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of Culture (이강화 박사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후기구조주의

1) 후기구조주의의 대두

추상적 구조나 체계에 대한 불신 또는 회의를 그 출발점으로 하는 후기구조주의는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을 계기로 드러난 구조주의의 한계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양 차대전의 위기상황 속에서 프랑스 철학이 직면한 지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적 운동 혹은 사고 유형의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이전의 형이상학적 철학에 대한 거부와 인간 개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실존철학이 대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존철학도 2차 세계 대전과 50년대를 거치면서 퇴조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구조주의가 등장한다. 구조주의는 ‘이성의 힘, 자율적 인간’이라는 데카르트적인 주체 개념을 거부하면서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에 속해 있는 인간의 현실성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시도한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구조나 체계를 분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인간행위나 그 결과를 자족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구조를 지닌 일종의 사회제도, 즉 의미 체계로 간주한다.

그러나 1968년 5월 혁명을 계기로 의미를 안전하고도 만족한 상태로 잡아둘 수 있다는 구조주의는 그 한계점이 드러났고 이제 후기구조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어떤 문화적 행위 내지 작품의 의미생성을 가능케 하는 체계, 관계 형식이라는 ‘구조’에 주목하는 것으로 특징 지워지는 구조주의는 그 자체 내에서 상이한 입장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등으로 변화를 겪게 되고, 이러한 변화의 결과가 바로 후기 구조주의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후기구조주의는 전기구조주의에 비해 정신분석이론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내적인 또는 내재적인 텍스트상의 구조에 대한 관심보다는 의미 창출을 가능케 하는 외적인 구조―사회적 과정, 계급, 성별 내지 인종적, 문화와 역사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구조주의자들이 언어나 이와 유사한 체계들이 어떻게 언어적, 문화적 표현이 본질을 ‘결정’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후기구조주의자들은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언어의 사용이 다른 사회적, 문화적 행위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권력’으로서 역할을 하게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구조주의가 진리를 텍스트 ‘배면에(behind)’ 혹은 ‘안에(within)’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에 반하여, 후기구조주의는 생산성으로서 독자와 텍스트의 상호 작용을 강조했으며, 불변적인 기호의 통일성을 비판하면서 고전적 데카르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통일적 주체―의식을 산출하는, 의미와 진리의 전거로서의 주체와 저자―개념을 비판한다. 또한 후기구조주의는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를 거부, 절대적 의미의 안정된 근원과 결론을 유보시키며 ‘차이’를 인식하고 중심에서 제외된 ‘주변과 타자’를 인정한다. 이러한 후기구조주의의 관점은 결국 추상적 체계성이나 총체성에 대한 거부, 데카르트적 주체 개념에 대한 거부, 그리고 언어의 지시적 기능에 대한 불신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후기구조주의에는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재해석한 자끄 라깡의 심리분석 이론, 일련의 저작들을 통해 언술과 지식과 권력과의 관계를 밝힌 미셀 푸코의 이론, 장 프랑수아 료타르의 포스트모더니티 이론,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페미니즘 이론, 프로이트와 칼 마르크스를 창조적으로 접목하고자 하는 루이 알튀세의 네오 마르크스 이론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들 중 데리다, 라캉, 푸코를 중심으로 후기구조주의의 기본입장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자크 데리다

후기구조주의는 사실상 자크 데리다, Jacque Derrida (July 15, 1930 – October 9, 2004)와 더불어 시작된 해체이론(deconstruction)을 통해서 발전하였다. 그는 해체이론을 주로 문학 분석에 적용하여 문학 주변의 철학적 가정들을 파괴하였다. 철학자인 데리다는 글쓰기(writing)에 깔려 있는 철학적 가정들이 어떤 식으로도 그것들의 의미의 보증이 될 수는 없으며 반대로 그러한 가정이 제시되어 있는 담론(discourses)들이 체계적으로 철학을 파괴해 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기호의 분리된 성격을 묘사하기 위하여 데리다는 차연(differanc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지연시키다’와 ‘다르게 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defer에서 연유한 것이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소쉬르는 기호가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에 의미가 발생한다고 보았지만, 데리다는 의미란 항상 지연되며, 스스로 완전한 모습을 결코 드러내지 않으며 항상 동시에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전에서 한 단어의 의미를 찾을 때, 의미는 끊임없이 지연됨을 볼 수 있다. 한 단어는 보통 열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에서 하나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거기에 동원된 단어들을 찾아보면 또 다시 거기에도 다수의 의미가 나열되어 있다. 이처럼 의미란 기표에서 기표로의 끊임없는 지시의 이동이라고 볼 수 있고, 따라서 고정되어 있지 않고 표류하는 것이며 단지 대화를 할 때나 작품을 읽는 맥락 속에서만 잠정적으로 고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리다에 의하면 초월적이거나 특혜를 누리는 기의(signifie)란 없으며, 의미의 영역이나 작용에도 한계가 없다. 기호라는 말 자체도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확하게 다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해체주의적 운동으로 발전되었고, 특히 미국에서의 문학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방식에서의 접근이란 아무 것도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유일한 지침으로 삼는 것이다. 의심과 의문이 원칙(doctrine)의 수준으로 승화된 것이다. 데리다는 텍스트 분석(특히 문학작품)에 있어서 해체적 관점을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특히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대립이라는 ‘폭력적 위계질서’를 비판하면서 양자 대립을 해체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유효하였다. 양자는 반대 개념이 아니라 각각 다른 편에 의해 자극을 받고 있다는 ‘보충적 질서’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 개념을 해체하기 위해 우월한 위치에 대한 위계 질서를 타파하고자 해체적 독서를 강조하였다. 데리다는 해체적 독서를 통해 독자는 작가가 의식하지 못하는 특정한 관계를 밝혀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생산적’ 독서를 강조하게 되었다.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독해방법은 바르트의 이른바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author)’과도 연관된다. 저자의 비독창적인 텍스트에 대해서 독자가 텍스트의 의미에 일시적인 통일성을 부여한다는 것 그리고 텍스트 속의 상호 교류라는 과정을 강조한 바르트의 사상은 고정된 기의나 기호보다는 기표 자체를 강조한 데리다의 입장과 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구조주의 분석은 텍스트 중심에서 독해자로 옮겨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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