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Establish Hangul as National Treasure No. 1! <이선훈 박사: 일본에서 한국을 말하다>

<Japan : Prof. Lee, Sunhoon>

한글을 국보1호로 지정해야 한다.

조선시대에도 동시통역관 또는 번역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확실한 것은 세종대왕이 1446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하기까지는 조선뿐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모든 기록들은 중국의 문자인 한자로 이루어진 중국어 문장인 한문으로 작성 되어 왔습니다. 물론 이두라는 문자로 기록된 것들도 전해지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기록은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심지어는 한문의 작성을 최고의 지성이며,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던 조선의 사대부 조차도 중국어, 즉, 중국말을 사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어, 이들의 대부분은 지금의 동시통역관과 같은 역할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조선의 말을 중국어의 문장인 한문으로 동시통역하였지만, 현재에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중심으로 동시통역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동시통역과 번역에 관한 역사적 사례는 서구문명사회에서도 쉽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서구문명사회에서의 동시통역의 사례는 성경을 에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의 성경은 히브리어, 아랍어, 그리고 그리스어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405년 히에로니무스가 정통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를 완성시켰고, 이후에 이는 서방교회의 표준성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1979년에 교황 바오로 2세의 교황령 ‘성경보고(scripturarum Thesaurus)에 따라 현재의 로마 카톨릭교회는 개정된 ‘새 불가타 성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제들은 주로 라틴어로 작성되어 있는 성경을 라틴어를 알지 못하는 신도와 청중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읽어 주며, 기독교를 설파하였습니다. 특히,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의 중세시대에는 기독교가 왕권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며, 라틴어로 작성되어 있는 성경을 토대로, 동시통역관인 사제와 귀족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1522년과 1534년에 마르틴루터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당시의 독일인의 언어로 번역하여 출간함으로서 엄청난 시대적인 변화가 발생하였고, 시대적인 변화의 물결을 차단하려는 라틴어의 동시통역관들인 사제와 귀족의 혹독한 탄압을 받는 신교도가 탄생하였으며, 이에 따라서 교황의 권력은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황의 권력약화는 각국의 왕과 귀족의 권력강화를 가져왔지만, 신교도들의 산업활동에 따른 부의 축적과 함께, 청교도혁명, 영국의 권리장전, 프랑스의 시민혁명에 이은 미국의 독립선언을 통해서 전제독재에 의한 계급사회를 부정하며, 민주적 정치형태와 인권을 중심에 둔 시민의식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조선시대은 승정원이란 기구를 두어,  한문의 동시통역을 주업무로 하는 임무를 부여하였습니다. 승정원은 왕명을 출납하는 기관으로서, 도승지는 이조, 좌승지는 호조, 우승지는 예조, 좌부승지는 병조, 우부승지는 형조, 동부승지는 공조를 분담하여, 각각의 담당부서에 대한 기록은 물론이고 왕이 내리는 교서나 신하들이 왕에서 올리는 모든 문서를 거치게 하여, 국왕의 비서기관의 역할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국왕의 자문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들뿐만이 아니라 사대부와 양반계층은 입신출세를 위해서 평생을 한문을 읽고 번역하는 일에 몰두하였으며, 중국어의 문장인 한문과 관련된 동시통역관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독점하며, 국가를 지배해왔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한문을 이용하여 절대적 지배자인 왕과 백성들간을 격리시켜, 왕의 권력을 무력화하며, 사실상 자신들이 국가의 권력을 독점해왔다는 점에서는 서구문명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의 전제군주인 세종대왕이 1446년에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반포한 것은 조선과 한민족은 물론이고, 인류의 역사에서도 매우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의 표는 훈민정음 어제 서문의 한글부분과 그것을 현대 한글로 번역한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훈민정음 어제 서문 현대 한글 번역문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과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위의 표와 같은 서문으로 발표된 훈민정음은 당시의 조선에서 사용되던 말을 중국의 말로 기록하기 위한 한자를 사용한 한문으로 번역하지 않고, 말 그 자체를 그대로 기록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후 한문을 고수하는 사대부들에게는 경시되기도 하였으나, 조선 왕실, 일부 양반층, 서민층을 중심으로 소멸되지 않고 이어져오다가 1894년 갑오개혁에서 한국의 공식적인 나라 글자가 되었고, 1910년대에 이르러 한글학자인 주시경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전제군주인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하게 된 이유로서 위의 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중국어의 문장인 한문을 어렵게 배우지 않고도, 쉽게 배울 수 있는 훈민정음을 이용하여 백성이 자신의 뜻을 문장으로 만들고,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며, 한문으로 인해서 발생되고 있는 한문통역관들로 인한 왕과 백성간의 소통장애를 극복하고, 한문통역의 과정에서 발생되는 왕의 절대권력의 분산과 사칭을 방지하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해 봅니다. 따라서 한문과 관련된 정치지배구조의 개선을 의도했던 전제군주인 세종대왕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권력유지와 왕권의 확장에 따른 자신들의 권력약화를 방지하기 위해서 훈민정음의 사용을 최대한 제한했을 것이라는 추론 또한 가능해지며, 사대부들의 이러한 노력은 조선시대가 멸망에 가까워 지던 1894년의 갑오개혁에까지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한글전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문의 해석과 한글로 작성된 문장에 난해한 한자를 혼용하는 것이 자신의 지식인으로서의 능력과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통해서 왕의 말을 통역에 의해서 어떠한 변화도 발생시키지 않은 상태의 문장으로 백성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또 동일한 방법으로 백성의 의사를 왕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 본질적으로는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기본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지나친 과장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왕과 백성간에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왕의 통치가 국민에게 어떠한 반응과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를 왕이 파악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훈민정음은 조선시대의 전제정치와 계급사회의 폐해의 일부를 제거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었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필자는 일본에서 생활하며, 주변의 몇몇 일본인들로부터 최근에 한국에 가면 간판들이 모두 한글과 영어로만 표기되어 있어, 일본인으로서 매우 불편하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어떤 저명한 일본인교수는 한국이 한자를 모두 없애버려, 역사를 단절시키고, 한자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의사전달은 물론이고 한자와 관련된 문학작품과 학문의 발전에도 상당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발언에 직면한 적이 있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일본인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 한 일본의 신문사설을 한자를 모두 카타카나와 히라카나로 바꾸어 표기하여, 읽어 볼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일본인 교수는 한자가 전혀 없는 일본어 문장을 읽고도 본래의 문장의 의미를 거의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본래 한자가 포함되어 있던 문장에서 한자를 조금 더 줄일 수도 있고, 한자어로만 표기를 해오던 단어를 카타카나와 히라카나로 표기하더라도 그렇게 큰 무리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서적과 같은 것을 해독하거나 쉽게 접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한자에 관한 학습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추가해 왔습니다.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한자에 대한 학습이 필요한 사람은 필요에 따라서 부가하면 되는 것이며, 모든 국민이 어려운 한자와 한문으로 되어 있는 과거의 역사서적을 읽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한자와 한문을 기본적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으며, 또한 한자와 한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에 따라서 번역을 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상용한자를 지정하여 난해한 한자의 남용을 제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냐고 했으며, 영어문장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영어를 미국과 영국사람의 수준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식민지배에서 해방되어, 72년이 경과한 오늘까지 대한민국의 국보1호는 숭례문입니다. 숭례문을 국보1호로 지정한 것은 일제식민시대의 총독부에 의한 것이며, 일제는 임진왜란(1592년) 당시 왜병이 이 숭례문을 통해 조선의 도성에 입성하였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의미를 두고 남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국보와 보물의 지정에 관한 치욕적인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문화재의 지정시스템을 변경하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는 한글이 대한민국의 국보1호로 지정되어야만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문화재지정 문제와 관련된 일제 식민시대의 치욕을 말끔히 청산하고,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유물인 동시에 통일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한글을 우리 스스로 재평가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글은 한반도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 살아온 사람,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가장 소중한 재산입니다. 필자는 최근의 선거전에서 한글이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욕설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심각한 오염을 겪고 있는 것에 매우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의 한글이 욕설로 오염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욕설을 하며, 스스로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과 그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상들의 전개에 따라서 풍요로운 표현방법을 개발하고 사용되어지는 한글의 모습을 한반도는 물론 해외동포 여러분과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코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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