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gnificance of Culture(이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Ph D. Lee, Kang Hwa, Gae Myung University>

2) 문화와 문명

문명과 문화는 서로 혼용되는 경우도 많지만, 문명은 기본적으로 야만과 대립되는 개념이고 문화는 자연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예컨대 야만 사회나 미개 사회와 대립되는 문명 사회는 의식주의 물질적인 생활에서나 도덕이나 종교 등 정신 생활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 발달된 사회이다. 보통 도시의 탄생과 문자의 발명은 문명 사회와 미개 사회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반면에 자연과 대립되는 문화는 인류가 자연 상태에 노동을 가해서 획득한 정신적, 물질적인 성과 일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통상 물심 양면에 걸치는 생활 양식과 내용 모두를 포괄하는 혼합체이다. 한 사회의 문화는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의, 식, 주에 관련된 모든 물질적인 것과, 행위와 정서와 사고의 양식들로 구성된다. 이것은 사람과 대상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및 사람들이 이룩한 지적, 정신적 자산 일체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공간적 관점에서 보면 문화는 순수한 동물적 본능과 자연 환경 사이에서 만들어진 완충물이며, 시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사회적 전통이다.
문명(civilisation)의 어원은 라틴어 civilizatio이다. civis는 ‘시민’이라는 뜻이고, civilis는 ‘시민의’란 형용사이다. civilizatio는 도시민 신분을 지니는 일, 또는 도시민 신분을 가진 상태 즉 ‘시민화’를 뜻한다. 이 말은 로마 시민을 다른 평민이나 야만족과 구분하는 civilitas(시민의 자격이 있음)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문명이란 개념이 ‘문명화된’이라는 의미 즉 ‘예절바른’, ‘세련된’이라는 의미로 주로 프랑스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계몽주의시대부터였다.

계몽철학자 돌바흐(D’Holbach)는 자신의 저서 <도덕과 정치의 사회체계 또는 자연적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이제까지 충분히 행사되지 못했다. 인간의 문명 또한 완성되지 못했다……..사려깊지 못한 군주들이 언제나 휘말리는 지속적인 전쟁보다 공공의 행복, 인간이성의 진보, 인간의 전체 문명에 더 큰 장애물은 없을 것이다.” 돌바흐가 보기에 계몽주의의 근본이념은 이성과 지식, 그리고 진보였다. 지식의 발전을 통해 그리고 통치자를 계몽시켜 제도, 교육, 법률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적 개혁운동의 방향으로서 문명은 설정되었다. 따라서 문명화는 하나의 상태일 뿐 아니라 계속 진행되어야할 과정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회가 문명의 과정에서 어느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볼테르는 계몽주의에 기초하여 근대적 의미의 역사철학을 제시하면서, 종교적 섭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인간의 구원을 진보로 대체한다. 이제 역사의 목적과 의미는 인간이 그의 이성을 통해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고, 좀더 많은 지식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성에 의한 문명의 창조야말로 역사의 궁극적인 의미가 된다. 이때의 문명이란 과학과 기술, 도덕과 법률, 교육과 산업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귀족 계층의 행동 방식, 생활 방식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이 개념은 중산 계층의 증가에 따라 그들의 이상적인 인간사회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게 된다. 이처럼 서구에서의 문명이라는 개념은 야만성으로부터 탈피하여 합리적, 이성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업적이나 행동양식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다른 민족, 다른 문화에 대한 서구인의 우월감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문명’의 의미가 서구의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지는 않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문명이 주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기술적, 도덕적, 사회적인 사실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와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동시에 하나의 과정이나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으로 이해됨으로써 문명은 여러 민족들간의 차이점보다는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사실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문명은 인간의 외면적인 그리고 질료적인 사실을 의미하는 반면, 내면적인 정신적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단어는 문화이다. 독일의 문화개념은 운동이나 진보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민족적인 차이와 집단들의 특성을 유달리 부각시킨다. 따라서 문화를 주로 정신적, 예술적, 종교적 사실들에 적용하는 대신, 이것과 구별되는 문명으로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사실들간에 분명한 선을 그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의 이러한 구별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지적처럼 영토가 오랫동안 여러 지방들로 분할되어 있었기에 서구의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늦게 정치적 통일과 안정을 이룬 독일민족의 특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근대사회의 선두주자였던 프랑스나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무엇이 프랑스적인가’, ‘무엇이 영국적인가’라는 질문은 중요한 쟁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근대사회의 후발국이었던 독일의 입장에서는무엇이 독일적인가’라는 질문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처럼 ‘문명’과 ‘문화’라는 개념의 사회적 발생근거를 분석해보면 프랑스의 ‘문명’개념에 18세기 프랑스 시민계급의 사회적 지위가 반영되어있듯이, 독일의 ‘문화’개념에는 18세기 독일 시민계급의 운명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혁명이후 프랑스에서는 시민계급이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독일의 경우, 이후에도 오랫동안 시민계급은 형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폭넓은 시민계급의 뒷받침을 기대할 수 없었던 독일 지식인층의 자아의식의 표현인 교양(Bildurg)이나 문화(Kulture)는 자연히 순수하게 정신적 영역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활동의 장소 역시 대학에 국한되었다. “정신과 책은 그들의 도피처 겸 안식처였고, 업적과 학문, 예술은 그들의 자존심이었다. 정치적 활동이나 정치적 목표설정은 이 계층에게 주어져있지 않았다. 따라서 상업적 문제들, 경제질서와 같은 질문들은 그들의 생활과 사회여건으로 인하여 그들에게는 주변적 문제였다.” 반면에 중농주의를 산출한 프랑스의 사회적 토대는 궁정과 궁정사회였다. 당시 프랑스에서 문명인(homme civilise)이란 궁정사회의 이상적 인간형과 같은 것이었다. ‘문명화된(civilise)’은 ‘교양있는(cultive)’, ‘세련된(poli)’, ‘개화된(police)’과 거의 동의어였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모든 인간적 문제들과 더불어 사회적, 경제적, 행정적, 정치적 문제들도 궁정귀족 지식인층의 사상적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최근에 와서 역사철학자들에 의해 문명은 국가단위의 사회보다 큰 문화적 공동체나 문화적 단위의 사회를 의미하게 되었다. 즉 문명이란 예컨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도 문명, 중국의 은(殷) 문명 등이 보여주듯이 국가의 성립, 계급의 분화, 문자의 발명을 수반한 정신적 업적을 의미한다. 대규모의 공고한 조직화, 제도화, 통합화가 이러한 문명의 특징이며 이것은 ‘도시 혁명’의 필연적 결과였다. 나아가서 ‘정신 혁명’을 거친 고대의 그리스 문명과 중국 문명이나 ‘과학 혁명’을 겪고 난 이후의 근대의 과학 기술문명은 모두 도시 문명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근대 과학 기술문명은 문명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형태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문화의 발전 형태라 볼수 있는 문명은 문화보다는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문화는 문명을 구성하는 개별적 요소이며 그 양상이다.
그러나 문명과 문화의 관계는 위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총체와 개체, 복합성과 단일성, 내재와 외형, 제품과 재료의 포괄적 관계이다. 예컨대 문명이 총체로서의 피륙이라면 문화는 개체로서의 재료인 날줄과 씨줄이다. 이처럼 문화와 문명의 구별은 문명의 비교 연구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문제는 이 두 개념이 그렇게 분명하게 구별되어서 사용되지 않는 점이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문화와 문명은 대립된 개념이 아니라 연속적인 것이며, 문명이란 하나의 진보된 ‘특수한’ 문화의 양상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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