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 D. Lee, Kang Hwa, Gae-Myung University>
3) 대중문화와 정신분석학 – 영화를 중심으로
1970년대에 들어서서 활발하게 논의 되기 시작한 대중문화수용자에 대한 새로운 논의는 다양한 실증적 연구와 논쟁을 통해서 전통적인 수용자상을 변화시켰다. 그 결과 현대사회의 수용자는 선택성과 적극성에 입각한 이성적 존재로 이해되었고 이제 매체성 자체도 수용자의 능동성을 전제로 하여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볼 때 탄생된지 이제 겨우 한 세기를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매체에 비해서 영화가 집중적인 관찰의 대상이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각 개인, 즉 관객에게 극적인 변화를 일어킬 수 있는 이 매체 특유의 영향력에서 비롯되었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심리적인 혹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확인되는 이러한 영향력으로 인해서 영화는 오랫동안 위험한 매체로 백안시되거나, 역으로 그 영향력을 도구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였다. 흔히 ‘직접효과이론’으로 불리우는 이러한 견해 – 즉 영화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수용자로서 관객은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 는 계속 지속되었고 이러한 관점은 오랫동안 영화 텍스트의 수용자로서의 관객의 독특한 역활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직접효과이론은 일련의 다른 이론적인 가정들에 의해서 대치되었다. 여러 가지의 정교한 실험이나 관찰을 통한 조사연구는 영화매체에서 작용하는 상호소통, 즉 매스컴뮤니케이션의 요인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서 생산자의 특정한 의도에 대한 관객의 수용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그리고 일률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수용자간의 상호관계(상호의존성)을 전제로 할 때만이 영화의 영향력 가설은 성립하며 이는 달리 말해서 영화의 다양한 영향력은 메시지의 수용에 있어서 관객의 능동적 해석과 자기화의 과정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영화의 영향력과 그 수용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용자로서의 관객 개인의 사회적 경험과 정서적 성향, 메시지의 맥락, 윤리적 규범, 역사성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객 개인의 사회적 경험과 정서적 성향 등이며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 사용된 방법들이 정신분석학이었다.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대중성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영화는 이미 완전히 확립되고, 쉽게 동감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가진 생생한 시각적 표현을 제공한다. 이해의 용이함은 관객이 등장인물의 역할을 추정하고 빨리 그들과 효과적으로 일체감을 갖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영화는 전통적으로 아주 소박하고도 원초적인 감정과 정서에 호소해왔는데, 이러한 단순한 감정에의 호소는 다양한 교육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관객들에게 이 대중적 매체가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중의 하나였다. <영화 커뮤니케이션>, G.조엘, J.린톤 저, 김훈순 역, (서울: 나남, 1994), 148면 참조.
정신분석학이 사용되는 이유는 영화를 하나의 꿈, 다시 비현실적인 백일몽으로 설명하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가 꿈으로 설명된다는 것은 이 매체가 관객들의 감추어진 두려움과 욕망을 상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따라서 영화의 메시지는 무의식의 내용을 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라캉 등에 의해서 다시 정교하게 수정된 정신분석학적 방법은 영화에서의 메시지 수용과정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심리적 과정을 밝히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중문화의 영향력과 그 수용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용자로서의 관객 개인의 사회적 경험과 정서적 성향, 메시지의 맥락, 윤리적 규범, 역사성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진영에서 활발하게 제기된 ‘관객성이론’ Spectatorship Theory은 이러한 이론적 논쟁의 중요한 결산이었다.
사회과학에서 영화텍스트와 영화관객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는 영국의 영화잡지 ‘스크린’을 중심으로하여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알튀세, 특히 라캉의 영향력 아래 있던 소위 <스크린>파 이론가들은 관객의 주체성은 항상 언어 속에서, 언어를 통해서 확립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영화텍스트와의 만남을 통해서 어떻게 어떤 주체로 구성되는가를 분석하였다. 관객이 텍스트에 의해서 어떤 특정한 주체로 호명hailing당할 때 그 호명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주체성을 갖게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호명개념이 알튀세의 이론에서 비롯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문화연구에 끼친 알튀세의 공헌은 그의 이데올로기개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몇가지 정의를 내렸는데 그 중에서 다음의 두가지 정의가 대중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첫번째는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를 통해 실제 존재상황과의 관계를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즉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그들과 그들 조건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그들 조건 간의 관계를 실현하는 방식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을 주체로 구성해내는 기능이 있으며 이 기능에 따라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주체들은 ‘부름’ 즉 호명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의 육체적 행위에 종속되는 주체들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광고도 호명을 통해서 기능하며 따라서 그 광고의 의미와 소비패턴에 종속되는 주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 호명당하며 결국에는 사고 소비하고 또 사고 소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존 스토리 저, 박 모 역, (서울: 현실문화연구, 1994), 162 – 171면 참조.
보드리, 벨루르, 메츠 등 프랑스이론가들은 영화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스크린파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정신분석학을 차용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관객이 영화를 관람할 때 성적 차이, 언어 그리고 자율적 자아 혹은 주체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무의식적 과정이 수행되며 이것은 매우 일방적이며 또한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드리에 따르면 영화적 장치는 그 체계와 재현의 메카니즘을 통해 독특한 위치를 생산한다. 이 위치는 이데올로기적인데, 지배적인 서술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그 생산과정에서의 물질적 과정을 잊게함으로써 관객 자신이 영화이미지에 대해 영화적 텍스트의미의 저자라고 믿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적 현실효과라는 관념론과 공모하게 하며, 보드리가 ‘초월적 주체로서의 관객’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현상은 관객이 텍스트의 의미에 의해 구성되며 영화적 장치는 주체를 텍스트의 효과로서 호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정신분석학적 방법을 선구적으로 사용한 이론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파커 타일러는 헐리우드영화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헐리우드는 대중의 무의식이다. 증기삽으로 언덕 깊은 곳을 파올리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퍼내어져서는 완전히 텅빈 스크린을 채우는 데 제공되는 것이다. 천개의 소망들이 가장 비천하고 나쁜 헐리우드영화에 의해 상징적으로 충족되어지고, 영화의 탁월함이나 진지함은 보통의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데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G. 조엘, J. 린톤 앞의 책, 166면.
벨루르는 영화가 상상계와 상징계를 위해 동시에 기능하는 측면을 언급했다. 관객이 영화적 경험에 빠져들어가는 초기에는 영화적 장치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즉 영사기는 하나의 눈으로 기능한다. 이어서 두 번째는 이미지와 나르시시즘의 동일시함으로써 상상계에 빠져들게 되고, 이어서 세 번째로 상징계로 이동함에 따라 관객은 이미지를 욕망하게 된다. 메츠도 벨루르와 마참가지로 스크린과 거울의 유비관계에 의존하면서 관객을 자아와 상상력의 통합의 순간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관객은 스크린상의 이미지와 자아와의 상상적인 합일이 갖는 환상주의를 알게됨에 따라 결핍감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결핍을 영화를 통해서 메울수 없음을 절망적으로 의식하게 된다.
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위에서 제기된 이론들 중 많은 부분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것은 투기가 일방적인 방향이라는 것과 관객의 위치화에 대한 이론이 지나치게 남성적이라는 것 등이다. 이러한 쟁점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여성이론가들에 의해서 구체화되었는 데 여성 관객성문제에 대해서 독특한 접근을 보여준 로라 멀비의 논문에서 잘 드러난다. 이 글에서 그녀는 먼저 영화 내에서의 남성의 시점을 다루고 이어서 남성배역 혹은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관객의 반응을 다룸으로써 영화가 약호와 관습을 통해 어떻게 여성을 보여지는 존재로 구성하는가를 보여준다. 멀비는 자신의 분석에서 내러티브영화에서의 관객-텍스트 관계에 대해 남성의 무의식이 보이는 이중반응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명확히 했는데 여기에서 남성의 응시가 부여하는 이 여성적 형태의 섹스화와 대상화는 욕망의 반응일 뿐만 아니라 거세 불안 혹은 공포의 불안이기도 한 것이다. 카메라는 여성의 육체를 페타시의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거세 가능성을 부인하고 여성의 육체를 유사 팔루스로 만들어 관객을 안심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관객도 스크린에 등장하는 수동적이며 페티시화된 여성캐릭터와 동일시하거나 쾌락을 위해서 남성과 동일한 위치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멀비를 중심으로 하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페미니즘적인 견해에 대한 수정이 실버만, 스투들라, 도앤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들은 멀비의 남근중심사상을 반박하면서 관객의 위치화가 그렇게 고정되어있지않다는 것과,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굴종 혹은 수동성을 통해서만 쾌락을 얻도록 한다는 점에서 마조히즘적인 구조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서 이들은 여성관객의 입장이 이중적임을 지적하는데, 즉 여성관객들은 수동적인 역할을 위해서 마조히즘적인 위치를 채택하거나 능동적으로 남성영웅과 동일시하기 위해서 복장성도착자의 위치를 채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관객은 이중적으로 욕망하는 존재이다. 거울단계에서 여자아이의 첫사랑의 대상은 어머니지만 ‘정상적인 여성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녀는 아버지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게된다. 그러나 애초의 욕망이 쉽게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에 여성관객의 양성적인 위치화는 어머니/딸 관계에 있어서 중심적이다. 한편 남성관객들은 스크린 속의 여성에게 자신의 여성성을 투사함으로써 영화 속의 남성 캐릭터들 처럼 자신의 여성성을 억압한다. 따라서 남성관객은 남성캐릭터와 동일하게 수동적인 양식과 능동적인 양식을 왔다갔다하면서 자신이 양성적으로 위치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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