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GaeMung Univ. Prof. Lee, Kangwha>
영화에 대한 비평적 논의는 영화가 예술로서 본격적인 자리매김을 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예술적 장르의 한 분야로 인정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표현양식에 관한 논의보다는 표현 내용, 즉 도덕적이거나 미학적 성격에 논의가 집중되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영화를 문학이나 연극과 같은 서술적 양식으로 이해하였다는 것과, 이러한 양식에 대한 전통적 비평기준이 구조적 분석이나 설명 보다는 미학적 혹은 도덕적 가치평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구의 지식인들이 영화의 예술성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예술품의 창작주체와 관련된 문제였다. 낭만주의 이래 서구 미학이론의 주류는 창작주체로서의 예술가들을 그 중심에 두는 것이었다. 이러한 예술가 중심의 미학이론은 예술품을 형식적인 표현 양식에서 뿐만아니라, 예술가의 천재성이 보여주는 예술적인 비젼과 표현성의 화신으로 이해하였다.
이렇게 볼 때 수많은 기능인들의 철저한 분업에 의한 결합과정이라는 영화 특유의 제작방식은 어떤 위대한 영화 창작 과정 전체를 주도하고 조절하는 한 개인의 비젼과 통일된 지성의 소산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영화란 결국 결과물인 고로 완전성에 대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조립라인을 통한 합성물에 불과 하였다. 제작자가 대본과 감독과 배우들을 결정하고 이어서 촬영기사와 조명기사 그리고 편집기사, 음악 담당자, 그 외 많은 분야의 기술자들이 모여서 만들어 진다는 점에서 영화 창작에서의 진정한 주체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서명하는 작품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지는 극작가나 소설가와는 달리 누가 영화라는 결과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가? 창작 주체에 관한 이러한 오래된 논쟁은 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평론가들에 의해서 해결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작가주의 (politique des auteurs – 정확하게 번역하면 ‘작가정책’이 된다) 이론이다. 영화에서의 ‘정책’이라는 단어는 알렉산더 아스뜨뤽의 논평 “새로운 아방가르드의 탄생 : 카메라 스타일” 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아스뜨뤽은 흔히 ‘카메라 만년필 (La Camera Stylo)설로 불리워지는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카메라를 창조적인 감독이 자신의 사고와 감성을 표현하는 펜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정책이란 예술가 자신의 사상 표현 혹은 카메라로 하여금 삶의 철학, 세계관을 기술하기 위한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의미하였다. 동시에 ‘작가주의’ 이론 만큼 영화이론사에서 논쟁을 불러 일으킨 것은 없을 것이다. 혹자는 50년대 중반에 생성하여 60년대 후반이후 그 영향력이 서서히 사라져 버린 이 이론을 전 시대의 낡은 비평방식으로 취급하기도 하지만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논쟁의 결과들 –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 정신분석학, 형식주의 등 -들을 고려한다면 작가주의 이론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모습을 달리한 채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1954년 당시 프랑스의 소장 평론가였던 프랑소아 트뤼포는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 du cinema) 誌 에 ‘프랑스 영화의 한 경향’ 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 잡지는 처음부터 앙드레 바쟁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소위 ‘까이에 그룹’이라고 불리우는 일단의 평론가 집단, 즉 프랑소아 뜨뤼포, 자크 리베트, 장-룩 고다르, 끌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등이 주된 기고자들이다. 이들이 나중에 모두 영화 연출 쪽으로 전향하게 됨으로서 이른바 프랑스 누벨바그 (nouvelle vague) 라는 새로운 조류가 형성될 수 있었다. 트뤼포는 이 글에서 과거 추앙받던 감독들을 격하시키고 새로운 영화전통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때까지 프랑스 예술 영화의 거장으로 인정받던 르네 끌레망, 앙리 끄루조, 줄리앙 뒤비비에, 마르셀 까르네 등-젊은 평론가들은 이들이 만든 영화를 아버지의 영화 (le cinema de papa)라고 불렀다 – 을 프랑스 영화를 망친 감독들로 단죄하였는데 그 이유는 심리적 사실주의에 탐닉하여 영화를 문학적 전통의 예속물로 만들었을 뿐, 진정한 영화의 전통은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신 문학적 소재를 단지 자기 취향으로 변조하기보다 특유의 생명력과 숨결을 불어넣는 로베르 브레송, 장 꼭또, 장 르노아르 등을 추앙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트뤼포를 비롯한 젊은 평론가들이 정의하는 영화작가(auteur du cinema)란 문학작품을 소재로 하여 단순히 그럴듯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서 자신만의 개인적 특성을 부여하는 감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은 개인적인 영화의 개념, 즉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감독이 영화 뒤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는 영화의 개념을 옹호하였다. 이리하여 문학적 테마와의 상관성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이른바 ‘질의 전통’(La Tradition de La Qualie)을 거부하면서 영화특유의 표현방식이 얼마나 구사되었느냐가 영화의 진정한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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