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irits of 4.19 revolution : Freedom, Justice, and Passion for Life Still Uplifted <김광식 교수 칼럼>

<Seoul : Prof. Kim, Kwangsik>

4월은 참 잔인한 달이다. 가장 가깝게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로 인해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날이지만,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했던 마산 3.15 의거에 참여한 마산상고 입학생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 후에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을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일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번졌고, 결국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으며,과도정부를 거쳐 제2 공화국의 출범을 가져왔다.

이로써, 자국 국민 100만명을 학살한 주범인 이승만 독재 정권은 막을 내린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을 당시, 민주적 가치와 실행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지 못한 이유로 이승만 정권의 압제와 독재는 그 극에 달했다.

이승만정권의 독재를 규탄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국민의식의 민주화는 대체로 광범위한 민주적인 교육과 한국전쟁 후 급속한 도시화의 결과이다.

해방후, 민주주의 교육이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고, 도시 또는 준도시 사람들이 대중매체에 널리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원인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좋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치교육의 긍정적 역할은 많은 조사결과 젊은층들이 기성세대들보다 교육을 통해 더 민주화 되었다는 것을 그 당시에 쓴 한 편의 시에서 볼 수 있다.

<학도는 용감하다>
학도는 용감하다.
거룩한 피를 흘려
민주주의 만방에 전향하였네
독재는 물러나라 외치는 고함소리
방방곡곡 천지를 진동하였네.

한국적 도시화 현상은 일반국민의 민주적 사회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1952년 남한 인구의 17.7%만이 인구 5만 이상의 도시에 살았다. 그러나 이는 1955년에 24.5%, 1960년에는 28%로 늘어났다. 이러한 급속한 도시화는 확장된 교육, 한국전쟁중 지역에 인구학적 안정의 붕괴, 그리고 사회의 일반적 상업화 등에 기인한다.

이후 한국경제의 상업화 경향은 더욱 깊어진다. 정치세력이 여당인 자유당과 야당인 민주당으로 양극화됨에 따라 유권자들은 각자의 정치의식의 수준에 따라 누구를 반대하고 누구에게 투표하여야 할 것인가를 쉽사리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깨어있는 젊은이들의 정치의식은 분명하였다. 그들의 정치의식에는 진보당, 그리고 사회대중당, 통일사회당 등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그 당시의 민중의 마음을 읽으려면, 시 만큼 편하고 가까운 장르가 없다. 감정을 그대로 여과없이 내 놓기 때문이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1979년에 내놓은 같은 이름의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 수록된 신동엽의 대표적인 참여 저항시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준봉투표(conformity votes)’가 비도시지역에서 팽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화와 도시화의 증대에 따라 이러한 ‘준봉투표’는 급속히 쇠퇴했고, 이러한 현상이 자유당으로 하여금 더 ‘비민주적’ 수단을 강구하도록 부추겼던 것이다. 자유당이 더욱더 강압적 수단을 동원하면 할수록 공정한 선거에서 대중의 지지를 얻을 기회는 그만큼 더 줄어들었다.

1960년 3월 부정선거가 극에 달하였다. 이때 실제적으로 많은 공무원들이 이승만의 당선을 위하여 동원되었다. 이전의 선거에서는 경찰의 개입이 후보자등록·선전활동·투표과정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반하여, 내무부와 각 도의 경찰이 이제 실질적인 선거본부가 되어 투표총계를 조작하고 날조하였던 것이다.

선거전에서 야당선거원들은 계속해서 체포되고 탄압을 받았다. 반공청년단의 폭력단원들이 선거 당일 시민들이 투표권을 어떻게 행사하는가 감시하기 위하여 각 투표장에 나타났다. 많은 농촌지역에서는 3인조·9인조 등의 ‘조’가 형성되었고, 자유당에 대한 충성심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가 각 조의 ‘조장’이 되어 ‘조원’들의 자유당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책임졌다. 경찰은 공개적으로 자유당후보를 지원하였다.

왜냐하면 선거 결과는 경찰 지휘부와 내무부에 의해서 완전히 날조되었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 이승만은 총 투표수에서 당선에 필요한 3분의 1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다. 이기붕은 180만 표를 얻은 장면을 제치고 840만 표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시인 김수영은 그 당시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월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결국 그 대단한 권력도 한날의 바람이요. 먼지요. 풀일 진대, 2017년 한국의 4월도 권력의 맛에 취한 기득권 정치인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군중을 향해 자신을 찍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바라건대 2017년 4월은 온 국민이 희망을 가질수 있는  노래가 울려 퍼졌으면 싶다. 어둡고 암울한 시대를 지나, 엘리엇의 시에서 “죽은 자의 매장” 에서 처럼,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아주 가깝게 너, 나, 우리가 되어, 진정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새로운 Vision으로 한 발자욱 훌쩍 높이 뛸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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