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Open Sergeant Park’s Case! 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박준기 중사 사건 다시 재조사 하라!>


박준기 중사 (1989년 2월 28일 하사관 입대- 1991년 중사 진급 후, 1994년 사고후, 1995년 11월 자상으로 전역) 는  지난 22년을 외롭고 고달픈 싸움을 해 오고 있다. 그의 잃어버린 다리의 진실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해 오고 있다. 두 다리를 잃은 지체 부자유자가 된 그는 자신의 기억의 퍼즐과 그때 당시의 군 수사자료사이에서 박중사의 삶을 송두리 째 앗아간 원인을 찾고 싶은 것이다.

사고 발생후, 11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이 왜 병원 침대위에 누워 있었는 지에 대한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을 잃어버린 채 목숨의 줄기만 붙들고 있었다.

1995년 1월 20일, 사고 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서야 군에서 작성한 교통사고 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박 중사는 ” 병원 3층 옥상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병원 수위가 발견하였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 라는 질문에, 그는 “전혀 기억 나지 않으나 어머니가 병원 10층에서 뛰어 내렸다고 하여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자신의 기억에 자신의 행동으로 뛰어내린 것이 아닌 ‘어머니가…” 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을 인지해야 할 것 같다. 본인은 그 사실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 못하는 일이며, 누군가에게서 들어서 안 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한다고 계획을 세우거나 또는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 몸의 일부인 뇌가 그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군을 믿었어요. 군은 어떤 거를 나쁜 쪽으로 하지 않고, 사실만을 말할 거라고요. 저는 비록 사고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틀리게 조사하지 않았을 거라 믿었어요.” 그렇게 군을 믿었다.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군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춘천 전문대학교도 군대에서 보내준 것이라고 그는 코리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렇게 십 수년을 살면서 그의 기억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다리의 정확한 병명은 압괘상이었다. 무엇인가에 눌려서 생길 수 있는 상처란 뜻이라고 한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박중사의 몸 구석구석에서 골절부위가 발견되었고, 성한 곳은 한 곳도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된것이다.

그러던 그는 다리의 골수염으로 인해 지난 1997년 왼쪽 다리(무릎 아래) 를 절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오른 쪽 다리마저 절단해야 했다. 물론 그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여인도 눈물을 머금고 떠나 보내야 했으며, 그의 곁에는 오직 가족만이 그의 처절한 몸부림과  함께 자기 살이라도 내어줄수 있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는 어머니와 그의 형이 있었다.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 뿐만아니라 온 가족의 삶이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다리 수술을 한 후, 충격때문에 서서히 뇌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김중사 (현병 조사관) 과 함께 별관으로 이동했고, 그 장소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박중사 ( 춘천 전문대학교 출신, 춘천 전문대는 별관 옆에 있었다고 한다) 는 김중사가 ‘주차장으로 가기위해서’ 그곳으로 이동한다는 말에, 이곳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데 ‘왜 이곳으로 가느냐?’고 대꾸했다가 갑자기 2층 에서 김중사에게 명치를 맞고 계단으로 굴러 떨어졌던 것과  그 후, 헌병 한 명과 병원 수위장 홍씨가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 라고 헌병 김중사에게 물었을 때, 김중사는 ‘발을 헛디뎌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말을 했다. 그때 홍씨는 병원의사 누구도 당신 말을 믿지 않을 것이요! 라고 말했던 것과 그럼 어떻게 하느냐? 고 물었던 헌병 김중사의 말을 기억해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교통사고때문에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는 확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군 수사기록들을 요청해서 조사하던 중, 그는 점점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자신은 누군가에 의해 폭행을 당했고, 그 후, 또 다른 폭행을 당한 뒤 결국 두 다리를 절단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해 낼 수 있었다.

한겨례(4/19/2015)에 따르면, 박씨는 1999년 국방부에 수사자료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수사자료를 들고 그는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 수위장 홍씨를 찾았다. 별 소득은 없었으나, 그의 무의식중에 뱉은 한 마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수위 홍씨가 저를 보더니 ‘어? 살아 있었네’ 라며 놀라더군요. 그에게 제가 발견된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상한 건, 수위가 그 위치를 매끄럽게 기억하지 못하고 한참을 헤맸어요.” 라고  박중사는 말했다.  박중사는 코리일보 인터뷰에서, 2002년께 모 방송사 프로그램의 의뢰로 최면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헌병 둘이 쓰러진 저를 끌고 나와 병원 밖에 만세 자세로 눕혀놓고 어떤 승용차를 가져와 밟고 넘어가더군요. ”

물론 최면은 과학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박씨도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그후, 2군단 사령부에 재조사를 요구했다. 물론 기각되었다. 2006년에도 재조사 를 요구했고 역시 또 기각되었다. 통지서엔, “군 복무시 즐거웠던 기억들만 추억으로 간직하시고, 새로운 삶을 힘차고 재미있게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라고 적혀진 글자대로 박중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었다.

박중사가 “사고당시 입고 있었다는 외투는 사라지고 헌병은 어디 있는 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 박중사 형은 덧 붙였다.

SBS 의 궁금한 이야기 Y에 따르면, ” 지난 2011년 기억을 되찾은 박씨는 군 헌병대 폭행후, 2 차 가해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쩌다 두 다리를 잃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 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SBS 에서 사고차량의 주인이자 박중사의 학교 동기인 김00 씨를 만났다.

허수경: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 씨가 사고 직전까지 함께했었던 이가 있습니다. 바로 대학 동기인데요..

[동기]:  삼겹살 뷔페 집에서 소주 2병, 맥주 3병 정도 를 서로 나눠 먹고, 휴게소 앞에 차를 세우고, 돌아보니까 내 운전 석에 중기 형이 앉아 있는 거예요

허수경:  술을 마시고 대학동기의 차를 운전한 박 씨는 운전 미숙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답니다.

[동기]:  제가 크게 다치고 병원 매트에 옮겨준 상태에서 (준기 형이) 어딘가 전화한다고 하고 나갔어요.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허수경:  그 뒤 나 씨가 응급수술을 받는 사이, 건물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병원 3층 옥상에 쓰러져 있는 박 씨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제작진:  선생님(박준기 중사 대학동기)은 뭐가 가장 궁금하세요?

 [동기]:  멀쩡하게 전화하러 가서 죽을 정도로 다쳐서 왔으니까..

 허수경:  멀쩡하게 걸어서 병원에 온 박 씨가 어쩌다 양쪽 다리를 모두 잃게 됐는지는 [동기]도 의문이라는데요..

여기까지만 봐도 이 사건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군 수사에서는 초동 수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멀쩡한 사람이 두 다리를 잃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2011년 잃어버린 기억을 완전히 다 찾게 되었다.  헌병중사가 발로 박중사의 명치를 찾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주 정확히 기억해 내었을 뿐 아니라 SBS 제작팀과 갔을 때 떨어진 장소까지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

폭행가해자로 지목된 김00 헌병 중사는 전역 군인이며, 휴대전화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한겨레는 말한다. 그런데 같은 헌병으로 손 00씨는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엇갈린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는, 경찰에서, “12월 18일 0시 10분께 경찰의 교통사고 접수 연락을 받고 출동했고, 병원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박중사가 투신한 이후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중사와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중사의 기억에서, 그는 분명히 김중사 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했고, “경찰과 대화중, “경찰이 신병인수인계서를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으니 경찰서에 연락해 서류를 가지고 오라고 할테니 자신은 순찰을 위해 당장 출발할 수 없겠냐고 하자, 헌병은 자신에게 행정권이 없고 잠시위에 행정권이 있는 계장님(김중사)이 도착하지 그분에게 말하라고 했다.” 라고 되어있다.

그러면 사고는 정확히 몇시 몇 분에 일어난 것일까? 교통사고가 난 후, 병원에 환자가 실려온 시간은 언제인가? 그리고 병원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는 계속 이 사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문제 제기:

1. 시간의 차이점 :  교통사고후 병원에 온 시간, 경찰 사고 접수후 헌병이 병원에서 경찰과 만난 시간, 군 수사기록 주장대로 박중사가 10층에서 3층 옥상으로 어깨도 들어가지 않는 좁은 틈으로 자신을 집어 넣으며 추락한 시간?

2: 왜 김중사는 보호자도 아닌데 박중사가 수술 중일때, 양측 발목절단을 6 차례나 강요했을까?

3: 창문의 크기에 대해 국방부의 번복된 주장 (13cm/24cm/30cm)과 함께 10층 창문의 사이즈는 바뀌지 않고 1983년 이래 똑같은 크기인 14cm 인것은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

<기사 참조>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7392.html#cb

http://m.wsnews.co.kr/a.html?uid=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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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세 가지 문제를 가지고  한 주 동안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 보시길 부탁 드립니다. 누군가 억울한 문제를 당하면 우리는 한 사람의 머리보다는 여러 사람의 머리가 더 낫고 힘을 보태 결국 문제를 푼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 모두 박중사를 생각하며, 그의 가족을 생각하며, 그리고 수 많은 박중사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 그 어둠의 그림자를 하나씩 들어내 보도록 합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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