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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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m Google : Credit to Salvador Dali)

<Korea : Prof. Lee, Kangwha>

< 역사에서 기억으로, 정치에서 문화로>

지난 호 까지 영화와 문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호부터는 역사와 기억, 정치와 문화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들어가는 글

일상에서 기억과 역사라는 말은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기억은 한 개인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나 느낌 등 심리적 현상과 관련되는 반면, 역사라는 말은 대체로 평범하지 않은 거대한 주체들, 즉 민족이나 국가, 계급 등 이전부터 존재해온 어떤 집단적이고도 숭고한 흐름과 관련된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실되거나 변질되기 마련이며 이에 대한 문자적 인식을 토대로 시작된 것이 역사이기에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기억의 수호자’로 보았다. 그럼에도 역사가 기억을 토대로 한다는 인식은 오래된 것이고 이러한 전통적 인식은 오늘날까지 일정부분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억과 역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차이는 시간에 대한 인식과 표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억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나 단절은 사라지고 과거가 곧바로 현재화된다. 반면 역사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된다. 역사는 과거의 종결을 전제로 한다. 역사는 과거를 되짚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변화와 차이점을 인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를 객관적 대상으로 인식하기를 원한다.

시간에 대한 인식과 과거에 대한 표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역사와 기억의 관계는 긴장과 갈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과거와 거리를 두고 그것을 지적,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와 현재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간과하고 양자를 정서적으로 동일시하는 기억에는 항시 오류와 오용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기억은 역사의 견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역사가들이 보기에 기억은 개별적이고 자의적이고 산만하며 너무 원초적 감정에 빠져 있어서 신뢰할 수 없기에, 보다 체계적인 논리적인 과거의 배열인 역사의 규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리하여 오래도록 기억은 역사의 견고한 질서에 편입된 채 오로지 역사 원료의 공급처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런데, 최근 학문적으로 가장 관심의 주제 중 하나가 기억이다. 연구재단들은 기억에 관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른바 구술사라는 방식을 통한 사적인 기억의 기록과 다양한 학술적 결과물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기억은 단순히 역사학에 국한된 주제가 아니다.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종교학 그리고 문학, 예술, 대중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보편적 주제이다. 특히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심리학적 전회는 이러한 추세를 가중시켰다. 이리하여 인문, 사회과학 여러 영역에서 ‘역사’라는 자리에 ‘기억’이 대신하였고 드디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기억은 역사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2. 본 글

1) 근대 역사학과 새로운 역사학

기억 혹은 회상이 역사를 대신하여 과거 사실에 대한 발언자로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역사학의 흐름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세기 말 독일의 역사학자, Leopold von Ranke 랑케 이후 근대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른바 ‘실증주의 역사학’이라고 칭해지는 이러한 흐름들은 서구 각국의 학문풍토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된 관점과 방법을 공유하였다.

첫째, 이른바 ‘과학’으로서의 역사는 과거 사회의 전체상을 재구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실재의 이면에 은폐된 구조가 그 실재의 설명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구조결정론에 바탕을 두었다. 이러한 방법은 어떤 지식의 확실성이란 그것이 기초를 둔 중심개념을 통하여 드러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이것은 과학적 역사란 역사연구가 객관적 실재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지향해야 한다는 랑케 이래 근대 역사학의 기본전제였다.

둘째, 역사가들은 사실과 허구, 역사서술과 문학의 이분법적 구분을 상식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역사가들도 역사연구가 객관적 실재에 곧바로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과거의 사실이 그것의 기록 및 그 기록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겪는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E. H. 카는 역사적 사실이 객관적 실재의 투명한 반영이 아니며 그것은 역사가가 현재의 문제의식에 의거하여 과거의 사실들에서 그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카의 상대주의도 객관적 실재로서의 과거를 전제로 하기에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 사이의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셋째, 과학적 역사는 무엇보다도 진보의 맥락에서 과거를 해석한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근대사회의 형성 및 그 구조에 관심을 기울였고, 근대성의 역사적 체현이야 말로 과학적 역사 혹은 역사학의 중심테마였다. 과학적 역사는 진보로서의 역사에 대한 모더니즘적 확신을 공통적으로 전제하였다. 이리하여 역사 연구는 과거 사실에 대한 자료의 수집이라는 일차적이고 실증적인 차원을 넘어서 역사에서의 진보라는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면서 제기된 새로운 역사서술의 흐름은 이러한 특징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역사학은 전체에서 미시적인 주제로, 구조에서 개인의 능동적인 행위로, 그리고 정치에서 문화로 연구의 초점을 바꾸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친 참혹한 전쟁을 겪은 후 대두된 이른바 신문화사 또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은 이전의 과학적 역사학이 추구하는 방법론과 이념에서 탈피하려는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새로운 역사학은 전체사 서술을 내세우지 않는다. 즉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생각해왔던 구조나 중심개념을 해체함으로써 사회 환원론적 설명의 가능성을 봉쇄한다. 역사인식에서 전체의 준거가 될 수 있는 ‘중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전체사 혹은 구조사의 패러다임에서 미시적 개인의 일상생활과 문화로 연구대상을 옮기게 된다. 이제 역사학은 구조와 중심이 자리했던 곳에 일상의 문화와 상징이 대신한다. 여기에서 문화란 사람의 행위유형 또는 그 행위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규제하는 프로그램으로 이해된다. 문화의 사회사가 사회의 문화사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역사학은 문화라는 텍스트에 나타난 사회적 표현들의 의미를 해독하며, 이를 통하여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역사학은 객관적 실재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거나 그 자체를 부정한다. 역사학에서 언어와 실재의 괴리에 대한 강조는 언어학 및 문예이론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근대적 사유에서 표상은 사람이 실재를 이해하는 인식의 전부로 간주된다. 그러나 소쉬르 이래 언어 이론은 언어가 실재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고. 이런 관점에서 역사인식 역시 과거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낯익고 친숙한 공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리하여 새로운 역사학은 과거와 그 인식 문제에 관하여 담론적 명제를 내세우게 된다. 과거의 사실은 저기에 있다. 그러나 그 사실(실재)은 항상 담론을 통해서 존재한다. 즉, 역사가는 그 실재를 그것에 대한 담론적 구성물 안에서만 인지하고 경험할 뿐이다. 이와 같은 명제 아래서 객관적 실재와 허구 사이의 구분은 무의미하게 된다.

이제 역사와 문학, 사실과 허구의 구분은 불필요하며, 역사서술은 역사적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하여 은유를 사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1980년대 이후 기억과 회상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지대해진 또 다른 이유에는 기록을 축적하기 위한 기술적, 자연적 저장 장치의 역할과 기능의 변화라는 시대적 상황도 있었다.

첫째, 과거의 기록 형식을 훨씬 능가하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전통적인 기억의 위상과 기능이 전환점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을 통해 무제한의 시·청각적 이미지들이 범람하게 되자 이러한 ‘가상현실’ 앞에서 역사는 ‘객관성’이라는 종래의 신성한 권위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기억의 기능을 수령하는데 있어 문자 매체나 아날로그 매체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대신, 컴퓨터가 중요한 정보 저장 수단으로 대두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기억 모델, 즉 저장과 작동이라는 컴퓨터의 기억 모델이 일반화되었다.

이리하여 저장 기술 매체에 매몰되는 것을 지양하면서 그 기술에서 새로운 형식의 선택과 자아 성찰 방식을 획득해야 하기에 역사기록에서의 기억에 대한 물음이 새롭게 도출되는 것이다.

둘째, 이처럼 다양한 기억 저장 장치들이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으로 인간의 기억과정은 저장과 작동이라는 기술 매체의 단순 체계와 다르다는 것이 부각되었다. 기억과 인간 두뇌의 정보처리 방식에 대한 관심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시작되었는데, 여기에서 인간의 기억은 창조적 과정이고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뇌의 기능 방식에 대한 신경 생물학적인 인식에서 볼 때는 잘못된 기억조차도 순수하게 심리적인 착각이나 억압이 아니라, 생리학적인 이유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점도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두뇌 연구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저장 모델의 보편화와 인간의 기억 행위의 복잡성 사이의 긴장이라 부를 수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기억이라는 주제가 대두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의 대두라는 역사학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존의 역사라는 제국의 권력 하강을 불러왔다. 역사가 그간 누려온 권력의 비밀은 집단적 정체성이라는 자산에 있었다. 역사는 오랫동안 이른바 ‘집단적 시간’이라는 논리적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인간 삶의 근거와 방향성을 나름대로 제시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이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세계화’ 물결은 기존의 집단 정체성을 크게 침식하였고, 민족, 국가, 계급 등과 같은 전통적 집단의 긴밀한 유대감은 급격히 사라져갔다. 이제 역사는 기껏해야 ‘문화재’의 형태로 전시화 되었고, 공공성으로서의 역사는 개인적인 향수, 또는 오락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이처럼 인식론적 차원에서 역사 인식의 합리성과 객관성이 근본적으로 불신 받게 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지식으로서의 역사학의 위상문제가 논의 되었고, 존재론적 차원에서 객관적 사건이나 구조의 전개가 아닌 과거를 재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narratives)로서 기억이 새삼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비로소 기억은 기존의 역사를 넘어서 과거의 다양한 사건과 사태를 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재현방식으로 그 역할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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