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Myung University

발터 벤야민 (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5 July 1892 – 26 September 1940)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대중문화를 철학적․미학적 분야에서 학문적 주제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터 벤야민 (15 July 1892 – 26 September 1940)은 이 학파의 주류에서 조금 벗어난 특이한 학자이다. 당시 많은 이론가들이 대중문화의 역할과 의의를 과소 평가하여 논의조차 하지 않았던 점과는 대조되는 사실이다. 그는 대중문화를 하급문화로 차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관한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현실성, 영향력을 문화적 흐름 속에서 읽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문화 특유의 생산적 측면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대중문화론을 설명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글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1935,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이라는 논문이며 이 글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우라(Aura)’라는 개념이다.

우리말로 하면 ‘분위기’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우라는 원래 종교적 개념이었지만, 벤야민에 의해서 철학적 개념으로 전화되면서 전통적 예술작품의 본질적 성격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벤야민에게 있어 아우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객관적 특성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을 수용자가 갖게 되는 주관적 경험 요소이다. 객관적 특성으로서의 아우라는 기술 재생산 시대 이전의 예술작품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원본성’을 의미한다. 또한 한번 생산하면 끝나고 비록 다시 똑같은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결코 같은 그림이 될 수 없다는 ‘일회성’도 담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기술 재생산 시대 이전에는 복제된다고 하더라도 ‘복제된 것’과 ‘진품’은 확연히 구별될 뿐더러 그 의미조차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시되는 것은 작품의 ‘진품성’이다. 따라서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특징은 원본성, 진품성, 일회성이며, 이것이 예술작품의 일회적인 현존재를 규정하는 아우라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만으로 아우라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우라는 객관적 속성 외에도 인간의 경험과 주관에 의해 형성되는 주관적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아우라는 ‘귀한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종교적 권위를 보장받아야 하는 중세시대에는 종교적 차원에서 이것을 사용하였다. 성당에서 마리아 상을 생각해 보자. 이 상은 원본성, 진품성, 일회성을 갖고 성당에 서 있다. 이것이 객관적 속성이다. 그러나 성당으로 들어가면 성스러운 그림들과 오묘한 빛깔을 그려내는 스테인드글래스로 둘러 쌓여 있고, 장중한 파이프 오르건 음악이 흐른다. 이러한 공간적 분위기는 마리아 상 앞에 있는 신자에게는 마리아 상이 단순히 하나의 물리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신비적, 종교적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정신적 존재로서 다가오게 된다. 신자는 마리아가 이 상에 현현하였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이처럼 종교적, 제의적 가치야말로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아우라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벤야민을 수용하는 사람은 위의 두 가지 속성 중 주관성의 관점에서 아우라의 몰락을 비판하고 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객관성으로서관성의 관점에서 아우라의 몰락을 비판하고 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객관성으로서 아우라를 강조하고 있다. 기술 재생산 시대에서 예술작품의 무수한 복사가 가능해 졌을 때,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고 있었던 아우라는 몰락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매체 미학 논쟁의 양대 줄기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객관적 특성으로서 기술 재생산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식의 예술은 진품성을 묻지 않으며 대량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원본의 부재와 일회성이 아닌 다수성이 특징이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신비감도 사라지고 아우라도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관적 입장에서 보면, 원본성, 진품성, 일회성이 없어진 기술 복제 시대에는 이전과는 다른 지각방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예술이 주술적 신비적 기능을 가진 것에 반해서, 복제기술 시대에는 상품적 가치와 전시적 가치를 지니게 됨으로써, 이전의 신비적 일체감 대신 비판적 수용태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생산의 논리에 따라 더 이상 예술작품은 성당이나 궁전, 귀족의 정원에 숨어져 있는 은닉의 대상이 아니라 다수가 감상할 수 있는 개방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예술의 자율성에 의해 탈신비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예술이 숭배의 대상이 아닌 유희의 대상으로 전환된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술적 복제에 의해 야기된 예술기능의 변화를 벤야민은 ‘예술의 정치화’라고 말하고 있다.

예술의 정치화는 예술의 정신화 혹은 예술의 미학화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예술을 정치와 사회와 무관한 것으로 보는 이른바 예술 지상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대안적 개념이 된다. 벤야민에 의하면 파시즘의 특징은 소유관계는 일체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회적 모순을 정신의 강조를 통해 제거하려는 특유의 정신주의에 있다. 파시즘은 예술을 미화하고 신비화하여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다.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예술 지상주의가 결국 파시즘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의 정치화’라는 관점에서 벤야민은 복제기술은 새로운 예술을 현실화시키고 변화시키는 매체 그 자체로 본다. 대량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기계 자체가 새로운 예술을 형상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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