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istory to Memory And From Politics To Culture 2<이 강화 교수의 일요 문화 산책>

<Korea : Prof. Lee, Kangwha>

2) 탈역사와 문화적 역사들

포스트모던적 시각에서 볼 때 역사적 사료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하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된 서술은 실은 권력의지에 의해 구성된 담론일 뿐이기에 사료는 사실(fact)이라고 말 할 수 없다. 포스트모던적 역사관은 랑케 이래 역사학을 주도해온 실증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역사가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과거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밝혀야 했다. 역사에 대한 그들의 논의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왜 기억되는가를 밝히는 것으로 모여진다.

예를 들어, 홉스봄은 우리가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대부분 근, 현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졌음을 강조한다. 나아가서 국경일, 의례, 영웅이나 상징물들에 의해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전통의 창조’는 역사적으로 허구이며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홉스봄은 ‘현재’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과거의 이미지 혹은 담론들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국민국가의 등장과 민족주의 담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창조된 전통들이 어떻게 이질적인 사회적 존재들의 공통분모를 만들어내고, 이른바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창안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무수한 기념물들은 이러한 불확실한 과거의 사건과 현재 우리의 기억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며, 우리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통해서만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역사적 시간이란 그 자체가 만들어진 것이며, 끊임없는 변화의 체험에 근거를 둔 근대적 ‘기억 문화’와 크게 다를바 없다.

이처럼 ‘탈(脫)역사(posthistoire)’라는 새로운 기억 문화에서 각 개인 및 특정 집단은 더 이상 역사라는 공식적 시간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영위하게 되었고, 역사학은 시간 영역에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특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새로운 역사학이 근대성 자체에 회의를 표명하면서 진보로서의 역사를 비판하였고, 근대사회 형성에서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는 주제들 – 근대, 진보, 이성, 자유 등 – 을 신화 파괴적인 방법으로 거부하였고 그 결과, 역사해석 방법의 해체와 역사학의 정체성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일정 부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근대가 초래한 혼돈과 이로 인한 근대성에 대한 깊은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의 역사의식을 낳은 비판 이성이나 실천 이성을 대신하는 이른바 ‘냉소적 이성’의 발로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반드시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위축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 이유는 기억에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역사학은 보다 확대된 지평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예가 보여주었듯이, 역사가들은 이제 기억을 통해서 그동안 이른바 ‘숭고한’ 역사에 짓눌려왔던 다양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한 사회의 집단기억을 형성하는 데 자신의 학문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역사의 죽음은 결국 의미 있는 희생이었고, 역사가들은 역사의 폐기물 위에 다시금 기억의 새싹이 돋아남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억과 역사를 상반된 양극으로 보느냐 동일시하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활성적 기억과 비활성적 기억의 관계를 회상적 기억의 두 가지 상보적 양태로 파악하는데 있다. 활성적 기억을 기능기억이라고도 하는데 이 기능기억의 중요한 특징은 집단 관련성, 선택, 관련 가치, 목적의식 등이다. 역사학은 그것에 비하면 이차적 질서의 기억, 즉 현재와의 활성적 관계를 상실한 것을 기록한 기억들의 기억이다. 이것은 가치 있는 지식이나 활성적인 경험이 훼손되고 상실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학이 그런 비활성적인 유물들과 주인 없는 유품들을 보존하고 있을 뿐임을 자각할 때 기능 기억과 역사학은 새롭게 연결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약화 추세는 기억의 부흥을 위한 바람직한 조건을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공적인 성격을 띠어왔던 ‘보편사(History)’는 이제 다양한 미시적 영역의 ‘역사들(histories)’로 분할되었고 이제 남게 된 것은 개개인이나 개별집단의 주관적 체험들뿐이다. 즉, 역사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억압되거나 무시당했던 사적인 기억들이 새로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가들로 하여금 기억을 더 이상 역사의 이름으로 폄하하지 않고 양자의 본원적 관계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성찰하게 하였다. 기억은 근대성의 자기 확실성을 뒷받침해오던 역사적 진리와 주체적 일원론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주체가 진리를 독점하는 권력이 아니라, 진리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파생적 존재임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억’은 새로운 ‘기억문화’ 속에서 확대된 지평을 확인하면서 역사적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3) 기억과 공간

기억이 이처럼 현재 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현재의 토양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동시에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기억과 망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기억의 집에는 항상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망각이 없으면 기억은 불가능하다. 망각을 토대로 기억이 선택되는 것은 그것이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즉 기억할 만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이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집단이다. 집단은 기억을 통해 일체감을 확인하고 유대를 강화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집단 정체성에 의해 구조화되는 기억이 일정부분 당파성을 지니게 됨은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기억은 사회적 권력 관계에 종속되고 이익과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기억을 둘러싼 집단 간 경쟁과 갈등이 잘 보여 주는데, 기억의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프랑스에서의 ‘기억의 터(lieux de memoire)’ 연구이다.

“요즘 우리가 기억에 관해 그토록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바로, 기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기획하여 1984년부터 1992년까지 발간한 총 7권의 저작으로 구체화된 이 작업은 역사가들이 기억의 문제에 본격적으로 주목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대한 작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 바로 192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한 아날학파였고, 이를 대표하는 학문적 개념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가 제시한 ‘집단기억(memoire collective)’이론이었다.

알박스에 의하면 기억이란 개인적이기보다는 집단적인 것으로서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집단기억은 단순히 개인의 기억들이 집합적으로 모여서 형성되지 않는다. 집단 기억을 집합적 기억으로 번역하는 경우, 집단기억의 성격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단기억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역사적 기록과도 다르다. 집단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일에 관한 신념체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점에서 집단기억은 객관성을 추구하는 역사적 해석과도 다르기에 역사적 사실을 넘어설 수도 있으며 심지어 무관할 수도 있다. 동시에 집단기억은 집단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박스의 이론에 의지한 ‘기억의 터’ 연구는 한 민족의 집단기억이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사’ 이후의 대안적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여기에서 기억을 사회의 집단적 현상으로 보면 기억이 왜 과거보다는 오히려 현재 지향적인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기억은 언제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출발하며, 과거의 현상이 아니라 현재의 현상이다. 다시 말해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 고정된 형태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프랑스 역사학계의 이러한 연구는 독일 역사학계에 창조적으로 수용되었다. 독일에서는 프랑스에 비해 좀 더 안정적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기억의 형태에 주목했다. 이러한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가 바로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레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다. 이들이 제시한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에 따르면 한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적 형식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상징(물), 도상, 묘비, 사원, 기념비 또는 제의와 축제 등이 있다.를 통해서 기억은 오래 전승되고 지속되는데, ‘기억문화’ 연구는 이러한 기억이 전승되는 형식을 규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의 집단 정체성 안에는 다양한 집단 기억이 교차할 수 있으며, 하나의 집단 정체성은 하나의 집단기억만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또 정체성이 집단적 기억으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집단은 집단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조건이지, 집단기억이 무조건 하나의 집단정체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체성의 형성에는 집단이 속해 있는 구조와 환경, 역사적 상황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기억을 놓고 벌이는 개인과 사회, 저항과 억압이라는 정치적 투쟁이 제기되며 이것을 조건 지우는 문화적 가치체계, 특수한 기억을 매개로 결속된 ‘기억공동체’ 그리고 기억의 형상화 및 이를 위한 매체 등이 중요한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분명해진 사실은 기억보다 우월해 보이던 역사가 실은 포괄적인 ‘기억문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개인의 기억에 비해서 별로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새로운 기억문화에서 특정 개인과 집단은 더 이상 역사라는 공식적 시간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영위하게 되었고 역사학은 시간 영역에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특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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