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Myung University>

루카치 (Georg Lukács)

루카치(Budapeste,13 de abril de 1885 — Budapeste, 4 de junho de 1971)의 이론이 이후의 프랑크푸르트학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지만 그의 문화이론이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을 집대성했거나 가장 우수한 이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무엇보다도 그는 시대적 흐름마다 자신의 생각을 계속 수정하였기 때문에 그의 사상에서 일관성을 찾기란 힘이 든다. 특히 그의 주요 저서 이전에 출판된 글들은 마르크스주의보다는 낭만주의 철학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고, 그의 말년의 저서들은 스탈린주의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흔히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가로서의 루카치를 다루려고 할 때는 그의 역저인 <역사와 계급의식>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서도 이 책을 중심으로 루카치의 계급의식과 사물화에 대한 논의 등을 설명하려고 한다.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은 유럽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책이다. 그는 혁명의 조건이 성숙해간다는 객관적인 조건과는 달리 혁명이 퇴조해 가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 혁명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러시아 혁명이후 많은 혁명의 전조들이 유럽 대륙에 현실로 닥쳐왔지만 모두들 실패로 마감하고 말았다. 동시에 마르스주의의 위기가 도래했다.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혁명이 좌절되고 소멸해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루카치가 다루려고 했던 주요 관심사는 바로 좌절되고 소멸해 가는 혁명이었고, 따라서 이것은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결정주의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자본주의가 쇠퇴해 가고 노동 계급의 혁명적인 봉기가 있을 것이라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제 결정론적인 예고가 맞지않고 벗어나갔는데, 루카치는 그 이유를 프로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적 위기에서 찾았다. 루카치는 계급의식과 이데올로기적 성숙이 경제적 토대만큼이나 노동계급의 중요한 혁명의 관건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루카치는 자신의 계급의식에 대한 논의를 마르크스의 ‘객관적 계급 class-for-itself’과 ’주관적 계급 class-in-itself’이라는데 근거한다. 여기에서 객관적 계급이란 노동 과정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지 등의 객관적 조건에 의해 이름 붙여진 계급이다. 주관적 계급이란 스스로 자신이 특정 계급에 속함을 알고 그에 해당하는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루카치는 노동 계급이 객관적 계급에 머물지 않고 주관적 계급으로 승화될 수 있을 때 성공적인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계급의식이 단순히 객관적, 경제적 기초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간파한 것이다.

이처럼 계급의식이란 개인이 계급을 깨닫고 혁명의지를 지니게 될 때 그 본질을 지니게된다. 이런 점에서 계급 의식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합리적이고 적절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진정한 계급 의식으로의 도달은 이데올로기인 허위의식에 의해 끊임없이 방해받고 있다. 이데올로기나 허위의식은 어디에서부터 발생하는 것인가? 루카치는 계급의식 위기의 시작점을 자본주의의 상품 구조에서 찾는다. 물론 상품 구조를 통한 물신주의의 등장을 마르크스는 이미 그의 <자본론>에서 설명하고 있지만, 루카치는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은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음으로써 존재 가치를 지닌다. 동시에 상품은 물건 그 자체로서  쓸모가 있다. 이처럼 상품은 두 가지의 가치, 즉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 혹은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대부분의 생산은 사용을 위해서 존재했다. 옷은 입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음식은 먹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사용 가치가 가장 중요 가치로서 존재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성숙하면서 많은 생산품들은 팔리기 위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즉, 생산품들의 가치가 교환 가능성, 즉 팔 수 있느냐 혹은 없느냐로 결정되는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면서 생산품들은 자연히 사용 가치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하였다. 수억을 호가하는 고급아파트는 그것이 팔리지 않는 한 비워 둘 수밖에 없다. 판매되지 않으면, 즉 교환되지 않으면 그것의 가치는 없다. 그럼으로 해서 상품의 원래 가치인 사용가치보다는 파생적 가치인 교환가치가 더 중요한 속성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어떤 물건을 보는 순간 ‘이것은 적절한 가격으로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있겠구나’하고 자동적으로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물건의 본래적 가치 즉 사용가치는 은폐된 채 이 교환될 수 있는 성질 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 바로 그것이 물신화다. 이것은 물건 안에 숨겨진 자본과 노동 과정을 모두 빼 버리는 왜곡된 의식 과정인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 완성의 관건이 노동계급의 역사의식과 계급의식에 있음을 간파한 루카치는 계급의식이 사라진 이유를 이 물신주의에서 찾았다. 상품 안에 포함된 정신의 일부인 물신화가 바로 인간의 관계로까지 연장되어 인간관계가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면으로 발전되었다. 상품화로 인해서 교환 가치의 사용 가치에 대한 우위, 그리고 시장을 중심으로 한 합리화와 관료제 등과 같은 과학적 사고나 인간 관계 등이 이상적인 인간 관계를 가로막는 기제가 되고 있었다. 루카치는 이러한 현상을 물화(reification) 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물화는 사회에 대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이면서 총체적인 인식을 가로막는다. 그것은 계급의식의 반테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물화 작용을 타파해야 하며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루카치는 이처럼 이전까지 물화과정이나 물신화 과정이 단지 자본주의의의 부수적인 현상이라고 보던 관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문화, 그리고 그로 인한 소외 등이 자본주의의 중요한 성격으로 부상해서 학문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도 루카치로 인한 것이었다. 루카치가 혁명적인 실천의 주체를 노동계급. 즉 프로레타리아로 보고 그들의 계급의식에 관심을 보인 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계급 주체를 단지 경제적 조건의 반영으로 바라보던 경제 결정론에서 벗어나 계급 주체가 주체와 객체의 변증법적인 관계로 구성된다고 본 것도 획기적인 것이었다. 특히 노동 계급을 둘러싼 산업 사회의 지식이나 권위, 관료제도 등과 같은 합리화를 비판한 것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성의 도구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루카치가 이후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미친 정도는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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