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제 3장 문화의 이론

1, 문명주의

1) 문명주의의 시대적 배경

다수의 대중문화는 항상 소수 권력층의 관심 거리였다. 정치권력을 쥔 자들은 항상 권력이 없는 자들의 문화를 정치적 불안의 징조로 보고, 보호와 간섭을 통해 끊임없이 조정하고 규제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이같은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산업혁명이후의 서구사회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중요한 시기에 피 지배층의 문화를 조절하는 수단을 상실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바로 산업화와 도시화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은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변화들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문화적 관계들과 단절의 계기도 가져왔다.

이제 도시는 계급에 의한 주거분리의 명확한 경계를 유발시켰고, 이러한 주거분리는 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노동관계를 반영하였다. 그리고 생활과 노동 관계의 변화라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 문화적 변화가 일어났다. 달리 말하자면, 노동 계급에게는 지배계급의 직접적인 간섭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를 개발할 공간이 주어졌던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서 권력층 문화와 함께 공유 되었던 일반문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와 산업 중심지에 피 지배 층만이 갖는 분리된 문화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분리된 문화에는 두 가지 주된 근원이 있었다.

첫째 새로운 문화기업들이 영리를 위해 제공하는 문화 였[다.]

둘째는 급진적인 예술가들과 새로운 도시노동계급, 중산층 개혁론자들이 정치선동을 위해 그리고 이러한 정치선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화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일어난 발전은 문화적 융합과 사회 안정의 전통적 개념을 위협하였다. 이는 우선 문화적 융합을 상업적으로 해체하여 권위를 약화시켰으며, 모든 형태의 정치적, 문화적 권위에 직접적인 도전을 가하였다.

문명주의란 명칭은 흔히 ‘문화와 문명주의’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전통적인 문화이론에 대한 필자의 임의적인 표현이다. ‘문화와 문명주의’라는 명칭에서 ‘문화’를 생략하고 ‘문명주의’라 약칭한 이유는 보수적인 이 이론을 2차 대전 이후 새롭게 전개된 진보적인 ‘문화주의’와 대비하기 위해서다.

2) 매튜 아놀드 Matthew Arnold (24 December 1822 – 15 April 1888)

근대의 대중문화 연구가 흔히 매튜 아놀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중문화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따라서 아놀드의 중요성은 그가 어떠한 전통 즉, 대중문화를 보는 특정 관점과 일반적인 문화의 영역 내에서 이률 자리 매김하는 특정 방법을 시작한 데 있다. 그리고 그의 중요성은 어떤 경험주의적 연구의 업적에 있다기보다는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일반적 관점의 지속적인 영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이 영향력은 흔히 ‘문화와 문명’의 전통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아놀드에게 문화는 네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선,

문화는 지식체계이다. 아놀드에 따르면 문화란 ‘인간사고와 표현의 정수’를 말한다.

둘째, 문화는 “이성과 신의 의지가 널리 퍼지도록”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셋째, “문화는 완벽에 대한 연구이며 이 완벽은 어떤 것을 가진다는 의미보다는 어떤 것이 되어 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일련의 외적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문화는 최선을 알기 위한 노력이며 또한 모든 인류를 위해 그런 지식이 널리 알려 지도록 하는 노력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이제 인간사고와 표현의 정수를 알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지식체계이며 그 지식을 ’정신과 영혼의 내적 상태‘에 적용시킨 것이다.

네 번째 측면이 있는데, 문화는 “우리 시대의 (병든) 영혼을 보살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가 “어떤 특정한 악을 제거하기 위한 실제의 수술로서 보다는 우리 친구나 동료들이 문화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데”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놀드에게 문화는

첫째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자체이고,

둘째로 최선 그 자체이며,

셋째 최선의 것에 대한 정신적, 영혼적 적용이며,

네째 그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문화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 아놀드에 의하면 “읽고, 관찰하고, 생각함으로써” 그리고 “알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알고자하는 열망으로 그리고 활발하게 읽고, 객관적으로 사색하고, 관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그의 글에서 대중문화는 정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놀드의 글을 읽으면 ‘무정부상태’가 부분적으로 대중문화와 동의어로 쓰인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무정부/대중문화는 노동계급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의 분열적, 파괴적 형태이며 이것은 분명히 1867년 도시 남성 노동계급이 정식으로 정치에 진입하면서 필연적으로 일어난 정치적 위험을 말한다. 그리고 무정부상태를 초래하는 노동계급의 문화는 극히 정치적 개념이란 것이다. 문화의 사회적 기능은 이러한 파괴적, 분열적 존재, 즉 ‘거칠고 세련되지 않은 대중’ ‘거칠고 가공되지 않은 대중들’, 이 엄청나게 많고, 비참하고 다루기 힘든 천민들의 군중’을 계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계급이 누리는 문화란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약간 주장하며, 가고 싶은 데 가고, 어디서나 모이며, 아무 데서나 소리지르는 거친 것들의 문화” 다시 말해서 “영국인의 천부인권을 주장하며 원하는 곳에 행진하고, 집결하고, 소리지르고, 부수며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 시작하는 문화“라는 데 있다. 여기에서 아놀드는 자신의 논의의 계급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문화는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귀족층과 중산층을 이런 부정적 상황에서 이끌어내야 하고, 둘째로 앞서 말한 서민의 인간성을 갖고 있는 노동계급에게 “우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정부의 경향과는 반대되는 권위의 원칙”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아놀드의 이러한 논의의 시대적 배경은 1866-7년에 일어난 노동자들의 참정권에 있다. 아놀드는 이 참정권이 아직 권력에 대해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바람에 종속과 복종이라는 강한 봉건적 습관을 잃은 노동계급이 매우 위험하게 되었고, 따라서 무정부적으로 변한 이 계급에게 종속과 복종의 감각을 되살려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왜냐하면 “교육이야말로 이러한 종속과 복종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문화를 향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더 이상 하이드파크에서 데모가 일어나지 않게 되며, 지배 문화의 ‘아름다운 빛’을 노동자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교육이란 노동계급에게 노동조합, 정치선동, 노동계급문화의 유혹 등을 물리칠 수 있을 ’문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더 짧게 말하면 ’문화‘는 대중문화를 제거하는 것이다.

아놀드는 이러한 다양한 제안을 ”법적 절차를 밟은 혁명“이라 불렀다. 물론 아놀드가 더 나은 사회, 즉 덜 지저분하고, 덜 가난하고, 덜 무지한 사회를 지향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게는 더 나은 사회란 자기가 속한 부르주아사회밖에는 상상이 안되었을 뿐이다. 결국 아놀드에게는 문화가 연구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 문화적 복종과 종속을 통해 획득된 사회질서와 권위가 주 관심사이다. 아놀드에 의하면 역사는 항상 ‘기반이 약한 대다수의 도덕적 실패“로 인해 사회가 파괴되었기에 노동계급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쇠퇴와 무질서의 충분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사고와 표현의 정수, 즉 수준높은 고급 문화에 의해 억제되어야 한다. 즉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 역할을 해왔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가진 사람이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있을 리 없다. 그에게 노동계급은 “맥주와 진(gin)과 쾌락”에서 허우적거리도록 운명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놀드는 정치를 기존 권위에 맹목적으로 내맡길 만큼 현실정치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거부하는 것은 항의의 정치, 즉 반대의 정치뿐이다. 이는 지배질서에 대한 매우 완고한 방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이것 때문에 아놀드적 관점은 영국을 중심으로 50년대 말까지 지배계급의 대중문화와 문화정치에 대한 인식을 지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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