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ozi’s ‘Untouched Nature (無爲自然的)” Solution to Healthy Mind and Soul 56<강원대, 윤금자 교수>

<Korea: Prof. Yoon, Geum Ja>

장자는 우리들의 마음에 고착된 주관적인 편견이나 독선을 비워내야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오직 다른 사람들과 소통의 길은 마음을 비워내는 데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장자는 마음을 비우고 氣로 사람들을 대하라고 했다. 氣란 주관적인 마음이 맑게 비워진 자연성의 상태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같은 것이다. 즉 순수한 마음의 느낌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곧 우리 마음의 거울을 닦는 것으로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심재란 모든 삶의 보편적인 기준을 성심으로 삼아 평가하는 이기적인 자아의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성심은 누구에게나 의식 속에 내재되어있다. 그런데 그 성심을 마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만능으로 생각할 때 문제가 된다. 여기서 비움은 그 자체 허무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의 生氣가 피어나는 공간으로써 작용한다.

『장자』「인간세」, “唯道集虛, 虛者.”

『장자』「인간세」,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장자』「인간세 12」, “瞻彼闋者,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적응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맞추려는 마음이다. 이 세상의 대다수의 존재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적응하기 위하여 우리자신에 가면을 씌우고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갈 때가 있다. 우리를 내세우면 여러 가지로 부작용이 따르고 힘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우리의 존재를 진실하게 내보이면서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적응하는 것이 무조건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조화를 맞추면서 그들의 삶을 잘 성찰하면 다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우리의삶의 틀에 집어놓고 판단하여 선호도를 따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의 존재방식의 고유한 틀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방식으로 이끌려고 한다. 이렇게 강제로 이끈다고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자신의 고유한 자연성이 있듯이 상대도 고유한 자연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진솔하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폐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혹, 시이성인,
抱一爲天下式,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포일위천하식, 불자견고명, 불자시고창, 불자벌고유공,
不自矜故長, 夫惟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불자긍고장,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고지소위곡즉전자, 기허언재. 성전이귀지. (노자 22장)

노자는 도를 잘 체득한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과 적응하기 위하여 신중하고 순진하며 소박한 모습으로 주변사람과 환경을 세심히 살핀다고 하였다. 자연 생태계가 도(자연)의 섭리에 의해 끊임없이 생명을 부여받고 조화를 이루듯이 우리 인간도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생기를 얻고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내팽개치거나 다른 존재에 의해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본연의 존재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평가하고 우리들의
삶의 방식으로 강제로 이끌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나름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강제성에 큰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古之善爲士者,微妙玄通 深不可識
고지선위사자,미묘현통 심불가식
夫唯不可識,故强爲之容
부유불가식,고강위지용
豫焉若冬涉川,猶兮若畏四隣
예언약동섭천,유혜약외사린
儼兮其若容,渙兮若氷之將釋
엄혜기약용,환혜약빙지장석
敦兮其若樸,曠兮其若谷
돈혜기약박,광혜기약곡
混兮其若濁,孰能濁以 靜之徐淸
혼혜기약탁,숙능탁이 정지서청
孰能安以久 動之徐生,保此道者 不欲盈
숙능안이구 동지서생,보차도자 불욕영
夫唯不盈 故能 蔽不新成
부유불영 고능 폐불신성 (노자 15장)

장자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불일치가 가져오는 불행한 결과를 ‘새’를 통해서 설명하였다. 노나라 임금은 새의 고유한 특성을 살피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새에게 적용했기 때문에 새는 죽어버렸다. 자신의 방식으로 본다는 것은 사물을 대상으로 이분법화 시킨 것이다. 새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적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해의 적정선은 자연스럽게 다가가 이해하고 도움이 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이해의 한도를 벗어나 그들의 삶에 깊이 간섭할 정도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늘과 땅은 편애함이 없으며 만물의 자연스러운 생장에 맡긴다” 고 하여 모든 것에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모든 사물은 자신의 생장을 자연의 도에 맡기고 따르듯이, 우리도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 간섭해서는 안 되며,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나치게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꾸미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하여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인위적으로 꾸미는 것 그 자체가 힘겨운 일이며, 힘겨운 일에서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장자』「지락」, “且女獨不聞邪?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臠,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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