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sure : Learning Life Through fishing~ 낚시로 살펴보는 내 삶- 수요 수필 12<조준희 기자>

인생의 조우 내 동생(마늘밭의 추억 종결편)

싸움을 말려주신 어르신 덕분에 맞아 죽을 뻔한 상황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4~5명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숫적 열세로 필자가 시라소니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이길 수 없었다.

* 전투 팁 :아군보다 적군이 세 배 이상 많을 땐 무조건 튀어라.

동네 청년들을 야단을 친 어르신은 다시 내게 오셔서 “젊은이, 차가 빠졌으면 빼 달라고 도움을 청하지 이게 뭐여~~?”하고 밭을 쳐다보았다.

“헐!!!!!!!!!!”
싸우고 난리를 치느라 밭은 보지도 않았는데 그제야 밭을 둘러보니 마늘밭이었다.

마늘 추수를 한 후에 한 다발씩 묶어서 여기저기 모아 놓았는데 제 동생이 올라가는 길을 찾는다고 왔다 갔다 하며 타이어로 전부 짓이겨 놓은 것이다.

어두울 때라 보이지 않았던 거죠. 작물이 없어서 그냥 노는 땅인 줄 알았던 것이다. 순간 정신이 띵하며 지갑 속에 돈이 얼마 있나 살펴보니, 당시에 금요일 날 회사에 입금 못한 돈이 있어 약 150만 원 정도 있었는데 짜장면이 7~8백 원 할 때이니 꽤 많은 돈이었다.

일단 배상할 돈은 확보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으나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우리 실수로 모르고 한 짓이라고 하나 땀 흘려 열심히 농사지은 분들에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수확물을 저 꼴로 만들어 놨으니 미안한 마음과 함께 죄송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고 차라리 맞을 걸 그랬다라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무조건 어르신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어르신은 일어나라고 하는데 이런 큰일을 저질렀는데도 부드럽게 대하시며 관용을 베푸시는 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만감이 교차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싸울뻔 한 청년들은 당신의 조카며 손주며 아들이라고 소개하셨다. 마늘 추수가 끝나서 서울에서 마늘을 가지러 왔다고 말했다. 다시 그들을 마주보며 인사를 하고 바라보니 모두 착하게 보였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변상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극구 사양하였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돌아서 오는데 어르신이 불렀다.

“젊은 사람…근데 이 높은 걸 어찌 올라 갔누~~?”
하고 물으시는데 우리가 올라간 방법을 말씀드리니 막 웃으시며..” 재주들도 좋구먼” 하고 껄껄 웃으셨다.

필자도 계면쩍게 씨익 웃으며 인사를 여쭙고 낚시하던 자리로 돌아왔는데 영문도 모르는 친구와 동생은 어디 갔다가 왔냐고 막 찾았다고 도리어 제게 뭐라고 했다.(이것들을 죽일 수도 없고..)

속은 부글부글 끓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양들은 웃고 떠드는데 감정을 가라앉히며 아무 말도 안 했다. 저는 화나면 우선 화를 삭이느라 조용해진다.

동생은 아까 시킨 점심이 도착해서 먼저 먹고 제 것을 남겨 놨다고 먹으라고 하는데 반찬이 간장 마늘종, 고추장 마늘종, 마늘..마늘. 계란 후라이 하나 빼고는 모든 밑반찬이 마늘이었다.

마늘 때문에 고초를 겪고 온 마당에 마늘만 봐도 지긋지긋한데 반찬이 온통 마늘 일색이라니…
반찬 담아온 쟁반을 웃고 있는 동생의 얼굴에다 확 던져버리려다가 꾹 참고 일단 앉아서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해주니 둘이 웃고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다.

뭐 이런 것들이 있는지…

나도 무릎 꿇고 빌면서 눈물을 흘린 생각을 하니 창피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셋이 한바탕 웃고 말았다.

우리의 마늘밭 테러를 용서해주신 어르신에게 너무 미안해서 동생과 그 다음 주에 소고기를 사서 들고 다시 내려갔다.

어르신 댁을 찾아 소고기를 전달하며 다시 사죄와 감사 인사를 올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며 서울 톨게이트를 나와 속도를 내는데 뒤에서 경찰차가 사이렌을 켜고 따라왔다. 이런..

차를 세웠더니 속도위반이라고 그냥 자기들 해장국 값이나 달라고 말했다. (20여년 전 경찰은 이런 건 다반사였습니다.)

알겠다고 하고 지갑을 여니 10만 원 짜리 수표뿐이어서 만원짜리가 없었다.
동생도 없다고 했다.

수표를 보여주며 경찰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수표뿐인데 거스름돈 있으세요?”

경찰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아… 이사람들이… 빨리 가세욧!”

자기가 거스름 돈 없었으면서 왜 나한테 화를 내는건 지…

이 사건 이후로 트라우마로 인해 진천의 “초평저수지”는 다시는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후일 동생이 한국에 돌아오면 한번 가볼 예정이다.

그후, 동생은 몇 번이나 차를 빠뜨렸고 필자는 그때마다 부모님 몰래 다 해결해 준 해결사 형이되었다는 이야기로 마늘밭의 추억은 우리 형제에게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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