성공해 ‘진실’이 인양됐으면 하는 간절함과 혹시 모를 긴장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만약 당시에 인양을 시도했다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을 이제 3년상이 다 되어갈 때야 꺼내주는 위정자들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박근혜는 파면되었지만, 총리는 그밥에 그 나물이 아닙니까? 박근혜와 황교안이는 같은 집안 출신입니다. 세월호 참사 후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지난한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검찰이 박근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전 국민은 철저히 감시의 눈으로 지켜 봐야 한다.” 라고 말했다.

사건 직후 진도체육관을 웃으면서 방문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던 박근혜, 그후 박근혜로 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유가족들, 그들은 그해 7월 14일부터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기 위해 광화문에 나앉아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목숨을 건 단식 46일 만에 후송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조 단식 농성을 벌였다.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차에서 내려 유가족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후 650여만명의 서명으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돼 2015년 1월부터 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잠시 희망을 품기도 하였다.
정부와 여당의 비 협조와 활동방해로 세월호 특별조사회는 결국 2번의 공식 청문회, 1번의 비공식 청문회만을 진행한 채 진상 규명에 끝내 실패하고 지난해 6월 문을 닫았다. 이석태 특조위원장 등이 릴레이 단식 농성을 벌이며 강제 해산을 반대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4월 16일 그날 ‘7시간의 진상규명’,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문에서도 소극적 대응에 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세월호 참사’가 다시 부각됐다. 이제는 이것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집어 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검찰은 박근혜를 구속해야 하며, 세월호의 진상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촛불 집회 참가자들은 외쳤다. 그리고 세월호의 진상 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적으로 촛불을 들것이며. 박근혜의 구속은 절대 미루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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