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trolls in Culture ~ How to Read Cinema?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과 접근법 10< 이강화 교수>

Movie : Lincoln

<Daegu: Prof. Lee, Kangwha>
2. 유사성과 상사성

다른 한편, ‘원본의 종말’은 원본에서 유래한 이미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나아가서 원본을 대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때의 이미지는 단순히 원본의 모방이 아니라, 원본의 부재를 대신하는 자립적인 이미지이다. 그렇다면 역사가의 역사 연구와 서술은 과거와 역사의 모사의 관계가 아니라, 다른 역사가에 의해서 씌여진 역사와 자기가 새로 쓰는 역사 사이의 차이의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다. ‘유사성(ressemblance)’과 ‘상사성(similalite)’이라는 개념을 여기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유사성’은 원본의 존재를 전제로 해서 그것의 재현에 충실할 것을 목표로 하지만, ‘상사성’은 원본의 존재에 얽매이지 않고 ‘복제와 복제 사이의 닮음과 차이’를 주목한다. 상사성은 과거라는 원본과 다른 텍스트로서의 역사와 차이를 드러내면서 닮음의 관계를 반복하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리하여 과거라는 원본과 이에 대응하는 ‘유사성’을 기준으로 해서 사료들을 수직적으로 위계 질서 짓는 역사 서술방식은 이제 지양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상사성’이 역사 서술의 의미 코드로 전환될 때, 차이들은 대등한 관계에서 의미의 투쟁을 벌이는 역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릴 수 있다.

이리하여 역사소설, 역사영화 그리고 역사드라마는 원본과의 일치를 지향하지 않는 하나의 역사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여기에서 역사극의 존재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것은 이미지로서의 역사가 학문으로서의 역사보다 더 강력한 역사 효과를 발휘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역사극의 즐거움이란 과거라는 원본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상상력을 매개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 있고, 이것이 일반 대중들이 역사극을 즐겨하는 주된 이유라면, 역사극의 다양한 버전, 다시 말해서 동일한 소재의 역사극이 계속해서 리메이크되는 이유 역시 이러한 ‘상사성’에 입각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PEJ2ROm7BM

예를 들어 연산군, 장희빈과 명성왕후 등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드라마 혹은 영화로 만들어져서 그 때마다 상당한 인기와 화제를 불러 일으켰는데 이것은 동일한 소재가 여러 개의 버전으로 리메이크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역사가들은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영화는 역사의 다양한 연관관계를 단일 구조를 가진  내러티브로 환원시킴으로써 과거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사장시킨다. 뉴스 영화를 비롯한 다큐멘터리도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다큐멘터리도 외적 실재의 직접적인 반영이 아니라,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도록 영상 자료들을 하나의 이야기체로 편집하여 꾸민 것이기 때문이다. 또 문자 역사는 남아 있는 사료를 여러 가지로 해석함으로써 자유롭게 역사를 상상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반면에, 영상으로 담아내는 역사의 정보량은 시간상의 한계로 인해서 몇 십 년 혹은 몇 백 년 동안 일어난 복잡하고 긴 역사를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으로 압축해서 이야기하는 단순화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영화는 기본적으로 허구를 창조하는 예술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실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역사학이 될 수 없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역사가에게는 중요할지 모르지만, 영화 제작자에게는 사실 보다는 미적 효과가, 그리고 흥행 효과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사실을 추구해야 하는 역사학과 허구를 만들어내는 영화와의 만남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이러한 주장들을 다른 말로 다시 설명해본다면,

첫째, 특정한 공동체의 전체 역사를 기록하는 통사적 교재를 제외하고는 역사가들의 연구 역시 특정한 시대를 한정해서 연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가들 역시 자신들의 논리적 전개를 위해서 역사적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연관 관계 모두를 고찰 할 수가 없고, 대신 이렇게 다양한 연관 관계 중에서 무엇이 결정적인 요인인가를 밝히는 것이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임무임을 인정하고 있다.

둘째,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역사가의 이야기도 ‘언어적 허구(verbal fiction)’를 내포한다. 역사가가 특정 언어를 통해서 역사를 구조화함으로써 그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차원에서 역사 서술에 사용하는 문자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그것을 굴절시키는 프리즘의 요소를 갖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같은 언어의 기능을 인지하는 역사가는 언어문자 자체가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 안에 이미 자신의 진리체계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어난 역사’와 ‘쓰여진 역사’는 불일치하며, 그래서 역사는 계속해서 다시 쓰여지는 것이다.

물론 역사 영화가 역사를 대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계속 제기될 수 있다. 그리고 역사극이 역사 자체가 될 수는 것은 분명하다. 사극을 역사와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다. 꿈이란 현실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기호다. 기호가 실재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 독자적인 의미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꿈은 현실에서는 드러내지 못했던 가상의 의미들을 상징적으로 표출한다.

그러나 E. H 카가 역사가의 해석을 사실이라는 단단한 속 알갱이를 둘러싼 과육으로 비유하면서 이미 결말이 난 과거의 사건에 살을 붙이는 것이 역사가의 해석임을 강조하였듯이, 역사 영화 역시 나름대로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면서 이야기를 꾸민다. 아니 역사극은 이러한 해석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이상의 상상의 나래를 편다. 다시 말해서 역사극은 사실의 역사가 이야기하기를 멈춘 곳에서 꿈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역사학은 역사적 상상력을 사실의 범주에서 철저하게 제외시켰다. 그러나 사실성을 앞세우면서 억압한 이 상상력을 문학, 드라마 혹은 영화는 꿈을 통해서 회복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역사극을 통한 과거의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 역시 단순한 재미의 추구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역사로서 닫혀있는 텍스트를 무한한 해석이 가능한 열려진 텍스트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이지 과학적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역사의 궁극적인 목표도 사실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아니라 인간의 자기인식일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삶과 역사의 진실을 각자의 독특한 방식으로 독자에게나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역사와 영화는 궁극적으로 같은 길을 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역사와 영화가 서로 접하는 ‘접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전문적인 역사가들도 영화작가의 ‘영화로 역사 쓰기’가 역사가들의 ‘전문적 역사 쓰기’ 이상으로 의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딱딱한 역사책 대신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고하고 토론할 수 있다면 이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위해서나 정신의 풍요함을 위해서 결코 무의미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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