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Myung University>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이론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러한 평가가 일정 부분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순기능적 차원에서의 재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져다 준 몇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살펴본다면,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중문화 혹은 일상생활을 통한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후기 산업사회가 개인을 분리시키고 타인과의 유기적인 연대를 단절시키고 공동체적 삶을 분열시킨다는 것은 동시에 이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포스트모더니즘이 위에서 언급한 역기능을 대변한다면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분석하고 치유하기 위한 장치로서도 대중문화는 유효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에서 묘사되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Blade Runner」에는 온통 광고 이미지로 도배된 세계가 등장한다. 팬암, 코카콜라, 버드와이저의 현란한 네온사인 속에 기모노를 입은 일본여인이 미소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가 인간과 세계의 본체적 실재가 아님을 관객들은 알고 있다. 따라서 첫 장면에서 보여지는 2019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실제 역사는 상실되어졌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사랑, 생명 모두가 허구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미래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현재에 대한 강력한 반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화는 원래 스펙타클한 매체이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성 여부를 떠나서 모든 사물의 외양을 보여 줄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영화 속의 이미지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그 이미지에 관객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그 이미지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서 주체와 이미지 사이에 상호작용이 발생할 때만이 이미지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전혀 다른 스펙타클함이 등장한다. 종래의 스펙타클함이 보여주던 아름다움이나 장엄한 서사적인 풍경들이 아니고 온통 현란한 볼거리로 가득 찬 무수한 기호가 등장한다. 이 볼거리 속에는 어떤 진지한 주제가 담겨 있다기 보다는 그냥 이미지의 기호만이 가득 차 있다. 이제 스토리나 주제는 부차적인 요소가 되어버린 채 어떻든 다른 텍스트와의 차별화 속에서 시각적 스타일의 독특함만 강조하게 된다.

두 번째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주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여러 번 언급되었지만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주체는 사유하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분열된 주체에 대한 극명한 묘사는 궁극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주체가 무엇인가를, 다시 말해서 분열된 주체가 새로운 사회구축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고뇌하기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서 <가위손>에서의 에드워드는 완벽할 정도로 포스트모던한 타자 관계를 보여준다. 에드워드가 살고 있는 고딕양식의 고성은 철저히 속세의 현대적 마을 풍경과의 고립과 단절을 상징한다. 이 영화에서 인간들 간의 의사소통 채널은 모던적 시각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가위는 바로 이러한 시각적 차원을 형상화하는 도구로 등장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에드워드의 세계가 수수함 그 자체로 채색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드워드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슬픔은 무엇보다도 내재화된 그의 사랑을 외화시키는 방법이다. 가위로 눈을 날리고 나무를 재단하고 여인들의 머리를 형상화시키는 에드워드의 가위는 역설적으로 너무나 이기적이고 타산적이어서 모두가 모두에게 소외되어있는 인간 관계를 단절을 상징하는 도구인 것이다.

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에게 어떤 명쾌한 해답을 주기보다 더 많은 사유를 요구하면서 문제를 유보시키고 있다. 많은 SF영화들이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의 예언적 경귀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만 이 모두가 우리에게 미래의 독해를 위한 해답이 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 궁극적으로 매우 혼란된 방식으로 제기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질문은 우리 자신들에게 현재라는 시간적 상황에서 이러한 질문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영화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문제겠지만, 적어도 텍스트 독해를 통한 결실과 그 결실에 대한 의미 부여라는 작업은 적어도 이 시대의 우리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지적 행위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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