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Choson Dynasty Began with Deaths of Devoted Servants of the Koryo Dynasty: Meaning Behind Tombs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정권을 찬탈한 세조가 제일 먼저 한 일 은 우선 단종복위를 주장하는 충신들을 포섭하거나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죽이거나 멀리 유배를 보내는 것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백부, 숙부, 조부, 종조부, 사촌까지는 노비로 보내지거나 관노로 고을에 영속되거나 병사로 충군당했고, 5촌 이상은 유배형을 당했다. 이들 충신들의 아내나 딸은 관노나 기생으로, 그리고 세조 추앙파의 신하들의 노리개로 전락되었다고 전해진다.

단종의 복위를 주장하며 세조의 부정적인 왕위찬탈에 끝까지 죽음으로 맞선 충신들을 사육신이라 칭하며, 정치권을 떠나 살면서 단종 폐위의 부당함과 맞서서 싸운 충신들을 우리는 생육신이라 한다.

사육신 중 하위지는 “세조가 죄를 시인한다면 살려주겠다고 하였으나 스스로 사양하고 죽음을 택했다. 사육신과 그 가족들은 본인과 아버지, 형제, 아들, 손자, 조카까지 모두 연좌되어 처형 당했고, 생후 1년, 2년된 어린 남자아이는 입에 소금을 채워 질식사 시키거나 나이가 찬 뒤에 처형하였다.”(위키피디 참조)

사육신(死六臣)은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박팽년, 김문기를 일컫는 말이다. 사육신이 세조, 덕종, 예종 삼부자를 연회장에서 척살할 계획으로 성승, 박쟁을 별운검으로 세조 부자의 뒤에 세웠다가 3부자의 목을 벨 계획이었으나, 거사 동조자인 김질이 장인 정창손의 설득에 넘어가 거사를 실토한다. 정창손은 이 사건을 세조에게 고하고, 단종복위 운동 관련자들, 500-800 여명이 처형되거나 학살된다.

사육신 중 현재 박팽년과 하위지만이 직계 후손이 살아 남았으며, 기록에 의하면 박팽년의 사위가 사육신의 사체를 거두어 노량진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죽음으로 그들의 고려를 지키고 싶었던 충정심을 헤아려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이번 역사탐방 기획에서,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과 함께 누가 과연 충신인지, 누가 과연 충신을 가장한 간신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동작구 노량진 공원에 속해있는 사육신묘는 6.70년대에 서울 시내 학생들의 소풍장소였고, 세월의 길이만큼 더 깊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아래서 빛을 보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 기자와 일행은 찾는 이 드문 겨울 날 바삭바삭 남겨져있던 낙엽을 밟는 소리마저 조심스럽고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조선조의 최고 충신들의 무덤을 보며 가끔은 과거를 돌아보며, “남보다는 나” 를 더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과  “빠름”이 최고의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동작구청은 사육신묘 역사관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수험생을 위해 공부방, 청춘 남여를 위한 쉼터인 열린 청춘극장, 노인들을 위한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 모든 행사가 무료로 주민들과 수험생, 그리고 우리처럼 고국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코리일보는 매년 1~2회에 걸쳐 한국의 역사를 비롯한 전 세계의 역사 탐방을 하고 있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역사 탐방을 계속적으로 할 계획이다.

이번 역사 기획 탐방에는 Corih Kim 기자와 그녀의 남편 Jay Kim 이 함께 했다.

코리일보/COREE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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