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5) 레이먼드 윌리엄즈 (Raymond Henry Williams)

윌리엄즈(Raymond Henry Williams,31 August 1921-26 January 1988)는 <문화와 사회>, <장구한 혁명> 등의 책을 통해 문화주의의 이론적 체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우선 호가트와 마찬가지로 노동계급 출신인 윌리엄즈는 <문화와 사회>에서 문화에 대해 정확한 역사적인 자리 매김을 제의했다.

그는 19세기와 20세기의 주요 사상가들에게서 문화에 대한 사상을 통합하고, 문화에 대한 과거의 역사적 변화와 효과에 관한 문제에 일관된 반성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호가트와는 반대로 순전히 계급 지향적인 문화라는 개념을 거부했다. 특히 어떤 특수한 노동자 계급 문화라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이었다. 그는 부르조아 문화는 기본적으로 개인주의 관념을 지향하고 노동자 계급 문화는 집단적 관념을 지향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역사적 분석의 결과로 문화간의 상호작용과 공통성이 있음을 지적했다.그리고 그가 관심을 갖는 문화의 내용은 단순히 고급 장르로서의 문학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문화도 아닌 실질적인 사람들의 언어와 행동에 관한 것이다.

뒤이어 출간된 <장구한 혁명>을 통하여 토론의 장을 문화의 문학적 도덕적 정의로부터 인류학적 정의로 옮겼다. 여기에서 그는 문화를 의미들과 정의들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역사적으로 변형되는 ‘전 과정(whole process)’으로, 문학과 예술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특권화한 한 유형일 뿐이라고 정의했다.

윌리엄즈는 이어서 문화의 정의에 대한 세 가지 일반적 범주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첫째, 문화는 어떤 절대적 또는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이상적인 것’으로, 인간의 완벽함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나 그 상태라는 것이다.

둘째, ‘문서화’된 기록들, 즉 기록된 텍스트와 실천 행위로 이루어진 문화이다. 이 정의에서 문화는 인간의 생각과 경험들이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양하게 기록된 지적․상상적 작업의 유기체이다.

셋째, 문화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있는데, 이때의 문화는 특정한 삶의 방식에 대해 즉 “특수하고도 특징적인 색깔”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정서 구조이며, 그 세대의 문화”라고 했다. 특정한 집단이나 계급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 들로서 이 용어는 집단적, 문화적 무의식과 이데올로기의 중간에 있는 그 무엇을 지칭하는데 쓰인다.

문화 분석의 목적은 광범위한 기록 자료를 통해 내재된 이러한 정서의 구조를 읽어 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대중문화도 정서 구조의 한 형식이다. 구조, 즉 문화 산업제도와 그를 통해서 생산되는 지배 이데올로기적인 대중 문화물, 그리고 대중문화물을 구입하고 즐기는 사람들, 그 경쟁을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 바로 대중문화이다. 그러므로 윌리엄즈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은 총체적일 수밖에 없다. 생산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야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정서 구조에까지 파악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론을 내세우는 윌리엄즈에게 대중문화라는 개념 자체는 잘못된 것으로 인식된다. 우선 그에게는 대중이란 없고, 다만 사람들을 대중으로 보는 방식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대중사회론에서 살펴보았듯이 대중이라는 개념은 항상 사람들을 열등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능동성에 대해서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 구조의 희생물이 될 수 있는 사람들로서의 대중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그러한 정의 방식에 반대한다. 이런 차원에서 그의 대중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우선 대중문화란 나쁘다 라는 언술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화를 분석하는 기존의 틀 들은 이미 어떤 문화가 낫다는 결론을 지니고 그들의 작업을 행한다. 즉, 어떠한 것이 다른 것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것 둥은 결코 보편적인 가치라 할 수 없으며 이미 특수한 가치로 자리잡혀 버린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설명이나 가치 판단은 하나의 전제를 행할 수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지배적인 가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행하기도 한다. 그러한 가치들을 바탕으로 일반 사람들의 행위나 사상을 나쁜 것으로 판단하교 아울러 그들을 열등의식에 빠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 문화에 대한 학교에서의 교육내용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중문화란 학교 안에서 항상 비제도권적인 대접을 받는다. 진리와 미를 추구하는 학교의 교육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내세우는 진리와 미라는 도덕적 기준은 정말 보편타당하고 영원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학교가 전해주는 진리와 미는 지나치게 부르조아적이고 보수적이다. 그렇다면 지금 독자들이 지니고 있는 대중문화관은 학교나 부모들이 전해 준 것이지 자신의 것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

1977년 출간한 <마르크스와 문학>에서 윌리엄즈는 마르크스주의와 만남을 통한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개한다. 그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단순히 경제적 결정론적이지 않은 알튀세(Louis Pierre Althusser, 1918년 10월 16일 ~ 1990년 10월 23일)의 ‘중층 결정론’과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년 1월 22일 ~ 1937년 4월 27일)의 ‘문화적 헤게모니 이론’을 수용하게 된다. ‘중층적 결정론’은 문화적 힘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성취를 상호 경쟁적이고 모순적인 세력간의 갈등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윌리엄즈에게 있어 이 이론의 유용한 점은 살아 있는 경험의 독특한 복합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윌리엄즈는 그람시 이론의 두 가지 장점을 들고 있다. 그 하나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정의하고 형성하는 ‘전체 사회 과정’으로서의 ‘문화’의 개념과, 또 다른 하나는 의미와 가치 체계가 특정 계급의 이익의 표현과 투사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 개념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경험을 역사 속에서 이해하고 문화를 “특정 계급의 실재적인 지배와 피지배”로 인식함으로써 역사와 경험, 정치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일상 생활 속에 연결시키는 데 이론의 강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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